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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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라카미 주교좌 성당

참 빛 사랑 2012. 1. 23. 09:59

우라카미교회 (浦上) 주교좌 성당

1584년 아리마 하루노부가 우라카미촌을 예수회에 기증하였을 때부터 우라카미에는 천주교가 뿌리를 깊게 박았다.

그리하여 쇄국 중에도 신앙을 계속 지킬 수가 있었다.

그러나 고을 촌장은 천주교인들에게 모욕을 주기 위하여 자신의 집으로 교우들을 끌고 가

예수님과 성모님의 그림을 밟게 하는 수모를 주었다.

특히 명치정부에 인계되어 1868년 4월 25일 어전회의에서 우라카미 가톨릭 신자 전원을

유배시키기로 결정하여

1873년까지 신자 3,394명이 유배되어 마을 신자 전체(613명)가 유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원폭으로 부분 손실된 석상 들

 

 

 

 

 

 

 

 

 

 

 

 

 

 

 

 

 

 

 

 

 

 

 

 

우라카미교회 (浦上) 주교좌 성당

키리스탄의 박해와 원폭.....2개의 수난의 중심지

나가사키는 1570년 포루투갈과의 무역장소로 항구의 개항과 더불어 일본의 그리스도교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1587년 히데요시의(豊臣秀吉) 사제추방령과 금교령으로 인해 많은 교회는 파괴되고 250년간의 긴박해를 지나면서 갖은 박해를 견디고 특히 해마다 실시되는 후미에(신자색출방법으로 예수님의 성상을 밟게 한다)의 정신적고문을 견뎌야 했다. 4개의 비밀교회를 만들어 오우라의 성당에서 사제를 모셔와 몰래 미사를 드리고, 불교의 장례법을 따르지 않겠다는 100% 전신자 공식적인 서명을거부로 인해 3384명의 우라카미의 4개 마을의 전 신자는 20곳으로 분산 유배의 길을 (여행)을 다녀온다. 유배에서 돌아와 후미에를 밞던 장소를 사들여 절약과 희생으로 1925년 동양의 제일가는 아름다운 성당을 완공하였으나 20년 후 우라카미의 상공에서 원자폭탄으로 8500명의 신자와 함께 완전히 파괴되었다. 히데요시의 박해는 나가사키의 사람들에게는 악몽 같았으나 성인들의 순교이후 나가사키는 <동양의 로마>, <키리스탄의 마을>이라 불릴 만큼 종교, 순교, 무역의 독특한 문화가 꽃피는 국제도시였다. 1601년부터 14년까지는 황금시대를 맞이한다. 시내에 줄지어선 16개의 성당은 마치 신작로의 가로수처럼 늘어선 거리풍경, 나가사키의 모든 성당에서는 삼종이 울리고 매년 <성체대회>가 연중행사로 지내게 되었다. 잠시의 황금시대도 끝나고 도쿠가와(德川 )금교령으로 박해와 순교를 250년간의 긴 잠복의 터널 안으로 몰아넣었다. 이곳 우라카미는 해마다 행해진 로 을 받아야 했다. 막부의 금교령으로 신자들은 각종박해정책에 시달리나 우라카미 4개의 마을전체가 100% 신자이므로 몇 명의 신자가 4곳에 비밀교회를 만들어 교리, 전례, 기도 세례 교회의 맥을 잇는다.

오우라 천주당에서 푸치찬 신부님과 만난 후 이전의 정책적인 불교와의 종교적 단절을 끊는 4개 마을신자 1 하여 명치정부를 놀라게 하자 3394명의 신자들은 21곳으로 6년간의 이들의 신앙은 유배라는 말보다<여행>이라했는데 여행에서 돌아온 우라카미는 황폐 해 질대로 황폐되었다. 집도 없고 밭은 잡초로 무성하고 농기구도 음식물도 없었다. 깨진 옹기로 밭을 일구고 고구마와 벌레먹은 무를 말려 먹는 고역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종교적 자유를 얻은 것에 감사하여 무엇 보다 먼저 할 것은 <하느님의 집>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현재 우라카미 성당자리를 매각하여 필사의 노력으로 약30년 간 노동과 희생 끝에 1925년 붉은 벽돌의 대성당을 완성하였으나 기쁨은 20년도 채 누리지 못하고 원폭으로 성당과 신자를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1945년 8월9일 성모승천을 위해 성사를 준비하던 신자24명과 2명의 사제는 화염속에서 천국으로 떠났고 12,000 명의 신자 중 8500명을 잃었으니 마을전체를 잃은 셈이다. 그러나 우라카미 신자들은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무저항의 저항, 신앙의 힘으로 다시 일어선 신앙인들이다. 성당은 원폭이후 원형에 가깝게 재건되었다. 주일은 마치 밀물이라도 들어오는 듯 성당의 자리는 만석을 이루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다. 7천명의 신자를 자랑하는 우라카미는 신앙의 도시답게 지금도 날마다 핵 없는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오늘도 순례자의 교회로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다.

막부의 갖은 박해 중에서도 살아남은 신자들은 우리카미 욘반쿠즈레란 유매를 거치고 돌라와 1895년후레노 신부님의 (파리 외방선교회) 지도로 30년정도 걸쳐 성당을 완공하였다. 우리키미 천주당은 동양최대의 아름다운 성당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1945년 8,9일 원자폭탄이라는 인간이 만든 재해로 성당은 초토화되었다. 그후 에 걸쳐 완공

원폭을 이야기 하는 안젤라스의 종; 원폭의 바람에 의해 종루가 개천으로 떨어진 것을 주어 올려진 종루가 그대로 보관되었고, 당시의 비참함을 말해주고 있다.

피폭성모상; 목각의 성모상이 기적적으로 불에 타지 않고 얼굴부분만 남아있는 성모상이 작은 채플에 모셔져 있다. 불에 검게 그을린 얼굴과 움푹패인 눈.... 성모님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계시는지 귀기울이게 한다.

성당안의 색유리와 주님의 탄생예고부터 공생활, 수난, 성령강림까지의 24개의 색유리는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게 하는 좋은 자료와 26성인의 400주년기념으로 설치한 파이프오르간이 신지들의 전례를 돕고 있다.

원폭으로 실의에 빠진 나가사키시민을 위로하는 나가사키의 종(나가이 다카시의 저)의 악보가 도로 담벽에 그려져 있어 오가는 이들을 위로하듯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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