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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출판

“이성이 빠진 종교는 위험… 잔혹함마저 미화”

참 빛 사랑 2025. 2. 27. 14:27
 
가톨릭대 철학과 박승찬 교수.

자신의 평화만 생각하기 때문에

전쟁이나 분열 일어납니다

반복되는 잔혹한 복수와 폭력

그 악순환 끊어내야 하고

교회가 그 역할 해야 합니다



종전(終戰)이 아닌 정전(停戰) 상태의 한반도에 살면서도 전쟁에 너무나 무감한 우리. 오히려 지구 반대편의 전쟁들을 통해 물가가 오르고 유럽으로 가는 비행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파동을 실감하곤 한다. 1000년 전의 전쟁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최근 인류 최악의 비극이면서 그리스도인에게는 부끄러운 역사인 십자군 전쟁을 낱낱이 파헤친 책이 나왔다. 바로 「철학자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오르골).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박승찬(엘리야) 교수가 써내려간 책에는 1096년부터 약 200년간 여덟 차례에 걸친 전쟁의 내막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모든 전쟁에는 당대의 명분이 있고 후대의 해석이 있다. 중세철학 전문가이면서 신앙인인 저자는 어떤 관점에서 십자군 전쟁을 바라보고 어떤 의견을 제시했을지 궁금했다.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바오로딸 혜화나무에서 박 교수를 직접 만나봤다.



많이 알려졌지만 오해도 많은 십자군 전쟁

“십자군 전쟁은 중세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가장 많은 오해가 있는 부분이고, 총체적으로 아는 분도 거의 없어요. 개인적으로 워낙 역사에 관심이 많은 데다, 중세철학을 강의하면서 철학을 얘기하자면 역사적인 부분을 설명해줘야 하니까 관심이 증폭됐죠. 역사철학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역사 속에서 어떤 사건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철학의 영역이기도 하기 때문에 철학자로서 십자군 전쟁에 관해 나와 있는 국내외 사료들을 보면서 작업했어요.”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를 뜻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랫동안 ‘평화의 도시’가 되지 못했다. 이스라엘 민족의 유다교, 유럽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 중동·아랍 국가들의 이슬람교의 대표적인 성지로 여전히 분쟁의 중심지다.

십자군 전쟁은 ‘신께서 성지 예루살렘의 회복을 원하신다’는 명분으로 시작돼 그마저 변질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같은 사실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학자이면서 한때 사제를 꿈꿨던 박 교수는 십자군 전쟁의 속내를 어디까지 들춰 어떤 방향으로 기록했을까.

“주변에서 불편해하는 분도 계셨고, 응원해 준 분도 계셨어요. 어두운 이야기는 개인적으로도 아파요. 그런데 모르면 반복되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회가 저지른 범죄’라며 십자군 전쟁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셨어요. 스스로 고백하고 반성하는 모습이야말로 성숙한 자세이고 하느님 앞에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해 이 책을 쓰게 됐어요. 안 그래도 중세는 암흑기로 통하는데 특정 사안만 부각해서 왜곡하면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학자로서 균형 잡힌 시각을 전달하려고 노력했고요.”
 

정치적으로 종교 이용하는 역사 반복

책에는 나라·도시·민족·사람·성당 및 사원에 이르기까지 수백 개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 이름들은 결합했다 흩어지고, 화해했다 다투고, 세워졌다 파괴된다. 놀라운 것은 약 1000년 전 신성한 명분으로 포장됐던 인간과 사회의 탐욕과 이해관계가 장치와 매체만 바뀌었을 뿐 지금도 여전하다는 점이다.

“정말 그렇죠. 책에도 썼지만 종교를 비판적 이성, 자성하는 이성을 마비시킨 상태에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쓰는 상황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어요.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에도 그랬고, 최근 국내에서도 ‘십자군’이라는 용어가 사용됐어요. 어떤 역사적 함의를 지니는지도 모르고 막 쓰는 거예요. 이성이 빠져 있는 종교는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잔혹함을 미화하고, 잔혹함을 못 느끼게 하고, 그래서 훨씬 더 잔혹해지기도 하거든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관점과 평가는 과거와 현재가 다를 수 있다. 시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각자 살아온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서도 현저히 달라진 사회상을 어렵지 않게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에 대한 관점이 시대와 인종·종교에 따라 다르다 해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남기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박 교수는 ‘십자군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평화를 위한 지혜’로 일곱 가지를 제시한다. (박스 참조)

“현대사회는 세속적 가치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서 많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종교의 진정한 모습이 뭔지 반성하는 작업이 십자군 전쟁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종교라면 ‘인간 욕망의 투사’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자신의 평화만 생각하기 때문에 전쟁이나 분열이 일어나요. 한쪽의 평화가 다른 쪽에서는 불의가 되면 잔혹한 복수와 폭력이 반복돼요. 그 악순환을 끊어내야 하고, 교회가 그것을 끊어내는 쪽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종교의 본래 역할 ‘자기 낮춤’

박 교수는 잔혹한 십자군 전쟁의 역사에서도 ‘평화’에 힘썼던 인물들과 현대사회에 귀감이 될 그들의 특별한 행동양식도 소개한다. 점령지 안의 주민과 십자군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이슬람의 술탄 살라딘, 전쟁없이 예루살렘 성지순례 기회를 얻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포용력, 평화협상을 위해 무방비 상태로 술탄 알카밀을 찾아간 프란치스코 성인 등의 이야기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라틴어 격언이 상징하는, 물리적인 힘으로 얻고 지키려는 평화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셨어요. 평화는 정의의 내용을 초월하는 사랑의 결실이라고요. 현대사회에서도 종교가 필요한 이유, 그건 가장 많은 땅을 차지했던 교황령 시대가 아니라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행로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난민을 비롯한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방향성이나 동성애자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 등 종교의 본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거죠.”

그렇다면 종교의 본래 역할, 가톨릭 정신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신학 용어로는 ‘케노시스’라고 하거든요. ‘자기 낮춤’이죠. 교회가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순간 가치를 잃어요. 육화, 자기를 낮춰 우리에게 다가와 주신 하느님,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처럼 교회는 스스로 짓밟히고 녹아들어서 살리는 역할을 해야 해요. 개인적으로는 두 분야를 공부한 만큼 종교, 또 인문학이 할 수 있는 역할에 기여하고 싶어요.”

박승찬 교수는 서울대 식품공학과와 가톨릭대 신학부를 졸업한 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신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중세철학회 및 한국가톨릭철학회 회장을 지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