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린이의 날이 생기는 날이 올까요?”
2023년 11월, 9살 알레산드로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물었습니다. 한 달 뒤인 12월 교황은 ‘세계 어린이의 날’을 공표합니다. 교황은 2024년 5월 로마에서 열릴 제1회 세계 어린이날(WMB)을 기념하기 위해 영화를 제작하기로 합니다. 축젯날을 단 두 달 앞두고 교황은 이탈리아의 유명 영화 감독인 마네티 형제에게 단편 영화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두 달은 영화를 제작하기에 턱없이 짧은 기간이었기에 둘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돌린 것은 교황의 말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실패했습니다. 어린이들이 우리에게 길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교황이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말하고자 한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황은 더 어려운 것을 제안합니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른들을 어떻게 보호해 주는지 보여줍시다.” 그리하여 둘은 아이가 어른들에게 길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영화에 담기로 마음먹습니다.
세계 어린이를 대표해 어느 나라 어린이가 주인공이면 좋을까요? 여러 나라를 고민하던 둘은 한국을 떠올렸고, 그렇게 로마에서 영화 주인공을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조건은 8살에서 10살 사이, 한국어로 연기가 가능하고 이탈리아어 디렉팅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여자아이였습니다. 예상과 달리 주인공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고 한국 아이를 찾는 수소문 끝에 7살인 제 딸 이도에게까지 오디션 제안이 닿았습니다.
이도는 오디션을 본 아이 중 가장 어렸음에도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습니다. 최종 결정까지 이도의 나이 때문에 많이 고민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촬영 기간 내내 늦은 밤 빗속 촬영 신이 예정되어 있었고, 주인공 소녀가 홀로 극 전체를 이끌어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도가 주인공 역을 맡게 된 이유에 대해 감독들은 ‘Aperto’라고 설명했습니다.(Aperto는 이탈리아어로 ‘열려 있다’는 뜻)
오디션 날 감독을 처음 만난 이도가 물었습니다. “내 영화에서 나의 역할이 뭐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감독들은 비로소 주인공을 만났음을 직감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에게 우리 영화의 영혼이 담겨있음을요.
“이도, 넌 오디션을 본 아이들 중 가장 어렸지만 완전히 열려있는 아이였어. 그래서 널 주인공으로 결정한 거야. 우린 너와 함께 일하고 싶어. 늦은 밤 촬영이 있을 거고, 분명 힘들 거야. 하지만 우린 잘해낼 수 있을 거야. 넌 우리가 만난 어린이 중 가장 특별해.”
10일 동안의 촬영 기간 매일 동원된 스태프만 35명. 대형 살수차가 두 대나 동원된 밤샘 촬영에서 이도는 비에 젖고 달리고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7살 이도는 단 한 번도 힘들 거나 포기하고 싶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화 스태프와 감독이 지칠 때면 그들 곁에 다가가 웃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태프 모두가 이도를 슈퍼 히어로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두의 마음을 담아 기적처럼 영화가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셨습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3-15; 루카 18,15-17; 마르 10,13-16)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길을 보여주기 위해 열려있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그 길을 보기 위해 열려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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