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살다보면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48) 해야만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참 빛 사랑 2019. 1. 9. 21:32






‘나만’ 불행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나만’이 나도 다른 사람처럼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오기를 불러온다. 그래서 나도 ‘행복해야만’ 한다는 의지를 불끈 솟게 하고 이것저것 계획하면서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자꾸 통제하려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과연 내 의지대로 된 것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다. 수녀원에 온 것도, 유학한 것도,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것도 그 어느 것도 나의 의지와 계획안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운명처럼 시작한 일들이었다.
 

사실 내 원의대로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면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한다. 그러면 시간 낭비에다 에너지는 바닥이고 무엇보다 나의 영혼은 불안과 우울 속에 침식되어 사람도 사랑도 잃고 만다. 때론 이 ‘해야만 한다’는 그 당위성은 누군가를 판단하고 공격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해야만 해’라는 것은 그저 나의 생각일 뿐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 생각의 틀에 맞춰 집어넣고 현실을 짜깁고 맞추려 했는지도 모른다. ‘너는 이렇게 해야만 해’ ‘사랑한다면 이래야만 하는 거야’ ‘부모라면, 자녀라면, 친구라면 이렇게 해야만 해’. 그러나 대부분 현실은 나의 통제 밖에 있다. 사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바로 현실인지도 모른다. 나의 강한 의지가 어느 정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힘을 주면 줄수록 그만큼 잃는 것도 참 많다.
 

지치고 고단하고 힘겨웠던 시절, 나는 그때 싸우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달라져야 했고, 내가 믿는 대로 그 사람이 바뀌어야만 했다. 내 자리를, 내 생각을, 내 성격을 지키기 위해서 나의 성장과 변화를 거부한 어리석은 싸움이었다.
 

‘해야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할 수는 있다.’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나의 자발적인 선택이다. 다양함과 다름과 틀림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의지가 아닌 선택, 통제가 아닌 허용은 삶의 흐름과 하느님의 섭리에 내어 맡기겠다는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힘을 빼고 뒤로 물러나 내어 맡기는 것. 이는 그냥 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아닌 그 어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맡기는 것이고 동시에 선택이기도 하다.
 

직장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C는 어느 날 나에게 힘없이 목멘 소리로 하소연을 해왔다. “수녀님, 그동안 믿었던 한 후배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몇몇 직원을 부추겨 사표를 냈어요. 게다가 원장님에게 나에 대한 험담을 빼곡히 적어 보냈더라고요. 정말로 분통이 터져서 며칠 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도저히 용서가 안 돼요.” 그러면서 명예훼손으로 고발해야 할지 문자로 경고를 보내야 할지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C로서는 신뢰했던 후배가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어떻게든 자기가 받은 상처를 되돌려 갚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가 싸워서 그들을 이길지는 모르지만, 상처는 더 커지고 아파서 지금보다 더 고된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지금은 아프겠지만 값진 인생수업을 했다고 생각하라고 다독여주었다.
 

아마도 C는 나에게 ‘말은 참 쉽게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살아온 인생은 그렇게 말한다. ‘아플수록 멈추라고. 통제 밖의 현실과 싸우지 말라고. 그저 삶의 흐름에 맡기고 공격하면 맞고 깨지고 부서지라고.’
 

어쩌면 달라져야 하는 것은 세상도 너도 아닌 나의 맷집일지도 모른다. 삶의 흐름과 성령의 섭리에 내어 맡길 수 있는, 맞아도 덜 아픈 맷집 말이다. 이것이 ‘행복할 수 있는’ 탁월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성찰하기

1. 삶은 단순해요. 내어 주는 대로 돌아오니까요.
 

2. ‘해야만 한다’는 것은 생각이지 현실이 아닙니다. 생각의 틀에 현실을 집어넣으려 애쓰지 말아요. 대신에 ‘할 수 있다’로 바꿔 봐요.
 

3.  용서할 수 없다고요? 너무 힘들다고요? 그렇다고 싸우지는 말아요. 성령께 삶의 흐름에 살짝 얹혀만 주세요.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잖아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