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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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종합

[신년 대담] 하느님 사랑 나누고 복음의 기쁨이 넘치는 교회 공동체 이뤄갑시다.

참 빛 사랑 2020. 1. 1. 21:00


2020 신년 대담 -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에게 듣는다


▲ 서울대교구장이며 평양교구장 서리인 염수정 추기경은 가톨릭평화신문과 가진 신년 대담에서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사랑의 누룩’이 돼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이 밝았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교회는 경자년 한 해를 한반도 평화 염원의 해로 지낸다. 아울러 우리 민족의 화해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갈등을 해소하고, 그리스도의 평화가 실현될 수 있길 소망하는 해이기도 하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서울대교구장이며 평양교구장 서리인 염수정 추기경을 통해 한국 교회와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들었다. 염 추기경과의 신년 대담은 서면으로 진행됐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새해에도 여전히 한반도 평화와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이 지속될 전망입니다. 특히 한국 교회는 6ㆍ25전쟁 발발 70년을 맞아 한 해 동안 매일 밤 9시에 평화를 위한 주모경을 바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평화와 일치를 위한 교회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70년이라는 긴 세월만큼 우리 민족상잔의 고통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분단의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된 만큼 같은 곳의 상처가 다시 찢겨 나가고 덧나며 갈등이 켜켜이 쌓여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모든 문제가 한순간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교회는 인내심을 갖고 사랑을 선포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맙시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께 배우고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가 바로 ‘사랑’이니까요.

인간은 하느님을 배반하여 죄를 짓고 결국 고통과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당신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인간 구원을 완성하셨지요. 이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가 할 일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를 닮아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새해는 국제 카리타스가 대북 지원 사업을 한 지 25년이 되는 해입니다. 추기경께서도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카리타스뿐 아니라 에디지오 공동체 등 여러 교회 기관을 통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북녘의 형제들을 위해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는지요.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사랑의 누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서양에서는 빵의 모체가 되는 누룩을 보존하기 위해 누룩으로 부풀어 오른 반죽 덩어리가 있는 집에서 일부를 떼어 이웃에게 내어줬습니다. 이웃은 또 다른 이웃에게 반죽 덩어리를 떼어 줌으로써 누룩이 보존됐습니다. 만일 서로 주고받지 않고 혼자 반죽을 끌어안고 있었다면, 그 반죽에는 금세 곰팡이가 슬어버렸을 겁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주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 나누고 세상에 꽃피울 의무가 우리에겐 있습니다. 주님께 받은 사랑을 우리 자신만을 위해 끌어안고 있기만 하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북녘의 형제들은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핏줄이 흐르는 형제자매입니다. 그리고 우리 곁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죠.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을 살며 우리 주위에, 특히 북녘 동포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혐오와 차별, 이념 갈등 등으로 사회 분열이 심각합니다. 약자를 차별하고 다양성을 무시하는 이런 사회를 신자들과 현대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하느님의 자리를 물질이 대체하며 벌어지는 참극이라 생각합니다. ‘효율화’란 명목으로 경쟁에 내몰린 사회에서는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을 그 자체로 고귀하게 여기지 않고 적개심의 대상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지나치면 노골적인 멸시도 서슴지 않죠. 보통 인간성이 결여된 세상에서는 특히 가장 약한 존재의 고통과 희생이 이어집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평신도들은 세상을 그리스도의 정신에 젖어들게 하여야 할 뿐 아니라, 모든 일에서 참으로 인간 사회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기쁨과 희망」 43항)

쉽지 않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에서 구체적 실천 방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고, 현대 사회의 새로운 노예살이에 얽매인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자신 안에 갇혀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이 다시 볼 수 있도록 하고, 존엄성을 빼앗긴 모든 이가 다시 그 존엄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자비의 얼굴」 16항)



▲낙태죄 처벌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생명 운동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요.

