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4주일 (마태 1,18-24)
오늘은 대림 제4주일입니다. 예수 성탄 대축일이 목전에 다다랐습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아하즈 왕과 바오로 사도, 그리고 성 요셉의 모습을 통하여 대림 시기를 잘 마무리하도록 이끌어줍니다.
1. 아하즈 왕 : 믿지 않은 사람
오늘 제1독서에서 아하즈 왕은 “저는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이사 7,12)라고 대답합니다. 얼핏 보기에 이 얼마나 겸손한 태도입니까? 천만에요,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입니다! 사실 아하즈 왕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받은 주님의 첫 번째 경고(이사 7,1-9)를 받아들이고 싶은 뜻이 전혀 없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뿐입니다. 오히려 그는 아시리아 대제국과의 동맹을 통하여 자기 원수들로부터 안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언자가 참된 바위이신 이스라엘의 하느님만을 신뢰하라는 권고를 무시합니다. 참으로 아하즈 왕은 안타깝고 교묘한 불신앙의 전형적인 표상입니다.
이에 대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회칙 「신앙의 빛」 24항에서 “신앙은 (아하즈) 임금의 계산보다 훨씬 더 뛰어난 새로운 빛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당신 약속에 충실하신 하느님의 활동을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바오로 사도 : 회심한 사람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로마 1,1)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이였습니다(갈라 1,13-14 참조). 하지만 어떻게 바오로는 회심(回心)할 수 있었을까요?
성서학자 스탠리 매로우는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至高)한 가치”(필리 3,8)가 바오로 사도의 회심을 일으키게 한 ‘근본적 깨달음’이라고 풀어줍니다. 이 깨달음이 사도로 하여금 우리를 자신과 같은 길,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도록 초대합니다. 비록 세상이 우리가 그렇게 살 만큼 녹록하지 않겠지만,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로마 1,7 참조)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3. 성 요셉 : 의로운 사람
제 주위에는 이미 자녀들이 있음에도 어린아이를 입양한 신자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분들을 볼 때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저의 좁은 소견으로는 그들의 입양 과정이 그리 순탄치 않았을 것이라 헤아리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양한 부모들은 어느 순간에 “두려워하지 말고 그 아이를 맞아들여라” 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렇듯이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의 마음을 빌려 놀라운 출산을 이루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천사는 요셉 성인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품은 요셉 성인에게서 하느님은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참으로 인간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마태 1,23)를 살 수 있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로마 1,6)
며칠 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교황님께서는 “두려움은 항상 ‘아니오’라며 하느님을 거역하게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없고 죄를 짓게 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곧 예수 성탄 대축일입니다. 주님의 강생(降生)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랑을 향하여, 사도 바오로의 권고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가 성 요셉처럼 ‘하느님의 소리’에 마음을 기울이면서 ‘우리와 함께하러 오시는 하느님’을 기쁘고 합당하게 맞이하실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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