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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자선냄비와 천주교 사제 시국선언 (김인숙 모니카,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참 빛 사랑 2024. 12. 20. 13:47

 

한 해의 마지막 달, 크리스마스와 함께 자선냄비의 달이 왔다. 거리를 지나가다 빨간색 냄비와 그 앞에 종을 흔들며 서 있는 구세군의 모습을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서울 명동이 젊은이들의 거리였던 지난 시절, 빨간 냄비가 예쁘고 따뜻하게 느껴져 주머니 속 돈을 쾌척하고는 뿌듯함에 친구와 환하게 웃었던 기억이 이때쯤이면 늘 소환된다.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요즘 말로 건조하게 표현하면 ‘대박’이 난 기획이다. 자선냄비에 모인 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자선냄비는 오늘날 기부와 나눔의 상징적 아이콘이 되었다. 기부와 나눔의 메시지를 이토록 풍부하고 감성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거리에 세워진 빨간 냄비와 종을 들고 냄비 옆에 선 구세군이라는 그림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다. 그 모습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성은 마음 따뜻함, 연대, 어딘가 선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안도와 희망이다.

2024년 12월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우리 마음에 선사하는 안도와 희망을 어디서 찾을까? 어디를 둘러보아도 안도와 희망은 보이지 않고 좌절과 무기력, 분노의 목소리만 들린다. 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산 삭감으로 실무자들의 구조조정은 물론이고 복지 서비스를 중단하는 사태가 비일비재하다.

국가의 작은 지원은 복지 현장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에겐 현재를 버틸 수 있는 마중물이 된다. 또 평범하지 못했던 과거의 삶에서 의욕을 불러일으켜 삶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토대와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변화해 가는 그들의 모습은 복지적 용어로는 자활이지만, 신학적 용어로는 구원이다. 그런데 현재는 이런 마중물·토대·기폭제를 기대하기 매우 어렵다. 세수가 감소하니 필요한 돈이 수혈되지 못하고 그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이들의 몫이다.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나락으로 밀어내는 현 정권이 끝날 때까지 ‘견디고 버티는’ 것만이 이들의 유일한 전략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11월 28일 천주교 주교와 사제 1466명의 시국선언이 있었다. 종교계로서는 처음이자 가장 큰 규모였고, 종교계를 떠나서도 가장 큰 규모의 시국선언이었다. 천주교 사제들의 시국선언문은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시국선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으로 사람들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는 주변 친구들, 학생들, 교수들의 언급에서도 알 수 있다.

우선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라는 선언문 제목이 사태의 핵심을 쉽고 일상적인 말로 적확하게 표현해 귀에 박혔고, 그래서 전문을 읽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들은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하는 선언문이 타당하고 단호하여 마음의 위안은 물론 함께하는 든든한 존재가 있다는 데 안도했고 희망을 품게 되었다고 말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우리에게 안도와 희망을 선사하듯, 천주교 사제들의 시국선언은 이 시대에 안도와 희망은 물론 행동할 의지와 힘을 불러일으켰다. 견디고 버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넘어 행동으로 이끄는 동력을 제공했다. 이런 목소리들이 하나하나 사람들 마음속에 쌓이길 바란다. 그래서 빠른 시일 내에 복지 영역은 물론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며 견디고, 버티고 살아내고 있는 힘겨운 사람들의 삶이 하루속히 나아지길 바란다.


김인숙 모니카(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