“더 큰 악을 피하고자 덜 큰 악을 묵인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무리 중대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악을 향해 선을 이끌어내려고 하면 안 된다”(「인간생명」 14항)는 성 바오로 6세 교황님 말씀처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우리 교회의 인간 생명에 대한 전통적 입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교회는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통해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모습을 간직하고”(1702항) 있으며, “임신되는 순간부터 인간은 영원한 행복을 향하게 되어 있다”(1703항)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계속해서 입법자들의 성찰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우리 현실에서 임신한 여성이 모성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미혼부 등 남성의 책임을 강화하는 ‘양육책임법’의 제정하고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 여성이 부담 없이 임신, 출산, 양육할 수 있는 모성보호정책, 임신한 부부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육아시설의 확충 등 낙태를 선택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입법을 꾸준히 요구해야 합니다. 또한, 의료인의 낙태 시술에 대한 양심적 거부권을 위해 제도적 보완을 요청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임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는 생명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며 구체적 노력을 해야 합니다. 생명 교육과 혼인 교리를 강화하여 신자 공동체의 생명 교육을 굳건하게 하는 데서 더 나아가 미혼모를 지원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등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부터 죽음이 아닌 생명을 선택하고, 생명을 수호하며 존중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죽음의 문화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말이나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종교를 믿지 않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신앙이 없어도 올바르게 살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추기경님께 신앙이란 무엇인지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현대의 많은 사람이 하느님과의 친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거나 노골적으로 배척하는 ‘무신론’을 중대한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하느님께 기초를 두지 않고 영생에 대한 희망이 없으면, 인간의 존엄성은 극심히 손상될 것이며, 생명과 죽음, 죄와 고통의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아 사람들은 흔히 절망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기쁨과 희망」 21항) 그래서 희망에 대한 외침과 가르침은 더욱더 중요합니다. 희망을 종종 등불에 비유합니다. 복음 말씀 중 등불을 켜고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이야기(마태 25,1-13)가 있는데, 복음 속 열 처녀에게 일어난 일이 곧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겠지요.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생활은 등불을 밝히는 기름과 같습니다. 어둠 속을 밝게 비춰 나만의 여정만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의 길도 환히 비추게 되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두려움과 근심 속에 있다가 그들의 여정에 동반해주신다는 믿음을 얻고 그분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듯이, 신앙 안의 그리스도인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기도 안에서 주님과 친교를 이루는 이들입니다.



 

▲한국 교회 이대로 좋은지요. 추기경님의 솔직한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지난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에서 젊은이들을 만났을 때 한 청년으로부터 무신론자인 자신의 대학 친구에게 “그리스도교가 참된 종교라는 걸 이해시키기 위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교황님께서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설명은 가장 마지막에 할 일이다.”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첫 번째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살다 보면 친구가 ‘너는 왜 그렇게 사는 것인지’ 물어볼 것이라며 덧붙이셨습니다. “가장 마지막에 기억해야 할 일은 이것입니다. 증거하지 않는 교회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한낱 연기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한국 교회가 어떤 설명에 앞서 이 세상에 주님을 증거하고 있는지 자문해보면 통렬한 반성을 하게 됩니다. 교회는 소외된 이 없이 풍요를 드러내고, 형제애로 일치의 표지가 되어 세상에 주님 현존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 치열한 경쟁과 성과주의의 문화 속에서 우리 교회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관대하고 이타적인 사랑의 문화를 우리가 먼저 펼쳐 보여야 한다는 사명도 있습니다.

우리에겐 빛나는 신앙을 증거한 수많은 순교자와 신앙 선조들이 계십니다. 조선대목구 2대 교구장인 앵베르 주교님은 순교 직전 동료들에게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하셨지요. 목자가 포기하기 전에는 결코 양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저를 비롯해 주교님과 신부님들, 사제들의 협력자이신 남녀 봉헌생활자들 모두 한마음일 것입니다.

또 새로운 한 해를 열며 신앙 선배들의 모범을 따르며 현실에 실망한 이들에게 희망을 되살려주고,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는 역할을 끝까지 용기 있게 수행해나가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 염수정 추기경은 “젊은이들이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려 세상 풍파에 시달리다 쓰러지지 않도록 교회는 이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교구가 지난해 4월 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과 함께하는 젊은이 십자가의 길 예식 중 주교단과 청년이 함께 기도를 바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많은 젊은이가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 통계를 보면 청년들의 주일 미사 참여율이 교적 대비 5% 미만입니다. 95% 이상의 청년이 교회를 찾지 않고 있습니다. 신앙이 청년들의 희망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젊은이들은 나무와 같습니다.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나무는 폭풍우가 지나면 쓰러져버립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세상이 지금 생겨난 것처럼 뿌리 없는 미래를 건설하라고 젊은이들에게 제안하는 몇 가지를 보는 것은 저를 마음 아프게 한다”

