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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종합

조선 향한 칼레 신부의 그리움 후손이 풀었다

참 빛 사랑 2024. 6. 2. 21:30
 
프랑스에서 온 칼레 신부 후손들이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비행기도 없던 그 옛날에, 프랑스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 살던 신부님이 이렇게 먼 한국 땅까지 와서 신자들과 동고동락하셨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고 감동적입니다. 이런 게 바로 ‘신앙의 힘’이겠지요.”

문경 등 주로 경북 북부에서 사목한 선교사 칼레(Calais) 신부가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조선을 떠난 지 올해로 158년. 애타게 그리워 하던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를 대신해 난생처음 한국을 찾은 후손 마르틴씨는 감격에 찬 표정이었다. 5월 27일 서울 순례를 위해 한국 교회 ‘얼굴’인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을 방문한 자리에서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칼레 신부의 후손은 모두 7명. 마르틴씨는 칼레 신부 형(도미니크)의 증손녀다. 칼레 신부의 고향 마을 크리옹(Crion)에서 증조할아버지가 살던 집에 쭉 살고 있다. 남편 아메드씨, 그리고 증조부와 이름이 같은 남동생 도미니크씨 부부와 함께했다.
 
프랑스에서 온 칼레 신부 후손들이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 맨 끝은 정도영 신부.

칼레 신부 형의 외증손 안드레씨는 거동이 불편한 탓에 아내 안느씨만 한국행에 올랐다. 또 칼레 신부 동생(샤를 프랑수아)의 증손녀 미셸씨와 그의 딸 비르지니씨도 동행했다. 미셸씨는 “칼레 신부님이 ‘나를 기억하지도, 이야기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셔서 후손으로서 아는 바가 적은 게 사실”이라며 “한국 방문을 통해 그분에 대해 많이 배워가고 싶다”고 했다. 후손들은 명동대성당에 이어 새남터·절두산 순교성지를 둘러보며 순교의 영광으로 꽃핀 한국 교회 역사를 배웠다.

후손들은 선물도 함께 들고 왔다. 칼레 신부가 당시 고향으로 보낸 자필 서한 70통 중 2통으로, 조선 선교에 관한 소식이 담긴 교회사적 가치가 높은 유품이다. 한 통은 1862년 10월 21일 미리내에서 크리옹본당 신부에게 부친 편지이며, 한글로 표기한 ‘찬미 여수’(찬미 예수)라는 표현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다른 하나는 병인박해를 피해 중국으로 피난한 이후인 1867년 5월 5일 상하이에서 친척 앞으로 보낸 편지다. 조선 신자들 순교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중국에 머물며 조선 재입국을 몇 번이나 시도하다 실패한 칼레 신부는 건강 악화로 프랑스로 귀국, 시토회에 입회해 조선을 위해 기도하는 데 여생을 보낸다.

후손들은 한국 교회의 124위 순교 복자 기념일인 5월 29일 경북 문경 마원성지에서 복자 박상근(마티아) 후손들과 만나 미사를 봉헌하고, 성지 담당 정도영 신부에게 서한을 전달했다.

서한은 안동교구 역사관에 마련된 ‘칼레 신부 전시관’에 비치될 전망이다. 한편 이번 만남이 성사된 배경에는 cpbc가톨릭평화방송과 안동교구의 협업이 있었다. 칼레 신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고향을 방문, 후손들을 만나 한국으로 초청하게 된 것이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