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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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사람들

특별 기고-성전 건립 유감(有感)

참 빛 사랑 2024. 9. 6. 14:52

 

<유구성당 부임>

벌써 10년 전 일이 되었다. 유구본당으로 발령이 나자 홈페이지(유구본당 카페)에 들어가 봤다. 본당 설립 연도부터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사목하는 기간 중에 50주년을 맞게 된다.

그것이 궁금했던 이유는 5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도 의미려니와 몇 번 가본 적이 있어서 유구성당의 모습을 대략 알고 있었고, 노후화된 성당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마침내 부임일이 밝았고, 데리러 온 교우들과 함께 성당 정문을 들어섰다. 너무나 익숙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모습, 시골의 큰 공소 같은 성당과, 사무실 앞에 드럼통을 잘라 만든 구이통에 무언가를 구워 먹으며 불을 쬐는 교우들 모습이 순박하고 소박하다 못해 조금은 안쓰럽고 애처롭게 보였다. 순간 중국 산둥성의 깊은 산골이 떠올랐다. 그 눈망울에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듯한 묘한 기대감이 묻어났다. 지금도 그 눈빛이 선하다.

마음 한켠에는 마치 내 고향에 온 포근함도 느껴졌다. 그런 산골의 소박함과 시골스러움에 마음이 편안했다. 어둡고 좁은 사제관에 짐을 풀고 이 사람들과 5년을 함께한다는 사실을 좋게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신자들 면면이 가난하고 노쇠한 내 부모 같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어서 한편으론 맥이 빠지면서도 나도 순박하게 조용히 살아보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한 주일을 지내고 한 달을 지냈다. 짐작은 했지만, 사무실 직원도 제대로 없고 사목회도 짜임새가 없고 모든 것이 미진하고 부족했다. 주일 미사가 끝나도 누구 하나 식사하자고 하는 사람도 없어서 의아했다. 그럭저럭 사목회도 꼴을 갖추고 때로는 짓궂게, 때로는 거칠게 또 게걸스런 표현으로 신자들과 소통하며 친밀해지려 애썼다.

우선 신자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알아보고 싶어서 대대적으로 가정방문을 실시했다. 집집마다 비어있거나, 혹은 연로한 어르신 한 분이 집을 지키며 맞아주었다. 시내 구역을 벗어나자 무슨 동네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깊은 산골, 더 이상은 없겠지 싶으면 또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골짜기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며 계속 되었다. “뭐 이런 골짜기가 다 있느냐”며 투덜거리자, 구역장이 대꾸한다. “그래서 이 동네는 6·25전쟁도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이 많대유~.”

그렇게 한 달 이상을 돌아보니 신자들의 면면을 대략 알만했다. 어쩌면 법 없이도 살만한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이었고, 우리 현대사의 험난한 시절을 간난신고로 살아내온 억척스러운 사람들, 우리 역사의 은인들이자 공로자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늙어 말년에도 궁핍하고 외롭게 사는 것이 참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성당 건물은 대부분의 공소보다 조금 더 규모가 큰 강당 같았고, 사무실은 그럭저럭 흉내를 냈고, 회의실이랍시고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완전히 헛간 같았고, 나머지 하나도 거의 창고 수준이었다. 그래도 거기서 레지오 마리애 회합도 하고, 사목회도 진행했다. 사무실과 회의실 사이에 주방이란 것이 있는데 세상에 그걸 주방이라고 할 수 있는지 거기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결국 나중에 성당을 건축하면서 주방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고 좋은 시설을 갖추었다. 그런데 성당과 사제관 건물은 무허가인 데다가 50년 세월에 낡고 갈라져 새고, 실내 바닥이 마룻바닥이라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해서 성당 입구에는 신발장이 들어차 있고, 성당으로 들어서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쿵쿵 소리가 나며 시골의 운치를 더해주었다.

신자들 면면이 면면이다 보니, 신자 재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효과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신앙의 근본인 성경을 한 번은 전 신자가 읽어야(통독) 한다는 사명감에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를 하기로 결정하고, 전문가를 초빙해 특강을 듣고, 구역회에서도 강조 교육을 한 후에 조를 짜서 한 주에 한 번씩 모여 레지오 전후에 실시했다. 참여하지 않은 사람도 많았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120여 명이 시작했고, 3년에 걸친 여정 끝에 최종적으로 수료증을 받은 사람이 60여 명이나 되었다.

무엇보다 흐뭇했던 것은, 어르신들이 눈도 침침한데 ‘매일 미사’ 책 대신(본당에서는 판매도, 구입도 못하게 했다) 두꺼운 구·신약 합본 성경을 가지고 다니며 전례 축일표를 보고 찾아서 볼 줄 알게 된 점이다. 그 모습이 그렇게도 흐뭇하고 보기 좋았다. 이해를 하는지 못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미사 전례 중에도 절대로 ‘매일 미사’를 올려놓지 못하게 하고 가장 큰 성경을 올려놓고 독서·복음 대목을 표시해 두었다. 교우들은 처음에는 불편해 하고 어색해 했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대전교구 정필국 베드로 신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