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라르트 다비드, ‘축복하는 하느님 아버지’, 15세기쯤, 유화,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파리
극사실 기법으로 하느님 모습 묘사
15세기 교황의 수위권과 공의회 우위설이 한창 대립할 때 교황을 지지하는 교회에서 교황관을 쓴 ‘판토크라토르(전능하신) 그리스도’를 그렸다고 했습니다. 플랑드르(현 네덜란드) 화파로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0?~1441)의 영향을 받은 헤라르트 다비드(Gerard David, 1460?~1523)의 ‘축복하는 하느님 아버지’도 그 대표적 작품입니다. 15세기 말쯤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플랑드르 화풍의 특징인 극사실 기법으로 마치 하느님 얼굴을 직접 마주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머리카락과 수염 한 올 한 올, 카파(전례복)의 자수와 보석들의 섬세함은 돋보기로 보는 듯합니다. 작품에서 그리스도는 교황의 삼중관을 쓰고 카파를 입고 있지만, 전통적인 판토크라토르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작품 제목처럼 성자를 통한 성부의 형상을 시각화한 것은 비잔틴 양식의 성미술 전통을 계승한 요소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권위와 존엄을 상징하는 풍성한 머리카락과 수염, 왼손으로 쥐고 있는 왕홀은 이 작품이 판토크라토르임을 보여 줍니다. 아울러 오른쪽 손가락으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고백하는 것 또한 전통적인 이미지입니다.
사랑 넘치는 자애 표현
▲ 알브레히트 뒤러, ‘구세주’, 1504년쯤, 유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미국 뉴욕 |
16세기 독일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환상적이고 묵시적인 세계를 그린 거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공부해 유럽 전체의 화풍을 섭렵했습니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같은 선대 르네상스 화가들이 심취했던 인체의 균형과 조화에 평생 몰두했습니다.
그는 인체를 일부러 왜곡되게 길고 넓게 그려 시각적으로 균형감을 주는 독창적인 화법을 개발했습니다. 1504년에 뒤러는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아담과 이브’, ‘예수 탄생’ 등의 동판화를 선보입니다. 그는 같은 해에 유화로 ‘구세주’를 그립니다. 당시 유럽은 격변기였습니다. 중세가 끝나고 근세로 접어들던 시기였습니다. 1492년 스페인이 통일하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습니다. 인문주의가 성행해 문학 예술 과학 등 모든 학문 분야에 르네상스가 열렸습니다. 교회도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요한 묵시록에 기초한 종말론이 유행했고, 교회가 쇄신돼야 한다는 요구가 전 유럽으로 퍼졌습니다.
이러한 때 뒤러는 교회의 전통 틀에서 살짝 벗어난 판토크라토르를 그립니다. 그의 ‘구세주’ 작품에는 제도 교회의 흔적이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화려한 교황 제의 대신 보라색과 붉은색 옷감으로 마지막 날 그리스도 왕으로 오시는 주님의 권위를 드러냅니다. 또 정통적인 근엄한 눈은 온유한 눈으로 바뀌어 오시는 구세주께서 정의의 심판자가 아닌 사랑 넘치는 자애로우신 분임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오른손은 상징적 복음의 언어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달린 원형 모형은 지구를 연상케 하는데 8세기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2세 황제 때부터 사용한 판토크라토르의 표현 기법입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원형처럼 그리스도의 평화가 영원히 지속할 것이라는 믿음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교회 분열 격랑의 시기에 그려진 성미술
▲ 엘 그레코, ‘구세주 그리스도’, 1610~1614, 유화, 엘 그레코 미술관, 스페인 마드리드 |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과 거의 비슷한 이미지를 스페인 바로코 미술의 대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목도 ‘구세주 그리스도’입니다. 엘 그레코의 말기 작품입니다. 엘 그레코가 이 그림을 그리던 당시 유럽은 ‘교회 분열’이라는 큰 홍역을 치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프로테스탄트들은 눈에 보이는 교회 조직이 참된 교회가 아니며 오직 ‘성경’ ‘은총’ ‘믿음’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성미술을 우상숭배로 여기고 파괴했습니다. 또 이들은 제도 교회를 부정하는 극단적 표현으로 성사, 특히 ‘성체성사’를 부인하고 단지 상징적 의미로만 해석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프로테스탄트의 거센 불길에 맞서 쇄신을 단행하기 위해 트리엔트 공의회를 열었습니다. 1545년 12월 13일부터 1563년 12월 4일까지 18년에 걸쳐 진행된 공의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견줄 만큼 혁신적으로 교회 쇄신을 단행했습니다. 공의회는 로마 표준 라틴어 성경과 미사 경본, 시간 전례서, 교리서 등을 마련했고, 신학교와 수도원 정비, 가난한 이웃에 대한 선행 실천을 권고했습니다. 아울러 일곱 성사가 교회의 참된 성사임을 확인하면서 무엇보다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 형상 안에 실재한다고 재확인했습니다.
엘 그레코는 격랑의 시기에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이며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는 교두보이자 중심지인 톨레도에서 궁정화가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스페인 펠리페 2세(1527~1598) 국왕은 프로테스탄트에 맞서 가톨릭 신앙을 지키는 데 앞장섰고, 트리엔트 공의회 결의안을 적극적으로 실천했습니다. 엘 그레코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신비감 넘치는 성미술을 그렸습니다. 그는 구도와 조화를 강조하는 정형화된 방식에서 벗어나 빛과 색의 대비로 극적인 단순미를 드러내는 작품을 구현했습니다.
그의 작품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콘의 판토크라토르 기법을 유지하면서도 뒤러처럼 자비로우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맑고 깊은 구세주의 눈망울은 모두를 회심으로 이끕니다. 그는 뒤러와 같이 보라색과 붉은색 옷감으로 구세주의 왕권을 드러냈습니다. 원형 모형 위에 올려진 왼손을 통해 구세주께서 영원한 평화를 안겨 주시는 분임으로 고백합니다.
따뜻한 빛으로 예수님의 자비로움 나타내
▲ 조르주 드 라 투르, ‘축복하는 예수 그리스도’, 17세기, 유화, 툴루즈-로트렉 미술관, 프랑스 알비 |
바로크풍의 사실주의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가 그린 ‘축복하는 예수 그리스도’ 역시 앞의 두 작품과 비슷한 이미지입니다. ‘빛의 화가’인 조르주는 한 개의 촛불이나 한 줄기 빛으로 그림의 입체감과 공간감을 표현하는 천재적 작가였습니다. ‘축복하는 예수 그리스도’도 왼쪽 측면에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으로 구세주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시선이 마치 하느님 나라에서 인간 세계를 내려다보는 듯 아래로 향해 있지만, 화폭 전체를 감싸는 따뜻한 빛으로 이 분이 엄혹한 심판자가 아니라 자비로우신 구세주이심을 보여 줍니다. 또 투명한 구체에 비친 하나의 창틀은 오로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렇듯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판토크라토르는 초기 그리스도교 성미술의 양식을 일부분 계승하지만, 제도 교회가 표방하던 하느님 중심의 신적 권위보다 인간 중심의 자비로움을 강조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심판자 그리스도의 근엄한 모습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은 눈빛을 지닌 자비로우신 분으로 바뀌었습니다. 화려하고 위압적인 왕관과 옷은 사라지고 옷감의 색으로 주님의 권능과 권위를 표현했습니다. 또 왼손에 든 복음서(또는 생명의 책)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평화를 상징하는 구체(원형)로 바뀌어 성경이 가르치는 본연의 그리스도 모습으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15~17세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성미술에도 인문주의의 정신이 깊이 배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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