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이가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어쩌다 다쳤느냐고 물었다. “그게, 그러니까 스마트폰 보고 걷다가…” 하며 말을 얼버무린다. ‘굳이 더 듣지 않아도 아시잖아요?’ 하는 듯 멋쩍게 웃는다. 나도 웃었다. 부상을 당한 사람을 당연히 위로해야 마땅하나 젊은이도 나도 그냥 웃고 말았다. 누군가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다가 나무에 부딪혀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었을 때 부끄러워 아프다는 말을 못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왜 우리는 걸으면서 스마트폰을 사용할까? 바빠서일까? 아니다. 오히려 걸음도 느려지고 스마트폰에도 제대로 집중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세대만의 취향일까? 그도 아닐 게다. 중장년까지 거리에서 스마트폰을 한다. 서울시민 3명 중 1명이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걸으면서 혹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몸’과 ‘정신’의 차원에서도 매우 불편한 행위인데도 말이다. 불편함과 사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걸을 때 몸의 존재감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 고독감이 밀려온다. 벗어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에 갇혀 ‘혼자’라는 느낌이 배가 될 때도 있다. 달리면 숨이 차고 빨리 걷다 보면 피곤하다. 걸을 때만큼은 ‘현재’를 온전히 품어야 한다. 차나 비행기로 몸의 확장감을 누릴 수도 없다. 영화나 드라마로 내 존재의 확장감도 누릴 수 없다. 걷기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직면하게 한다.
나는 거의 매일 걸으면서도 의지로 걷는다. 몸은 무력하다. 우리 몸은 지속해서 편한 것을 찾는다. 먹고 싶고, 놀고 싶고, 눕고 싶다. 걷는다는 것은 이런 욕구에 반하는 행위다.
걸으면서 결핍은 더 커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거리에서 무언가를 먹기도 하고 음악을 듣는지도 모른다. 외로움으로 밀려오는 감정의 허기짐을 음악으로, 스마트폰으로 포만감을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혼자라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외로움을 잊기 위해.
‘혼자 있음’을 버티지 못하면 불편한 감정이 생긴다. 게으름, 귀찮음, 짜증, 두려움, 우울, 불안, 초조 등의 감정들과 마주하고 싶지는 않다. 이 불편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마트폰만큼 좋은 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스마트폰은 지속해서 다른 감정을 덧입히고 ‘혼자 있는 시간’과 현재를 잊게 한다. 그런데 이 습관은 결국 ‘현재’를 벗어나는 산만함으로 기울어진다.
스마트폰은 우리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집중력이 부족하면 높은 차원에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게 어렵다. 대화할 때, 공부할 때, 정리할 때, 강의 준비 할 때, 회의할 때, 창의적인 일을 모색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할 때 집중력을 흐려지게 한다.
나는 가능한 매일 걸으려고 한다. 귀찮아도 피곤해도 바빠도 걷는다. 걷기는 몸의 기도이며 순례의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소중한 순간이다. 몸에 집중할 때 영과 하나가 된다. 몸의 존재감을 만끽할 때 ‘혼자 있음’을 즐길 수 있다.
하느님을 찾는 그리스도인이나 수도성직자들만큼은 스마트폰 없이 걸었으면 좋겠다. 걸으면서 몸과 영의 소통을 이뤄내고 ‘현재’를 촘촘하게 누린다. 바로 그 ‘현재’에 하느님이 현존하신다.
성찰하기
1 걸으면서 ‘몸’을 통해 나의 존재감을 느껴봐요.
2 스마트폰을 넣어두고 걸으면서 느껴지는 외로움과 피곤함, 공허함을 온전히 버텨내는 연습을 해요.
3 걸으면서 ‘혼자 있음’을 즐기는 바로 그 ‘현재’에 하느님이 현존하시니까요.
4 집중력 높여주는 기도, 특히 의식 성찰과 묵상을 매일 챙겨서 해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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