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성인 「권고들」구절에서 그대로 인용한 「모든 형제들」 제목... ‘형제들’은 남녀 포괄하는 넓은 개념
▲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 회칙 「모든 형제들」의 내용이 실린 바티칸 신문을 자원봉사자들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CNS】
‘형제는 있고, 자매는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의 제목을 둘러싸고 발표 전부터 제기됐던 질문이다. 미국과 영국 등 일부 외신 언론들이 회칙 제목에 ‘여성’은 배제됐다며 급기야는 성차별 논란마저 부채질했다. 그러나 4일 회칙이 공식 발표된 이후 이 같은 논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누구라도 ‘형제’가 곧 지구상 모든 형제자매이며, 인류 전체를 지칭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회칙 제목 ‘Fratelli tutti’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13세기에 집필했던 「권고들」 중 ‘권고6 - 주님을 따름’의 첫 구절에서 따왔다. 성인이 당시 프란치스칸 생활의 핵심을 담아 썼던 금언집의 한 장인 권고6은 “모든 형제들이여, 우리 모두 당신 양들을 속량하기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견디어 내신 착한 목자를 주의 깊게 바라봅시다”로 시작한다.
교황은 두 번째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을 프란치스코 성인의 기도 ‘태양의 찬가’의 후렴구에서 그대로 인용했듯이, 이번 회칙 또한 성인이 썼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모든 형제들’이란 표현은 이후 다른 저서들에도 계속 등장한다.
이에 대해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9월 22일자 지면에 게재한 기고를 통해 회칙 제목과 관련한 의미를 명백히 밝혔다. 저명한 신학자이자 스위스 카푸친회 수사인 니클라우스 쿠스터는 기고를 통해 “중세 시대를 살았던 성인은 이번 새 회칙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당시 보편적 형제애를 주창했다”며 “교황은 회칙을 읽게 될 현대 남녀 모두를 놀래킬 수 있는 중세의 영적 보물을 조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쿠스터 수사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지혜가 담긴 금언집들에 등장하는 ‘형제들’이란 표현들이 몇몇 개별적인 금언에는 해당하지만, 전체 모음집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이어지는 텍스트 안에서 말하는 형제들의 대상도 수사들만의 모임이 아닌 ‘교회 전체’임을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성인이 ‘형제들’이란 표현을 남녀를 포괄하는 넓은 개념으로 쓴 것이다.
언어권에 따라 번역상 표현의 차이가 있는 것도 논란의 이유였다. 본래 성인의 전집에 표현된 라틴어 ‘OMNES FRATRES’를 이탈리아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Fratelli Tutti’로 표기하게 됐는데, 이탈리아어에는 영어나 독일어와 달리, ‘형제자매’ 자체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독일 가톨릭통신사 롤란트 유헴 기자는 기사를 통해 “이탈리아어 ‘fratelli’는 독일어 ‘Brüder’(형제)처럼 독점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을뿐더러, Brüder로도, 또 다른 독일어 단어인 Geschwister(형제자매)로도 번역될 수 있다”며 “이탈리아어에는 ‘형제자매’ 자체를 표현할 수 있는 명확한 단어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성인 축일이었던 4일 공개된 회칙 안에는 형제와 자매, 나아가 모든 인류가 사회적 우애를 나누자는 교황의 바람이 가득 담겨 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정석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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