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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

“과달루페 성모는 특정 민족의 전유물 아니다”

참 빛 사랑 2022. 12. 22. 17:49

교황, ‘갈색의 어머니’ 과달루페 성모의 ‘백인화·흑인화’로 지지 세력 결집하려는 정치인들에게 경고

▲ 미사 참여자들이 12일 과달루페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미사를 마치고 퇴장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과달루페 성모 형상을 새긴 천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바티칸시티=CNS
 
 


프란치스코 교황이 라틴아메리카의 일부 정치 세력이 갈색인 과달루페 성모의 얼굴을 ‘백인화’ 또는 ‘흑인화’하는 데 대해 “과달루페 성모님을 자신들만의 어머니로 만들지 마라”고 경고했다.

교황은 12일 바티칸에서 주례한 과달루페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미사에서 “성모님과의 만남을 자기 민족만의 전유물로 만들려는 이념적, 문화적 제안들이 있다는 소식을 우려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교황의 이날 발언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1531년 멕시코시티 테페약 언덕에서 농부 후안 디에고에게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얼굴색이 거무스름한 황갈색이고, 머리카락은 검었다. 전형적인 메스티조(중남미 토착민과 유럽인의 인종적 혼혈) 처녀 모습이다. 후대의 성미술 작가들은 디에고의 망토에 새겨진 모습대로 과달루페 성모를 ‘갈색 피부의 여인’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과달루페 성모 발현 500주년(2031년)을 앞둔 라틴아메리카에서 이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전에도 이에 대한 논쟁이 더러 있었지만 최근 들어 부쩍 심해진 분위기다. 백인이 많은 보수 성향의 우파 진영은 성모의 얼굴이 더 밝게 표현되고, 머리는 유럽 여성 스타일이 되길 원한다. 실제로 유럽 여성을 닮은 과달루페 성모 성화(성상)가 종종 공개되고 있다.

이에 반발해 진보 성향의 좌파 진영은 ‘갈색보다 더 진한’ 피부색의 성모 얼굴을 작가들에게 주문한다. 그런가 하면 흑인 정치 진영에서는 ‘블랙 마돈나’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가 왜 사람들 구설에 오를까 싶지만 라틴아메리카에서 과달루페 성모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멕시코만 하더라도 “가톨릭 신자 80%대, 과달루페노 100%”라는 말이 있다. 중남미는 벌써 500주년 준비 여정을 위한 대륙 간 기도를 시작한 상태다. 정치인들은 교황의 지적대로 과달루페 성모를 ‘자기 민족만의 전유물’로 만들어 지지 세력을 규합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스페인 식민 시절 발현한 과달루페 성모는 토착 문화와 유럽 문화가 혼합된 메스티조 특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태양신과 잡신을 숭배하던 아즈텍인 800여만 명이 성모 발현 7년 만에 거의 전부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라틴아메리카 복음화는 테페약 언덕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황의 이날 발언은 과달루페 성모에게서 고유한 정체성인 메스티조의 특성을 없애려는 몰지각한 정치 세력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교황은 중남미에서 모든 민족의 사랑을 받는 과달루페 성모를 ‘갈색의 어머니(Madre meticcia)’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과달루페 성모님은 야만적이고 착취적인 이교사상으로 인해 정체성을 위협받고, 실천적이고 실용적인 무신론의 선포로 인해 상처 입은 아메리카 민족들 한가운데에 계신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어 라틴아메리카가 “과달루페의 정신 안에서 500주년 준비 여정에 임하길” 촉구하는 한편 “성모님의 메시지가 세속적 방식과 이념으로 희석되지 않도록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