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퇴근길 저녁 무렵 들리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가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으로 시작하는 이태선 시, 박태준 곡의 우리 가곡을 들으면 정겨운 귀뚜라미 소리의 가을밤 풍경이 떠오른다.
“너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각종 메뚜기와 각종 방아깨비, 각종 누리와 귀뚜라미다.”(레위 11,22) 구약성경에도 등장할 정도로 친숙한 귀뚜라미는 날개를 비벼서 소리를 낸다. 소리(음파)는 물체의 진동(떨림)에 의해 발생하고 매질(진동을 전달하는 매개체)에 의해 전달되는 진동의 움직임(파동)이다. 우리가 듣는 소리는 공기의 진동이 귀의 고막으로 전달되면 청신경에서 전기적인 신호가 발생하고 이를 대뇌의 측두엽에서 인지하는 것이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는 보통 20~2만㎐(헤르츠) 정도인데, 이것은 1초에 공기의 떨림이 20~2만 번 사이일 때 우리의 대뇌가 소리를 인지한다는 뜻이다. 귀뚜라미는 보통 2000~1만㎐의 소리를 내는데, 노랫말에 나올 정도로 우리 귀에 정겹게 들린다. 파리나 벌은 50㎐ 정도의 날갯짓으로 우리 귀에 ‘부웅’하는 소리를, 모기는 대략 500~600㎐로 ‘애앵’하는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여름철 말매미는 6000㎐ 정도인데 이런 소리들은 시끄럽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정겹다거나 시끄럽다는 것은 모두 인간의 관점이지, 곤충들의 입장에서는 인간에게 피해를 주려고 일부러 날갯짓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생물들에게는 인간에 의한 무분별한 환경파괴, 갈등이나 전쟁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자연에 반(反)한 불쾌한 소음일 수 있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음파 영역인 20~2만㎐를 벗어난 1초에 20번 미만(초저주파) 또는 2만 번 이상의 떨림(초음파)은 우리가 들을 수 없다. 나비의 날갯짓은 1초에 20회 미만이기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지 그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세상에는 들리지 않는 수많은 소리들과 아우성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주위의 특정한 소리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반대로 너무 무심하다.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듣기 싫은 소리는 외면하기 때문이다. 아첨이나 근거 없는 세간의 루머들,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소리는 아무리 작아도 귀에 쏙쏙 잘 들어오지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로부터 들려오는 간절한 소리,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 일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에는 쉽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루카 복음서 10장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은 남들은 들으려 하지 않은 ‘선을 행하라’는 자기 내면의 소리에 집중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0월 2일 시작된 제16차 세계주교 시노드 정기총회 제2회기에서 시노드 논의의 핵심으로 경청을 강조했다. 평신도들에게 교황의 메시지는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세상과 타인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보내고 있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기 위해 우리는 마음의 귀를 열어야 한다. 무엇보다 늘 스스로를 성찰하고 옳은 일을 행하라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 늘 깨어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마르 4,23)
(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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