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연실, 젬마, 사진가·이탈리아어 통번역사)
2014년 4월 28일 거행된 요한 23세 교황님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시성식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아침 6시에 바티칸으로 갔다.
이미 전날 밤부터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성 베드로 광장은 이미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한 발자국을 옮기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려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스크린이 보이는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무엇이 이 많은 사람을 이곳에 모이게 한 것일까? 사람들은 이 모든 불편함과 비용을 감수하면서 왜 이곳에 왔을까?
성인이 된다는 것은 이 땅에서의 생애가 모범적이고 희생적이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의 삶을 살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삶은 쉽지 않고 고통을 동반한다. 하지만 그 고통과 시련에도 선의를 위해 살아온 삶은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을 참으로 좋아했고 존경했다. 2000년 대희년에 로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 참석했을 때 이미 그분은 파킨슨병을 앓고 계셨지만 자신의 고통 안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으셨다. 젊은이에 대한 사랑이 유난히 크셨기에 마지막 폐막 미사 전날 밤샘기도 때도 오셔서 “젊은이 여러분, 용기를 내어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십시오”라고 하신 말씀이 마치 인장이 찍힌 듯 내 마음에 강하게 남아 있다.
교황님께서 자주 언급하셨던 성경에 나오는 구절인 ‘Non abbiate paura(두려워 말라)’는 말씀과 ‘Quando sono debole e sono forte(내가 약할 때 나는 강합니다)’라는 말씀은 한계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큰 용기를 줬다.
난 삶에서 ‘언행일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말, 듣기 좋은 말을 하기는 쉽지만 행동은 어렵다. 그래서 말 한마디를 할 때도 조심하게 되고 내 행동에서 말과 다른 모순을 발견할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인지 유난히 ‘언행일치’의 삶을 사는 분들을 존경하게 되고 그 삶을 동경하며 내 삶의 표본으로 삼으려고 한다.
시성식에 정말 많은 사람이 와서 팔도 움직이지 못할 공간에 5시간 동안 서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성식 자체는 매우 거룩하고 아름다웠지만 사람들이 몰려 있던 곳에서는 사건이 많았다. 너무 좁은 공간에 힘들게 있다 보니 사람들이 굉장히 신경질적이었다. 조금만 밀어도 화를 냈고, 앞에서 누군가 나가려고 할 때 뒤에서 밀고 들어오면 소리를 지르는 일도 있었다.
난 평소에도 가톨릭 신자들이 다른 사람보다 착하다거나 더 나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선지 이곳에 모인 사람들도 대부분 가톨릭 신자일 텐데 왜 이들은 참지 못할까 하는 판단보다는 시성식에 와서 꼭 이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역시 불편함 앞에서 짜증을 내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때 내 뒤에서 자꾸만 나를 밀어내는 그분을 짜증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미소로 평화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는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평화롭지 않으면서 다른 이에게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평화는 평화를 부르고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 결국 내 마음에는 ‘감사’가 남고 이 감사한 마음으로 내가 받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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