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가톨릭 한국교회

[교황 선종]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교황, 내몰린 이들의 목소리 되다

참 빛 사랑 2025. 5. 5. 10:48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3월 13일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에서 신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OSV


“제가 여러분을 축복하기 전에 여러분께 먼저 기도를 청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3월 13일 선출된 직후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에서 광장에 운집한 신자들에게 건넨 첫 마디는 자신을 위한 기도 부탁이었다. 새 목자 탄생에 뜨겁게 연호하던 광장의 신자들은 이내 소리를 낮추고, 고요한 침묵 속에 교황을 위해 기도했다.

신자들은 새 교황이 갑작스레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하자 즉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함께 기도에 임했다. 고통을 넘어 희망을 향하는 통로요, 사랑의 신비를 가져다주는 가톨릭교회의 정수인 ‘기도’가 전 세계에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교황은 그렇게 서로를 위해 함께 바치는 기도로 사도좌 직무를 시작했다.

2013~2025년 12년 재위 기간 교황이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 말은 셀 수 없다. 그 가운데 빛나는 메시지를 다시 돌아봤다.



“가난한 이들의 기도는 하느님께로 올라갑니다”

교황은 2024년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에서 “가난한 이들의 기도를 우리 것으로 삼아 그들과 함께 기도해야 한다”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라는 부름을 받는다”고 했다.

교황의 메시지는 줄곧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했다. 교황은 “늙고 집 없는 사람이 노숙하다가 죽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지만, 주가지수가 2% 떨어진 것은 뉴스가 된다”는 메시지로 돈을 향해서만 나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전쟁은 언제나 패배합니다”

교황은 전쟁을 인류의 가장 극단적 해악으로 여겼다. 교황은 오늘날 지구촌은 제3차 세계 대전을 벌이고 있다며, 무기를 사들이지 않는 비용으로 전 세계 어려운 이를 모두 도울 수 있다면서 매우 안타까워했다.

교황은 2013년 9월 8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미국이 주도했던 시리아 공습 움직임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전쟁이 진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무기를 팔려는 것인지 늘 의심이 든다”며 갈등을 전쟁으로 해소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중앙아시아 지역 예수회 회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용납할 수 없고, 혐오스럽고, 야만적인 신성모독”이라며 “많은 사람이 전쟁을 너무 단순하게 바라본다”고 우려했다.

교황은 지구촌 어떤 정치 지도자도 전쟁 중단을 외치지 않는 상황에서 홀로 ‘평화의 사도’로서 평화의 메시지로 전쟁과 맞섰다. 2023년 10월 15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무력 충돌로 민간인 피해가 악화일로로 치달을 때에는 “큰 슬픔을 느낀다. 인질들의 석방을 다시 한 번 호소하며 어린이와 노인·여성·아픈 이들을 포함한 모두가 전쟁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이제 전쟁을 그만둬야 한다. 전쟁은 언제나 패배한다”고 말했다.



“교회는 야전병원”

교황은 2013년 8월 이탈리아 예수회가 발행하는 잡지 「치빌타 가톨리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교회를 ‘야전병원’에 빗대어 설명하며 “상처 입은 이들을 치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만히 찾아오는 이들만 맞는 안일한 자기만족에서 벗어나 고통과 상처 입은 이들을 밤낮 돌보고 품는 병원과 같은 역할, 어머니와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황은 “교회의 사목은 반드시 자비로워야 하며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씻겨주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7일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파견 미사에서 한국 청년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OSV


“청년들이여, 깨어나십시오”

2014년 8월 14~18일 방한 당시 교황은 한국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국 국민들에게 사랑의 가치를 전한 교황은 이 시기 대전과 솔뫼성지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에서 한국 청년들에게 “깨어나라(Wake up)”고 거듭 촉구하며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히 세계청년대회 때마다 젊은이들을 향한 애정을 강하게 드러내고, 기도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희망찬 미래가 되길 계속 당부했다. 교황은 2016년 폴란드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에서도 “우리는 무위도식하며 소파에서 잠에 빠져들라고 태어나지 않았다.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es, 감자칩을 즐기며 TV만 즐겨보는 사람)가 되지 말고, 끈을 졸라매는 신발을 신고 세상에 흔적을 남겨라”라고 응원했다.



“인간의 고통에 관해서는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4박 5일간의 한국 사목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교황은 기내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아픔을 나눈 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이에 교황은 자신이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고 위로해주는 사제”라며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면서 더 큰 위로의 메시지를 남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5월 24일 하느님께서 창조한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의 집’ ‘통합 생태론’ ‘생태 교육과 영성’ 등을 주제로 지구를 돌보는 총체적인 가르침과 방향을 담아 펴낸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반포했다. OSV

“더불어 사는 공동의 집”

생태계의 수호성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태양의 찬가’에서 “저의 주님, 당신은 찬미를 받으소서. 누님이며 어머니인 대지로부터 찬미를 받으소서”라고 노래했다. 교황은 2015년 800여 년 전 프란치스코 성인이 노래한 그대로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반포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면, 교황은 주님이 만드신 대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이 본래 모습을 잃어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땅과 지구를 살리는 데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황이 회칙에서 지구를 ‘더불어 사는 공동의 집’이라 칭한 표현은 모든 그리스도인, 지구촌 인류에게 지구와 자연 전체의 가치를 한층 드높였다.



