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 (20) 김종영의 ‘마돈나’,
장기은의 ‘성모상’
▲ 김종영의 ‘마돈나’. 이목구비가 생략된 단순하고 절제된 표현으로 완성된 성모자상이다
휴전 이듬해인 1954년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화가, 조각가, 공예가, 건축가 협력으로 완성된 1954년 성미술 전람회에 출품된 조각은 오직 3점뿐이었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였지만 조각에 있어서도 당시 재료의 수급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돌, 나무, 청동과 같은 전통적인 조각 재료를 제대로 구해 쓸 수 없었던 당시에 선보인 조각 작품 3점은 모두 석고로 제작되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완성된 3점의 조각 작품 중 앞서 소개했던 김세중의 ‘김골롬바와 아녜스’를 제외한 두 작품은 현재 유실 상태로 작품 실물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 두 작품은 바로 이번 글에서 소개할 김종영(金鍾瑛, 1915~1982)의 ‘마돈나’와 장기은(張基殷, 1922~1961)의 ‘성모상’이다.
두 작품 모두 흑백사진으로만 파악할 수 있어 정확한 크기와 세부 묘사를 알기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추상적인 인체 표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종영의 작품은 다행히 당시 그의 작업을 도왔던 조각가 최의순의 증언으로 작업 과정과 작품의 재료, 색채 등에 대해 보다 자세한 사항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목구비 생략된 단순하고 절제된 표현
김종영의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 ‘마돈나’는 현대 종교미술의 추상적 표현이 우리나라 작품에도 수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목구비가 생략된 단순하고 절제된 표현으로 완성된 이 작품은 성모자상을 표현한 것이다.
김종영은 1915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1941년 일본 동경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를 졸업했다.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인 김종영은 초기에는 사실적인 인체와 인물 상을 다루는 작업을 했지만 1953년 영국 런던 테이트갤러리에서 공모한 국제조각전에서 ‘무명 정치수를 위한 모뉴먼트’로 입선한 후 점차 추상적인 작업으로 전환했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창조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순수 조형의 본질을 실현했던 김종영은 유기적인 생명감을 지닌 다양성을 보여주는 조형 세계를 이루었다는 평을 받는다. 그의 작품은 형태를 구성하고 공간을 아우르는 환원적 형태로 단순한 인상을 드러내는 특징을 보여준다.
김종영은 조각가였지만 많은 드로잉을 남겼다. 현재 김종영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드로잉만 3000점이 넘는다니 조각가로서 진행했던 드로잉 작업의 규모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2018년 김종영미술관이 개최한 ‘각백(刻伯)이 그리다’ 전에서 그의 드로잉을 시대별로 다양하게 감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필자에게는 ‘예수 얼굴’(1958)이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드로잉’(1958) 등 1950년대 그리스도교 주제의 드로잉들이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남아 있다.
각백 김종영의 ‘마돈나’는 비대칭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어깨선을 한 성모 마리아와 큰 대(大)자 십자가가 결합된 형태로 이루어진 아기 예수가 그 품에 안긴 모습을 보여준다. 성모 마리아는 반신상으로 표현되었으며 작품의 크기는 등신대에 가깝다. 추상적인 표현으로 완성된 이 작품은 현재 유실되어 소재를 알 수 없지만, 제자인 최의순, 최종태의 증언으로 김종영의 작품임이 밝혀졌다.
김종영의 출품작 ‘마돈나’는 인체를 다듬어가며 매스만으로 동세를 표현해 완성한 작품으로 세부 묘사가 생략되고 표면의 재질감을 강조한 추상화된 인체의 모습이 특징적이다. 거침없이 비대칭으로 표현된 성모 마리아의 어깨와 그 앞에 마치 하나의 축약된 상징처럼 자리하고 있는 아기 예수의 모습에서 군더더기 없이 본질적인 요소만으로 작품을 완성한 작가의 과감함이 돋보인다.
조각가 최의순의 증언에 따르면 이 작품은 석고로 제작되었고 초록색 계열의 채색으로 브론즈 느낌을 냈다고 한다. 당시 1950년대는 전후의 어려운 상황으로 브론즈 작업을 실행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고 대부분 흙 작업으로 재료의 느낌을 살리고 석고로 작품을 만든 뒤에 표현하고자 하는 재질의 색으로 채색하고 니스 칠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채색은 유화 물감을 이용하거나 가루 형태의 도료를 테레핀유에 섞어 망에 걸러 사용했다고 하니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 장기은의 ‘성모상’. 한복차림으로 두 손을 가슴에 모아 포개고 있는 한국인의 모습을 한 성모 마리아를 표현하고 있다. |
한국인의 모습을 한 성모 마리아 표현
성미술 전람회의 마지막 조각 출품작은 장기은의 ‘성모상’이다. 이 작품 역시 석고로 제작되었으며 전면 중심선에 각을 주어 원형보다는 다각형의 형태로 표현된 인체 모습을 보여준다. 장기은의 ‘성모상’은 작품 실물을 확인할 수 없고 작가나 주변인의 증언도 들을 수 없어 작품 규모나 세부 표현을 보다 상세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성모의 얼굴은 단순화되었지만 이목구비가 표현되었고, 한복차림으로 두 손을 가슴에 모아 포개고 있는 한국인의 모습을 한 성모 마리아를 표현했다.
장기은은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일본 동경미술학교 목조과(木彫科)에 입학했고 재학 중 해방을 맞아 귀국해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조소과에 편입학했다. 1950년 동 대학을 졸업했고 1953년 제2회 국전에 출품해 문교부장관상을 받았다. 그는 이후 우리나라의 고미술, 그중에서도 불교미술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으며 1959년 미완성으로 있던 법주사대불(法住寺大佛)의 완성을 서두르던 중 병환으로 1961년 39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장기은은 1954년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 외에 대표적인 성미술 작품으로 서울 혜화동 성당 부조에 참여했다.
1954년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 ‘마돈나’와 ‘성모상’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현대적이고 과감하며 독창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는 조각 작품이지만 안타깝게도 두 작품 모두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석고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내구성이 큰 문제가 되었겠지만 총 31점의 출품작들 가운데 단 3점에 불과한 조각 작품 중 2점이 유실되어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딘가에 이 작품을 보관하고 계시거나 이 작품을 보신 분들의 반가운 제보가 있기를 다시 한 번 바란다.
▲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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