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 <2>내동화세상 사회적협동조합 ‘따뜻한 두부삼촌’
할머니의 가마솥은 쉬는 날이 없었다. 할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구수한 냄새가 마을 전체에 퍼졌다. 할머니는 두부를 잘 만들었다. 맷돌에 노란 콩을 갈아 뽀얀 콩물이 나오면 콩물을 끓인 다음 간수를 넣는다. 간수를 넣으면 신기하게도 뽀얀 콩물에서 두부가 몽글몽글 피어난다. 순두부다. 순두부를 틀에 넣고 잘 누르면 두부가 돼서 나온다. 먹는 사람에게 두부는 두부일 뿐이지만 만드는 사람에게는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자식들과 손주들을 위한 할머니의 두부처럼 말이다.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타인의 삶.’ 어린시절 기억 속 할머니처럼 두부에 마음을 가득 담는 두부에 진심인 사람들, ‘따뜻한 두부삼촌’을 만났다.
두부 만드는 삼촌들
서울 도봉역 인근 주택가 골목에 자리 잡은 두부 가게. 두부라고 쓰인 두부 모양의 간판이 시선을 끌었다. 아래에는 가게 이름인 따뜻한 두부삼촌이라고 쓰인 간판이 있었는데 이름만으로도 뭔가 마음씨 좋은 삼촌들이 반겨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게에 들어서자 구수한 냄새가 가득했다. 구수한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올 정도였다. 삼촌들이 두부를 만들기 위해 콩을 갈아 끓이고 있었다. 사회복지사 한창희씨, 알코올 의존(중독) 회복자 김정일(베드로)씨와 이정희(가명)씨가 미소로 기자를 반겼다.
따뜻한 두부삼촌은 중독재활시설 내동화세상 사회적협동조합(시설장 김남형 그라시아)이 운영하는 알코올 의존 회복자 취업훈련장이다. 2019년 (재)바보의나눔(이사장 손희송 주교)의 도움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첫해는 삼촌들이 가게 터를 알아보고 가게를 꾸미는 데 매달렸다. 페인트칠에서부터 바닥공사, 울타리 제작 등 삼촌들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인지 가게 곳곳에는 삼촌들의 애정이 숨겨져 있다.
두부를 만들기 위해 발품도 많이 팔았다. 전국에 유명한 두부 가게는 다 다녀봤을 정도다. 먹고 나서 비법을 물어보고 만들기를 반복한 결과 2019년 11월 따뜻한 두부삼촌만의 두부가 탄생했다.
콩이 두부가 되기까지
삼촌들의 하루는 오전 10시 기계를 조립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기계는 삼촌들의 수고를 덜어줄 맷돌이다. 전날 사용했던 맷돌을 그대로 사용해도 되지만 삼촌들은 맷돌을 분해해 세척한 후 다시 조립하는 수고를 마다치 않는다. 깨끗하고 정직하게 두부를 만들겠다는 마음이다.
맷돌 조립이 끝나면 전날 물에 불려 놓았던 콩을 갈기 시작한다. 콩을 맷돌에 넣고 얼마쯤 지나자 맷돌과 연결된 통으로 뽀얀 콩물이 콸콸 쏟아진다. 이렇게 만든 콩물은 통에서 한번 끓인 후 다른 통에 옮겨 담는다. 다음은 두부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인 간수를 넣는 단계다. 콩물을 한 방향으로 젓다가 간수를 넣은 후 빠르게 반대 방향으로 한번 젓는데 이때 콩물을 젓는 것이 삼촌들의 기술이다. 간수까지 넣고 나면 남은 건 시간을 주는 일이다. 뚜껑을 닫고 기다리면 두부가 꽃처럼 피어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순두부, 순두부를 틀에 넣고 누르면 두부가 된다.
두부 만드는 과정은 겉보기에는 어렵지 않게 보인다. 하지만 중간중간 두부를 만드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복잡한 과정들이 숨어있다. 콩을 갈고 콩물을 끓이는 과정에서도 냄새와 색깔로 상태를 파악해야 하고 간수 만드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라도 흐트러지면 제대로 된 두부를 만들 수 없다. 오랜 시간 많이 실패하고 나서 얻은 소중한 경험치다. 또한, 관심과 애정은 훌륭한 조미료다.
사람을 살리는 두부
많은 음식 중 왜 두부인가. 가장 먼저 떠오른 물음이었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나눔이라는 가치에서 찾을 수 있었다.
콩은 척박한 땅에서 비바람과 뜨거운 태양을 견디며 자란다. 오랜 시간 단단해진 콩을 물에 불려 갈고 끓인 후 굳히면 두부가 된다. 두부는 몸과 마음이 배고픈 이들의 배를 불리고 그들에게 힘을 주는 음식이다.
의존자 역시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고 견뎌야 결국에는 회복자가 된다. 회복자는 또다시 많은 의존자를 살린다. 콩이 자라 두부가 되는 과정도 의존자들의 회복 과정과 닮았다. 의존의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 건강한 모습을 찾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은 모습이다. 나눔과 정직을 가치로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따뜻한 두부삼촌의 철학과 같다.
따뜻한 두부삼촌의 두부는 다른 두부에 비해 크기가 크다. 가격도 저렴하다. 손님들이 두부를 사가면서 ‘이렇게 만들어 팔면 남느냐’고 하지만 따뜻한 두부삼촌이 추구하는 가치는 이윤 창출이 아니라 나눔이다. 건강한 한 끼의 식사가 될 수 있도록 정성껏, 깨끗이, 넉넉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따뜻한 두부삼촌을 시작할 때 깨끗하고 정직하게 만들어 어려운 이웃과 나누겠다고 김수환 추기경께 마음으로 약속했다.
따뜻한 두부삼촌이라는 이름은 삼촌들이 직접 지었다. 따뜻한 두부만큼 삼촌들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두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따뜻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삼촌이라는 말이 정겹기도 했고 실제로 총각들이 많기도 했다.
삼촌들의 이야기
알코올 의존 회복자 김정일(베드로)씨는 따뜻한 두부삼촌의 실습생이다. 김씨는 내동화세상에 들어오기 전 가구도 만들었고 와이파이 중계기 설치하는 일도 했다. 서울 지하철 4호선과 7호선에 와이파이 중계기도 김씨가 설치했다.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알코올 의존으로 돌아가신 후 우울증이 찾아왔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알코올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지방 파견 근무를 핑계로 숙소를 잡고 며칠씩 술을 마셨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과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주변 사람의 권유로 내동화세상에 들어왔지만, 알코올은 김씨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입소와 퇴소를 반복하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니다 싶어 두부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 김씨는 “두부 만드는 일을 하고 나서 만족감이 컸다”며 “두부를 만들러 나올 때마다 재미있고 새롭다”고 말했다. 가족과도 많이 가까워졌다. 그는 “아들도 가게에 와서 제가 일하는 것을 보고는 좋다고 한다”며 “가족한테 사랑받고 싶고 또 사랑하고 싶다”고 했다.
“이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행복은 다른데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도 사랑이 담긴 따뜻한 두부를 만들겠습니다.”
행복한 삼촌들의 두부 만들기는 오늘도 계속된다.
문의 : 02-954-2227, 따뜻한 두부삼촌(서울 도봉구 도봉로 162길 36 1층)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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