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인내와 사고를 필요로 하는 앎의 과정이다. 읽는다는 것은 기호의 의미를 습득하고,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 해결을 해나가는 역량이다. 출처=Pixabay
재미의 시대다.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가 어느 순간 우리 삶 깊숙이 핵심가치로 들어와 있다. 참고 인내하면서 ‘재미’보다 ‘의미’를 찾으라는 말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무엇이든 ‘재미’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의미’도 ‘가치’도 만나는 세상이다.
재미는 무엇일까?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감정일까? “재미는 놀라움이 있는 즐거움이다.” 게임 디자이너 제시 셀(Jesse schell)의 말이다. 놀라움은 새로워야 한다. 늘 반복해온 당연하고 익숙한 것은 놀랍지 않다. 물론 ‘재미’는 주관적이다. 하지만 새로움과 놀라움은 어떤 영역에서든 흥미를 주고 활력을 준다.
「재미의 본질」 저자 김선진은 문자언어 시대에서 영상언어 시대로 들어서면서 재미에 변화가 왔다고 말한다. 문자의 재미는 느리게 서서히 녹아들어 가지만 영상의 재미는 빠르고 즉각적이고 직관적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영상언어의 재미에 익숙해지면 ‘노잼’(재미없음)을 견디는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결국 나도 모르게 도파민 중독자로 살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책 읽기는 습관이 되어 재미를 느낄 때까지 지루한 학습과 지난한 수련과정을 필요로 한다. 독서는 인내와 사고를 필요로 하는 앎의 과정이다. 읽는다는 것은 기호의 의미를 습득하고,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역량이다. 독서를 통해 은유와 상징을 읽어내고 상상력을 발휘하며 내면의 자아를 만난다.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면서 사고와 지각, 창의력, 심리발달의 많은 과정의 행위를 거친다.
무엇보다 독서는 몰입 상태에서 인내심과 집중력을 키워주고 산만함을 줄여준다. 단순히 지식을 늘리는 차원을 넘어 변화와 성장을 향한 놀라운 창조 과정에 들어서고 상상력을 발휘하고 침묵과 사색의 여백을 만든다.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믿어왔던 독서의 가치이며 신념이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내적 몰입으로 관조하고 사색하는 책 읽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 1권도 읽지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 우리 인간은 화학적인 존재다. 디지털 환경에서 반복되는 일상의 생각과 행동의 자극에 반응하기 위해 뇌가 만들어내는 감정과 화학물질에 영향을 받는다. 감각적이고 자극적이고 빠른 영상언어를 통한 재미에 길들여지면서 생존과 관계없는 독서나 기도를 통한 사유의 행위가 퇴보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자신의 저서 「고백록」에서 스승인 암브로시오 주교가 성경을 읽을 때 입술로 소리 내지 않으면서도 온전히 눈으로만 심취하고 가슴으로 의미를 새겨나가는 모습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수도승들은 글을 읽을 때 눈으로 대충 빨리 읽지 않으려고 작은 소리로 낭독하고 그 소리를 귀로 들으면서 기억하는 것이 일반적인 독서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용히 침묵으로 책을 읽는 모습은 그 시대에 너무도 놀랍고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묵독하는 스승의 모습에서 놀라운 경험을 한 아우구스티노가 디지털 시대 새로운 방식의 독서 방식을 만난다면 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MZ세대가 독서를 새로운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책은 더 이상 지식 습득이나 정보 전달만의 수단이 아니라고 한다. 글자는 정적이고 고전적이지도 않다. 책에서 힙한 놀이요소를 찾아내 독서놀이를 경험하고 공유한다. 독서는 내적 몰입 상태에서 자아를 만나기보다 힙하고 우아한 취미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낸다. 지루하고 집중해야만 하는 독서활동이 아닌, 가벼운 놀이로 공유하면서 나의 경험을 만들어낸다.
온라인 독서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즐기는 문화적 현상, ‘텍스트힙’이다. 텍스트와 힙하다는 말이 합쳐진 신조어다. 책의 문구를 인용하고 텍스트를 꾸미고 보여주면서 자신만의 감성을 전시한다. 있는 척을 넘어 아는 척으로 ‘있어빌리티’(있다와 어빌리티(ability)를 결합한 신조어)까지 누릴 수 있다. 행복이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듯 꼭 알아야 지식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는 척만 잘해도 아는 것이고 능력이란다. 독서를 리뷰하고 인증하고 기록하고 즐기는 텍스트힙, 자신들만의 고유한 트렌드와 문화를 창출하면서 우월감을 과시하는 새로운 방식의 책 읽기다.
<영성이 묻는 안부>
우리나라 노년층의 독서율은 점점 낮아지는 반면, 가장 높은 독서율을 보인 연령층은 20대라고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책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사는 줄 알았던 20~30대가 더 많이 책을 읽는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전통적인 독서의 가치에 비춰보면 ‘텍스트힙’이라는 새로운 문화현상이 그들만의 ‘지적 허영’이고 외적인 것에 치우친 허세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제이며 미디어학자인 월터 옹에 의하면 ‘구술’이냐 ‘문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 자체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무엇으로 소통하고 사느냐에 따라 사고방식과 인식체계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지요. 태어날 때부터 ‘영상언어’에 의존하면서 세상과 소통방식을 배워온 우리 젊은 세대들이 힙하게 책 놀이를 하며 창조적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늘 새로운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마음의 눈으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외부 세상과 어떤 소통 관계를 맺고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내적·영적 풍경도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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