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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마르코 (4월 25일)
복음사가, 베드로 사도의 애제자, 알렉산드리아 교회 주교, 순교자.
마르코 복음사가는 신약성경에 무려 10번 가까이 등장합니다. 그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사도 12,12. 25)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됩니다. 요한은 유다식 이름이고, 마르코는 그리스식 이름입니다. 그는 마리아라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예루살렘에서 살았으며, 그의 집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집회를 했던 곳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마르코를 “나의 아들 마르코”(1베드 5,13)라고 할 만큼 그는 베드로의 애제자였습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따르면 마르코는 베드로 사도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사도행전은 베드로 사도가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기적같이 풀려나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사도 12,1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와 관계가 깊었던 마르코에 대해 초대 교회는 마르코 복음사가를 베드로 사도의 진정한 대변인이며 통역관으로 여겼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친저성(직접 서술했는지 여부)에 관해 처음으로 증거를 제시한 인물은 프리기아 지방(현 터키)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60~130) 주교였습니다. 그는 마르코 복음사가에 관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베드로의 통역관이 된 장로 요한 마르코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거나 행하신 것 가운데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을 순서대로는 아니라도 정확하게 기록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듣거나 그분을 따라다니지는 않았지만, 내가 말했듯이 훗날 베드로와 동행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과 관련해 해석하려 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가르침을 베풀곤 했다. 그러나 마르코는 몇 가지 내용을 자신이 기억하는 대로 기록하면서 어떤 오류도 범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자신이 들은 것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며 거짓 진술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파피아스의 단편, 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3,39,14-15. 「교부들의 성경주해-마르코 복음서」 번역 인용)
교회 전승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주교가 된 마르코는 신자들과 부활절 미사를 드리던 중 이교도의 습격을 받고 붙잡혔다고 합니다. 이교도들은 마르코의 목에 밧줄을 묶어 이틀 동안 거리로 끌고 다녔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낭자했던 마르코는 그렇게 순교했다고 합니다. 이교도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불태우려 하자 천둥과 번개가 쳤다고 하고, 이에 놀란 이교도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버려둔 채 도망치기 급급했다고 합니다. 그 틈을 타 알렉산드리아 신자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수습해 모셨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마르코 복음사가의 성해는 829년 베네치아 상인들에 의해 베네치아로 옮겨졌습니다. 베네치아는 마르코 복음사가를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대성당을 지어 그곳에 그의 성해를 안장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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