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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벽안의 윤 루카 주교, 한국 교회와 청소년 사랑은 변함없어라

참 빛 사랑 2022. 11. 6. 18:03

[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42) 벨기에 전 겐트교구장 루카스 반 루이(윤선규) 주교

▲ 윤선규 주교는 한국을 떠난 지 37년이 됐지만 여전히 한국에 대한 변하지 않는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신자 개개인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사목에 집중해달라고 부탁했다.


지난 10월 21일 벨기에 겐트 前 교구장 루카스 반 루이(한국명 윤선규 루카) 주교가 염수정 추기경 사무실을 방문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옛 친구를 만난 듯 약 1시간 담소를 나누고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만찬도 함께했다. 시간이 아까운 듯 쉬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고 대화를 이어가는 두 분의 모습이 보기도 흐뭇했다. 나는 여러 해 전에 윤 주교님을 만났는데도 주교님은 세월을 비켜가는 듯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그뿐 아니라 대화 중간에 유머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모습도 여전했다.



내가 루카 주교님을 처음 본 것은 중학생 시절이었다. 학생 수백 명이 소신학교 운동장(지금의 동성고 운동장)에 모여 행사를 준비하는데 질서를 잡기가 어려웠다. 많은 본당의 중ㆍ고등학생들이 모이다 보니 웬만한 큰 스피커로는 소리도 안 들려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무척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때 ‘짠’하고 큰 키에 백발의 외국 신부님이 아코디언을 목에 걸고 나타났다. 그는 현란한 연주와 노래를 부르며 학생들의 합창을 이끌었다. 일순간에 좌중을 휘어잡는 신부님의 모습이 어린 나의 눈에도 너무 멋있게 보였다.

그 이후에 윤 루카 신부님을 만난 것은 몇 년 후 내가 대신학생 때 고등학생들을 인솔하여 살레지오 회관에서 열리는 피정에 참석했을 때였다. 피정 일정을 마치며 성당에서 하루를 정리하는 글을 쓰는 시간이었다. 윤 루카 신부님이 작은 목소리로 성당 뒤쪽에 앉아있는 나를 밖으로 불러내셨다. 신부님은 “신학생님, 여기 남학생들 몇 명의 짐에서 술과 담배가 나왔습니다” 하시면서 담배 몇 갑과 소주 몇 병을 보여주셨다. 나는 너무 창피해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얼굴이 빨개졌다. “신부님, 어떡할까요?” 그러자 루카 신부님은 허허 웃으면서 “보통 있는 일입니다. 한참 이런 일탈과 호기심이 있을 나이예요. 아무 말 없이 학생들에게 돌려주세요. 절대 야단치지는 마십시오.” 나는 담배와 소주를 들고 남학생 방으로 들어가 아무 말 없이 학년 대표 학생에게 돌려주고 나왔다. 다음 날 아침 식사 후 남학생 몇몇이 루카 신부님께 사과했다. 그때도 신부님은 “사과해 줘서 고마워요. 술, 담배는 학생들 건강에 정말 해롭습니다. 여러분이 걱정됩니다”라고 학생들 등을 두드리며 웃으며 넘기셨다. 그런데 효과는 야단이나 체벌보다 훨씬 좋았던 것 같다.

최근 몇 달 동안 나는 루카 주교님과 메일을 여러 번 주고받았다. 지난 5월에 교황님께서는 루카 주교님을 비롯해 21명을 추기경에 서임하는 발표를 했다. 염수정 추기경은 축하 메시지와 함께 정진석 추기경 선교후원회에서 이사회를 열어 축하 성금도 보내도록 하셨다. 그런데 얼마 후 루카 주교님이 추기경 서임을 반납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전임 주교님 재임 중 발생했던 교회 내 스캔들 사건에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언론 비판이 이어지자, 미련 없이 스스로 추기경직을 반납했다. 추기경 반납이 은퇴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책임 있는 행동이라 생각하신 것이다.

그리고 주교님으로부터 축하 성금 사용 여부에 대해서도 연락이 왔다. 나는 루카 주교님께 “20년의 젊은 시절을 지구 반대편인 우리나라 청소년을 위해 일해주신 데 대한 작은 답례로 생각해 달라”고 말씀드리고, 축하 성금을 좋은 곳에 사용해달라고 주교님께 부탁했다. 윤 주교님은 고맙다고 하시며 “동유럽에서 와서 어렵게 사는 난민과 거리에 내몰린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쓰시겠다”고 하셨다.


