[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 (21·끝) 장발의 ‘십자고상’(案),
이순석의 ‘십자가와 촛대’(案)
▲ 장발의 ‘십자고상’(안)은 간결한 인체 표현과 감정이 절제된 안면 묘사가 특징적인 작품이다
‘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에서 소개할 1954년 성미술 전람회의 출품작으로 이제 두 작품을 남겨 놓고 있다. 성미술 전람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장발(張勃, 루도비코, 1901~2001)의 ‘십자고상’(案)과 이순석(李順石, 바오로, 1905~1986)의 ‘십자가와 촛대’(案)이다.
이 두 작품은 모두 안(案)으로 제시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흑백 자료 사진으로는 작품의 상세한 내용을 알기 어렵다. 한국 가톨릭 미술사에 이 두 작가가 공헌한 바를 일일이 언급하기엔 본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겠으나 실물 작품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출품작에 대한 설명은 아쉽게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장발, 1920년대부터 보이론 화풍 연구
장발의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인 ‘십자고상’(안)은 간결한 인체 표현과 감정이 절제된 안면 묘사가 특징적인 작품이다. 장 화백은 성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인상파, 보이론파, 나비파, 상징주의 등 다양한 화풍을 도입했다.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정적인 모습으로 완성된 ‘십자고상’(안)은 장 화백이 1920년대부터 연구했던 보이론 화풍의 영향을 드러내고 있다.
보이론 미술은 독일 보이론(Beuron)에 설립된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시작된 19세기 교회 미술로서, 이집트 미술에서 표출되는 기하학적 원리에 기초한 추상적인 작품이 그리스도교 영성을 표현하는 데 이상적임을 표방했다. 독일 낭만주의 화가들의 종교회화 작품과 함께 19세기 당시 쇠퇴했던 그리스도교 미술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던 미술 양식이다.
장발은 1934년 2월 「가톨릭청년」에 ‘보이론 예술(The Beuron School of Art)’을 기고하는 등 보이론 미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1926년 작 명동대성당의 ‘14사도’는 보이론 화풍을 엿볼 수 있는 장 화백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팔다리가 길게 과장된 모습과 단순화된 이목구비 표현 등에서 보이론 화풍의 영향을 살펴볼 수 있는 ‘십자고상’(안)은 격정적인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정적이면서 정신적으로 고양될 수 있는 그리스도교 미술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장발은 인천 출생으로 1920년 동경미술학교 서양학과에 입학했고,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국립 디자인학교와 컬럼비아대학에서 수학했다. 그는 1920년 한국화가로서 처음으로 성화 ‘김대건 신부상’을 제작했고, 1925년 바티칸에서 거행된 조선 79위 순교 복자 시복식(殉敎福者諡福式)에 참석한 후 ‘순교 복자’를 완성했다.
귀국 후 해방까지 장 화백은 휘문고보, 경신고보, 동성상업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으며 성화 제작에 몰두했다. 그는 ‘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1925), 명동 대성당의 제단 벽화 ‘14사도’(1925~1926),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1928), ‘십자가의 그리스도’(1941), 가르멜수녀원의 제단화 ‘성모영보(聖母領報)’(1945) 등 다양한 화풍을 도입한 성화들을 선보이며 한국 가톨릭 미술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해방 후 194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초대 학장을 역임하며 교육자이자 미술행정가로서 활약했던 장 화백은 한국 최초의 성화 작가로서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제1회 가톨릭 미술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 이순석의 ‘십자가와 촛대’(안)은 십자형 4개의 다리로 지지되고 있는 촛대와 십자가를 단순하고 간결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
정확한 재료와 색감 파악하기 어려워
이순석은 앞서 소개한 백태원과 함께 공예 분야 대표 작가로 ‘십자가와 촛대’(안)을 출품했다. 십자형 4개의 다리로 지지되고 있는 촛대와 십자가는 단순하고 간결한 표현으로 이루어졌다. 실제 작품이 아닌 작품 안으로 출품되기 때문에 실물 사이즈보다 작게 제작된 목조에 짙은 채색을 한 작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사진상으로는 정확한 재료와 색감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저 중앙의 십자가가 단순화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은 십자고상의 형태로 되어 있다는 것과 일반 초가 끼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촛대의 대략적인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
충남 아산에서 출생해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한 이순석은 1923년에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를 유화로 그려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내부 양쪽 벽에 걸게 했으나 6ㆍ25 전쟁 중에 파괴되어 현재는 작품의 행방을 알 수 없다. 1926년 동경미술대학교 도안과(圖案科)에 입학해 1920년대 후반 일본 공예계에서 유행했던 아르누보, 바우하우스 등 다양한 미술 양식을 연구했다.
서울대 응용미술학과 교수를 역임한 그는 가톨릭 신자 미술가들과 미술가회를 조직하여 1970년 서울 가톨릭 미술가회를 창립했으며, 초대 회장(1971~1981)으로 추대되어 이듬해 1971년부터 개최한 회원전에 빠짐없이 출품했다. 이순석은 장발에 이어 1997년 제2회 가톨릭 미술상 특별상을 받았다.
이번 글로 1954년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에 대한 소개가 마무리되었다. 건축가 이희태의 ‘새로운 성당 설계도’ 5점은 서울 혜화동성당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출품작에 대한 정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어 소개하지 않았다. 혜화동성당의 설계도면은 본당 측의 협조로 2016년 병인년 순교 150주년을 기념해 개최됐던 한국 가톨릭 성미술 재조명전에서 전시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첫 성미술전인 1954년 성미술 전람회의 출품작들을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소중한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전쟁 직후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뤄낸 미술가들의 협력은 6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 가톨릭 미술의 깊은 뿌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당시 출품작들을 촬영해 사진으로 남겨주신 고 성낙인 선생과 귀한 자료를 제공해주신 서울대 미술관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한 장의 흑백사진에서 시작된 1954년 성미술 전람회에 대한 연구 여정은 이렇게 출품작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또 한 번 마무리되고 있다. 이제 숨은 작품들을 함께 찾는 일만 남은 것 같다.
다음 글부터는 1960~70년대 전국적으로 많은 벽화 작업을 남기며 붓을 통한 선교를 실천했던 프랑스인 화가 앙드레 부통(Andr Bouton) 신부의 작품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앞으로도 숨은 성미술 보물에 대한 제보가 이어지길 바란다.
▲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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