젊은이들이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려 세상 풍파에 시달리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교회는 이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신앙 선배들인 노인들, 어른들이 젊은이가 따르고 싶은 삶과 신앙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젊은이들도 선배들을 따라 손을 모아 기도하고, 교회 공동체를 찾아갑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선배들이 먼저 기도 안에서 주님을 따르는 행복한 삶을 직접 살며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교회로 젊은이를 부르는 진정한 방법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젊은이에게 비춰지는 모습이 어떠한지 늘 돌이켜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작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일본 사목방문 중 도쿄에서 젊은이들을 만나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갈수록 사람, 사회 공동체, 심지어 사회 전반이 외적으로는 고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내적 삶은 빈곤해지고 내적인 후진국이 되면 참된 삶과 활력을 잃어버린다.” 또 “가장 끔찍한 가난은 외로움과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목 현장 일선에 계신 우리 교구 청소년 담당 주교님과 신부님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지혜를 모으고 있습니다.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주도적으로 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새로운 사목 방안을 모색하고 거리의 청소년에게 찾아가는 사목을 펼치고자 직접 거리로 나간 신부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적극적인 관심과 사랑이 결국 외로움에 갇힐 위기에 놓인 젊은이들을 다시 일으켜줄 것입니다. 주교님과 사제들, 교회의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교육기관 관계자들의 열정이 젊은이들에게 가 닿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추기경께서는 2020년 사목교서를 통해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본당 공동체’를 만들자고 당부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의 사목 목표대로 본당이 신앙의 공동체, 하나 되는 공동체, 선교하는 공동체로 탈바꿈하기 위해선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 교구는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본당 공동체’를 만드는 데 힘을 모으고자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복음의 기쁨을 주고받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정과 본당 그리고 사회 안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복음을 체험하고 전하는 선교적 교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신부님들께서는 교구장인 저와 일치하는 가운데 사목활동 안에서 선교를 위한 노력에 힘을 기울여 주시길 당부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사제들이 먼저 복음의 기쁨을 체험하고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삶을 바탕으로 “단순한 현상 유지를 넘어서 참으로 선교하는 사목으로”(「복음의 기쁨」 15항) 옮아갑시다. 본당 신자뿐만 아니라 구역 안의 다양한 사회복지 시설, 학교, 병원, 관공서 등에도 더 큰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홀몸노인이나 이주민 등과 같은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에 대한 깊은 관심과 돌봄에 힘써주십시오. 본당 구역 안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이 복음의 기쁨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찾아가는 사목’에 힘을 기울여 주십시오.

남녀 봉헌생활자 여러분께는 고유한 신분 안에서 선교에 충실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고유한 활동을 통해 선교를 지향하고 노력하는 사목자들의 좋은 협력자가 되어주십시오. 또한, 선교의 바탕은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알 수 있도록 본당 신자들에게 기도와 사랑의 모범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평신도들은 가정을 비롯한 학교, 직장, 각종 모임뿐 아니라 본당과 지역 안에서 복음의 기쁨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시길 당부드립니다. 자신의 재능, 시간, 그리고 가진 바를 복음화를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봉헌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았던 ‘특별 전교의 달’의 정신과 실천 내용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도록 합시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신 지 만 7년이 되셨습니다. 아울러 올해는 사제수품 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합니다. 사제요, 주교로서 반세기 동안 한국 교회를 위해 막중한 사목을 해오셨습니다. 사제 생활 50년 동안 가장 기쁘고 보람된 일과 가장 슬프고 안타까웠던 기억을 듣고 싶습니다.
 

사제 생활 50년을 되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하느님 은총과 자비의 시간입니다. 건강과 시간을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50년 사제 생활 동안 가장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느낀 때는 200년이 넘는 한국 교회 순교자들이 항상 함께 해주셨다고 믿기에 개인적 영광을 넘어선 뜨거운 감격이었습니다.

방치되다시피 했던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가 서소문역사공원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으로 새 단장하게 된 것에서 주님의 섭리와 순교자들의 도움을 느낍니다. 이곳에서 순교한 우리 신앙 선조들은 이웃에게 하느님의 선함을 드러내고 이웃에 봉사했으며, 인간성의 가치와 세상의 선익을 위해 애썼습니다. 서소문 성지 조성을 위해 애써주신 많은 분의 노고가 있었기에 그 장소성과 역사성을 다시금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이 우리 신앙 선조들이 지키고자 했던 인간의 존엄성을 기억하고, 영적인 기쁨과 위로를 느끼시길 바랄 뿐입니다.

또한, 영등포본당 주임 사제 재임 시절인 1986년 영등포시장 일대에서 얼어 죽은 행려인을 만난 기억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제 사제 생활 한가운데를 항상 묵직하게 누르고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시신을 수습하던 당시 행려인의 작은 가방에서 발견된 루카 복음서도 잊을 수 없는 슬픔입니다. 그때나 30년이 지난 지금이나 끼니를 이어갈 수 없어 삶의 막다른 길에 놓인 이들이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있다는 것은 여전히 큰 안타까움입니다.

하지만 슬픔 속에서도 희망이 피어납니다. 1986년 여러 도움이 모여 문을 연 행려자 무료 급식소가 아직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LG 의인상을 받으신 95세 정희일 할머니께서 지금도 급식 봉사를 하고 계신 데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반세기의 사제생활은 한순간도 빠짐없이 주님의 섭리와 은총에 감격할 수밖에 없는 시간입니다.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계속해서 이어가고자 다짐합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0년을 맞는 신자들과 국민에게 새해 덕담을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 모두 새해에 주님의 크신 은총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우리는 꿈과 희망으로 2020년 맞이했습니다. 특별히 새해에 여러분들이 바라는 모든 소망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고 늘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영육간에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