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 사도 회의 결과 이방 민족들에 대한 믿음의 문이 열리고 바오로는 이방인 선교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된다. 사진은 로마의 성 바오로 대성전 뜰에 있는 바오로 사도 석상.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과 원로들은 야고보가 낸 중재안을 안티오키아 교회에 전달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는 닫힐 뻔한 믿음의 문이 다른 민족들에게 열리는 계기가 됩니다.
야고보의 제안을 받아들인 사도들과 원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곧 예루살렘 교회의 모든 신도와 더불어,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로 보낼 사람들을 뽑습니다.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결정을 담은 편지를 가지고 갈 그 사람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인 실라스, 그리고 바르사빠스라고 하는 유다였습니다. 실라스는 그리스어로, 라틴어로는 실바누스라고 하지요. ‘바르사빠스’는 ‘안식일에 태어난’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편지 내용에는 흥미로운 점이 몇 가지 눈에 띕니다. 우선, 수신인이 단순히 안티오키아 교회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안티오키아와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다른 민족 출신 형제들”(15,23)이 모두 수신인입니다. 이 표현은 안티오키아뿐 아니라 시리아와 킬리키아에도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시리아는 안티오키아를 포함한 그 주변 지방으로 시리아의 주도(州都)가 안티오키아입니다. 킬리키아는 시리아 위쪽 지방으로, 바오로가 태어난 타르수스가 주도입니다. 시리아와 킬리키아는 이방 민족들이 사는 지역이지만 또한 유다인들도 적지 않게 사는 곳이기도 합니다. 편지대로라면 이들 지역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새로운 길’(9,2)을 따르는 다른 민족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안티오키아 교회의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유다교에서 개종했지만 유다교 율법과 관습을 엄격히 고수할 것을 주장하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다음으로, 바르나바와 바오로에 대한 예루살렘 교회의 전폭적인 신뢰입니다. 이런 점은 사도들과 원로들이 이 두 사람을 두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15,26)이라고 강력히 옹호하는 편지 내용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다와 실라스에 관한 부분입니다.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안티오키아 교회의 파견을 받아 선교 활동을 하고 돌아온 이들입니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안티오키아 교회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유다와 실라스는 어머니 교회 격인 예루살렘 교회의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예루살렘 교회에 속한 형제들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에서 지도자들이었습니다.(15,22) 예루살렘 교회 형제들의 지도자들인 유다와 실라스가 사도 회의의 결정이 담긴 편지를 가지고 갈 뿐 아니라 편지 내용을 “말로도 전할 것”(15,27)이라는 사실은 예루살렘 교회가 이 결정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렇게 편지 수신인들과 편지를 가지고 가는 이들을 언급한 후에 이방인으로서 믿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된 형제들이 지켜야 할 필수 규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①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②피 ③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 ④불륜 이 네 가지를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15,29)
네 사람은 안티오키아로 내려가 공동체를 모아놓고 이 편지를 전했고, 공동체는 편지를 읽고는 격려 말씀에 기뻐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이자 예언자이기도 한 유다와 실라스는 형제들을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 주며 한동안 안티오키아에서 지낸 후 다시 예루살렘 교회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에 머물면서 다른 많은 사람과 함께 주님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합니다.(15,30-35) 이제 유다교의 율법 규정에 구속을 받지 않고 훨씬 자유로이 복음을 선포할 수 있게 됐고 더 많은 이방인이 제자들이 선포하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오른쪽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원로들이 써보낸 편지의 수신인들이 사는 지역인 안티오키아와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역 지도. |
생각해봅시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이방 민족들에게 구원을 위한 믿음의 문을 여는 결정적인 사건이 된 이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 대해 바오로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직접 언급합니다.(갈라 2,1-10) 그 내용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바오로는 이 서간에서 자신이 바르나바와 티토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밝힙니다.(갈라 2,1) 사도행전에서는 안티오키아 교회가 바오로와 바르나바 외에 신자들 가운데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보내기로 했다고 언급하는데(사도 15,2) 티토는 그 몇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자신이 “계시를 받고”(갈라 2,2)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언급합니다. 따라서 바오로가 예루살렘에 간 것은 안티오키아 교회의 파견을 받아서였지만 계시를 받은 자신의 의지 또한 크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오로에게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전에 한 일” 곧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온 일이 “허사가 되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예루살렘에서 자신이 다른 민족들에게 선포하는 복음을 예루살렘 교회의 주요 인사들에게 따로 설명하기까지 합니다.(갈라 2,2-3)
바오로는 갈라티아 서간에서 또 예루살렘에 함께 간 티토가 “그리스 사람이었는데도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즉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티토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바오로는 할례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중요하다는 점을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일깨웁니다.(갈라 2,4)
다른 한편으로 갈라티아서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 당시에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바오로와 베드로의 역할 분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눈길을 끕니다. 바오로는 이 서간에서 “그들” 곧 예루살렘의 “주요 인사들”은 “베드로가 할례 받은 이들(곧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듯이 내가 할례받지 않은 이들(곧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밝힙니다.(갈라 2,7-8)
이 갈라티아 서간을 통해서 보자면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는 이방 민족들에게도 믿음의 문 또는 구원의 문을 열어주는 중요한 결정을 한 것 외에도 할례받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그리고 할례받지 않은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담당하는 역할 분담도 논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바오로는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에 다시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부터 계속 살펴봅니다.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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