▲ 윤선규 주교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제공




Q. 주교님의 근황은 어떠세요?


A. 지난 주간에는 로마에 있었어요. 10월 초에 교황님은 살레시오회 출신으로 아르헨티나 비에드마의 병자들에게 헌신했던 살레시오회 수사인 자티 복자를 성인품에 올리셨어요.

그는 폐결핵에 걸려 사제의 길을 포기하는 등 병의 혹독함을 체험하고 간호사가 됐어요. 도움이신 마리아 덕분에 자신이 치유된 여정에 대해 “믿었고, 약속했으며, 치유됐다”라고 말했던 자티는 오늘날 우리의 우상입니다. 자티 성인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이주민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고 돈 보스코 성인의 발자취를 따르는 이들에게 복음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제안했던 인물이자, 주님과의 만남에서 오는 복음의 기쁨을 살아갈 줄 아는 인물이었죠.

저도 지난 주일 로마 살레시오 공동체에서 형제들과 함께 감사 미사를 봉헌하는데 예고 없이 교황님이 직접 오셔서 격의 없이 어울리시며 함께 축하해 주셨어요.



Q. 최근 만난 교황님의 건강은 어떠세요?


A. 저도 많이 걱정했는데 앉았다가 일어서실 때 무릎이 조금 불편하신 것 같았어요. 무릎 외에는 무탈하세요. 일어서서 오랫동안 강론도 하시고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았어요. 하느님께서 참 좋으신 교황님을 주셨다는 생각을 다시 했어요.



Q. 교황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A. 하루 일정은 모두 예약이 되어있어 일하시기 전 시간을 내주셨어요. 교황님은 유럽 교회에 대해 상세히 물으셨고 깊은 대화를 나눴어요. 교황님이 유럽 교회 전반에 관해 소상하게 잘 알고 계시다는 인상을 받았고 문제도 정확하게 판단하고 계셔서 놀랄 정도였어요. 특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 관해 걱정이 많으셨어요. 중국 교회나 홍콩 등에 관해서도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고요. 그리고 앞으로도 연락도 드리고 자주 뵙기로 했어요.



Q. 예전에 한국에서 활동하실 때와 지금의 환경이 많아 달라졌나요? 한국 교회에 어떤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A. 몇십 년 전의 한국과 지금은 모든 것이 많이 변화되었죠. 교회 선교 환경도 많이 변화되었다고 들었어요. 지금 한국은 가족 해체로 가족을 대신할 그룹홈 모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일선 사목자들에게 들었어요. 개개인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사목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특히 팬데믹이 오래되면서 사회가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두드려져 자칫하면 희망을 잃는 사람이 나오기도 쉽죠.



Q. 우리 교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A. 기도죠. 특히 우리 사제들이 더 열심히 기도해야죠.(웃음)



Q. 윤 주교님의 추기경 서임 반납에 대해서 교황님은 별말씀 없으셨나요?

A. 노코멘트하겠습니다.(웃음)



윤 주교님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 여전하고 북한에도 많은 관심을 나타내며 남북의 교류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에 안타까워하셨다. 한국 교회에서의 사목 기간, 청소년과 대학생 사목에 주력했던 윤 주교는 어려운 청소년들을 도와주는 것이 현대 사목의 큰 과제라고 주장했다. 또한, 세계 교회가 동아시아 선교에 더욱 큰 관심을 가져주기를 소망했다. 지난해 10월, 염수정 추기경께서 내년에는 포르투갈에서 세계청년대회가 있고 그 다음에는 서울에서 세계청년대회가 열렸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유럽의 젊은이들이 비행기 말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나 중국을 거쳐서 서울에 오면 좋겠다고 하자 윤 주교님도 좋은 생각이라고 손뼉을 치며 반기셨다. 철저한 살레시오회 수도자 윤 루카 주교님과의 대화에서 교회의 기본적인 관심은 우리 자신을 넘어서 다른 교회와 세계를 향해야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