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원천②
향주덕(2656~2658항)
주님을 향하는 덕이라는 뜻의 향주덕은 또한 대신덕(對神德)이라고도 합니다. 믿음(신덕), 희망(망덕), 사랑(애덕) 이 셋을 향주덕이라고 부르지요.
믿음을 갖는다는 것,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인생을 보람있게 살려면 가족도 있고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봉사도 하고 한편으로는 믿음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내 삶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날아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런 믿음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손오공처럼 필요할 때만 부처님을 찾고 그렇지 않을 때는 부처님 손바닥에서 달아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 전폭적으로 귀의함으로써,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께 맡겨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서는 이렇게 제시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좁은 문을 통하여…기도 안으로 들어간다.…우리가 찾고 소망하는 것은 주님의 얼굴이며, 우리가 귀담아듣고 간직하고자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다”(2656항).
희망의 덕은 그리스도의 약속을 신뢰하는 가운데 성령의 은총의 도움으로 참된 행복을 주는 하늘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게 하는 덕입니다(교리서 1817항 참조).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을 갖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구약성경 시편은 이를 놀랍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바라고 바랐더니 나에게 몸을 굽히시고 내 외치는 소리를 들으셨네”(시편 40,2).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희망과 사랑의 관계를 잘 설명합니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 특별히 전례 생활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이 사랑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받은 우리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하느님께서 베푸신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기도의 원천”입니다. 또 사랑에서 우러나는 기도를 하는 이는 “기도의 정상”에 도달합니다(2658항).
오늘(2659~2660항)
우리는 특별한 순간에 기도를 배웁니다. 예를 들면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리고 주님의 파스카 신비(성찬례)에 참여할 때에 기도를 드리며 기도를 배우지요. 하지만 매일매일의 사건 속에서, 바로 ‘오늘’이 순간에도 언제나 기도를 샘솟게 하는 주님의 성령을 받습니다. 교리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시간은 아버지의 손안에 있다. 우리는 지금 아버지를 만난다. 어제도 아니요, 내일도 아닌, 바로 오늘 만나는 것이다”(2659항). 이럴 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시편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시편 95,7ㄷ-85ㄱ).
날마다, 순간마다 일어나는 일들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비밀 가운데 하나”라고 교리서는 설명합니다.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도록 기도하는 것도 좋고 마땅한 일이지만, “일상의 사소한 상황들에 기도가 배어들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2660항).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오늘’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삶의 매 순간이 기도가 되도록 하라고 일깨웁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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