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자기 희생 없는 ‘하루살이 문화’ 지적
프란치스코 교황은 혼인 및 가정생활과 관련하여 오늘날 신자들이 드러내는 문제들은 부분적으로는 교회가 신자들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이나 어려움을 도외시한 채 혼인과 가정에 관한 규범적 가르침만을 제시한 데서 빚어진 것은 아닌지 자기 비판적 성찰을 했다(37항, 지난호 참조).
물론 대부분 신자들이 가정의 가치를 존중하고 또 교회의 가르침과 지도를 높이 평가하고 있음에 대해 교황은 고마움을 표시한다. 하지만 이런 자기 비판을 통해 교황이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혼인과 가정생활을 통한 참된 행복의 길을 발견하도록 사전에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타락한 세상을 규탄하는 데에 사목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배려와 치유는 없이 단죄와 규탄만 해온 적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황은 그래서 이렇게까지 적시한다. “많은 사람은 혼인과 가정에 관한 교회의 메시지가 예수의 가르침과 태도를 분명하게 반영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예수님은 이상(理想)을 요구하고 제시하셨지만 사마리아 여인이나 간음하다 잡힌 여인처럼 개인들의 연약함에 측은지심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38항).
그렇다고 해서 사랑과 자기 희생을 증진하지 못하는 문화적 쇠퇴에 대해 교회가 더 이상 경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실태를 계속 지적한다. 그중 하나가 ‘하루살이 문화(culture of the ephemeral)’다.
하루살이 문화란 애정 관계를 찰나적으로 여겨 이 사람, 저 사람으로 쉽게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마치 인터넷에서 마음에 들면 접속했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끊어버리는 것처럼 애정 관계를 그런 식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문화를 교황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교황은 배우자와 가족에게 평생 헌신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자신만의 자유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집착, 그리고 나의 외로움을 달래는 데 필요한 손익비용을 저울질하는 것 등이 이런 하루살이 문화와 관련된다고 본다. 그러면서 애정 관계를 마치 쓰고 나면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여기는 세태의 문제를 지적한다. 교황은 또 나르시시즘(Nacissism) 곧 자기도취증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자기도취에 빠진 이들은 자기만이 최고인 줄 알기에 자신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볼 줄을 모른다. 자기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만을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지닌 이들은 이렇게 자신을 위해 남을 이용하겠지만, 그들 역시 조만간에 이용당하고 착취당하고 마침내는 버려지고 만다. 그런데 이런 파탄은 젊은이들 사이에만이 아니라 기성세대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함께 늙어가고, 서로 보살피고, 의지처가 되어 주는 이상을 거부한다”(39항)고 교황은 지적한다.
이런 하루살이 문화 외에도 “젊은이들에게 결혼을 하지 못하게 압력을 가하는 문화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40항)고 교황은 본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작용한다. 경제적 이유, 학업이나 직업상의 이유, 혼인과 가정의 가치를 무시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이유, 혼인에 실패한 부부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이유, 개인의 자유와 독립을 잃고 배우자에게 또 가족에게 속박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이유 등등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개탄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기존의 방식으로 혼인과 가정생활의 중요성을 일방적으로 강조만 해서도 곤란하다. 교황은 이렇게 언명한다. “우리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올바른 언어와 논증과 증거를 찾아서, 관대함을 베풀고 투신하고 사랑하고 영웅적 행위까지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의 역량에 호소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이 열정과 용기를 지니고 혼인에 계속 도전하라고 초대해야 합니다”(40항).
※ 성찰하기
젊은이들 사이에서 연애ㆍ결혼ㆍ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 세대를 넘어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오포’ 세대. 여기에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다는 ‘칠포’ 세대까지 회자하는 우리 현실에서 교회와 신자들이 젊은이들에게 열정과 용기를 지니고 도전하라고 초대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와 증언(증거)의 형태는 무엇일까?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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