“유통기한 지난 주교가 되지 마십시오”

교황은 늘 공감과 연민의 시선으로 모두를 바라봤지만, 양 떼를 이끄는 주교와 사제들에겐 사명을 확실히 일깨우는 메시지를 자주 전했다. 교황은 2014년 9월 신임 주교들을 만난 자리에서 ‘깨어 있으라’는 복음적 가르침의 모범을 주교부터 실천하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주교는 항상 새로운 임무에 깨어있는 ‘감시병’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면서 “동시에 조건없는 사랑을 베푸는 아버지 역할도 수행할 것”을 독려했다.

사제들에게도 “사제의 강론은 8분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면서 “강론은 하느님 말씀이 성경에 그치지 않고, 삶에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직자 중심주의를 경계하십시오”

교황은 특히 성직주의의 위험을 경계했다. 2017년 3월 소마스카 성직수도회 총회 참석자들에게 “오늘날 교회의 가장 중대하면서도 강력한 위험 가운데 하나가 성직주의”라고 지적하면서 평신도와 함께 일하고, 평신도들이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도우라고 촉구했다. 2016년 자신의 사제수품 47주년 미사에서는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 21,31)는 비유로 성직주의에 빠진 이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0년 3월 29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텅 빈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을 내려다보며 축복하고 있다. OSV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3년 10월 17일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에 앞서 캐나다에서 온 샹탈 데스마레 수녀와 인사하고 있다. OSV


“수도자들이여, 세상을 깨우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교황은 즉위 첫해에 열린 세계 남자수도회장상연합회 정기총회에서 수도자들에게 “세상을 깨우는 사람들이 돼달라”고 말했다. 수도자의 정체성은 복음적 삶을 통해 지상에서 하늘나라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회 출신인 교황은 “세상과는 다른 방식인 복음을 통해 세상을 깨워야 한다”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수도자에게 행동하는 실천으로 교회의 매력을 보여주길 당부했다.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 자주 하세요”

‘사랑’은 교황의 핵심 메시지다. 교황은 ‘사랑 표현의 대가’이기도 했다. 장애인이 보이면 곧장 다가가 안아주고 축복해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키스해주고 안아준 어린아이만 해도 셀 수 없을 것이다.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약혼 남녀들을 만난 자리에서 “순간적인 마음이 아니라 늘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 속에서 사랑을 바라보라”면서 “‘사랑’의 표현을 자주 하고, 실수했으면 곧바로 미안하다고 사과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특히 부부들에겐 “싸움했다면 반드시 그날 화해하라”고 강조했다.



“가정이 교회와 세상의 희망입니다”

교황은 2018년 8월 제9차 세계가정대회 폐막 미사에서 “가정의 가치가 무너져가는 현대 사회에서 그리스도 가정이 ‘희망의 등불’이 돼야 한다”며 “가정은 교회와 세상의 희망”이라고 격려했다.

2024년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담화에서는 “젊은이들을 노인들과 대립하게 만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조종의 형태이며, 중요한 것은 다양한 연령대의 일치이고 이는 인간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한 진정한 기준점이 된다”며 세대 간 소통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4년 6월 7일 올리브나무 식수 10주년 평화기도회를 주관하고 있다. OSV


“뒷담화를 하지 맙시다”

교황은 간결하면서도 단순한 메시지로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잘못을 바로잡아줬다. 교황은 어느 날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 미사에서 “평소 신앙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교회의 이런저런 일과 신부·수녀에 대한 뒷담화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고 지양해야 한다”며 “그리스도인은 서로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제를 귀찮게 하세요.”

교황은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모습도 요청했다. 교황은 “송아지가 어미에게 젖을 달라고 괴롭히듯 신자들은 자신의 사제를 괴롭혀야 하고, 그래야만 사제들이 자신에게 위탁된 하느님 백성을 이끌어가며 빛을 비춰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평신도도 교황청 조직에서 역할과 책임을 맡아야 합니다.”

교황은 성직자 중심의 교회 의사결정 구조에도 변화를 꾀했다. 하느님 백성과 함께하는 교회로 탈바꿈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2022년 3월 교황청 구조개혁을 담은 교황령을 반포해 세례받은 누구든 교황청 모든 부서의 최고 책임자로 임명될 수 있도록 했다. 교황은 새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에서 “교황과 주교·서품받은 성직자들만이 교회의 복음 전파자는 아니다”라며 “평신도도 교황청 조직에서 역할과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가엾은 죄인입니다.”

교황은 자비가 필요한 죄인의 모습도 조명했다. 교황은 2017년 8월 9일 일반 알현에서 “우리는 죄의 용서를 ‘너무 값싸게’ 경험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며 “우리는 우리를 변화시키고 희망을 새롭게 하는 힘이 있는 하느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가엾은 죄인”이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6년 8월 16일 성매매 여성 보호 기관을 방문해 한 피해자에게 입을 맞추며 위로하고 있다. OSV

“교회가 저지른 잘못에 용서를 구합니다”

교황은 사과와 용서가 화해의 시작점이자, 자비로 향하는 길임을 몸소 보여줬다. 교황은 2022년 7월 25일 캐나다 매스쿼치스 원주민 공동묘지에서 기도한 후 원주민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곤 “그리스도인들이 저지른 잘못에 용서를 구한다”며 정중히 사과했다.

이때 교황이 오른 참회의 순례는 캐나다 교회가 1880년부터 약 100년간 운영해온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발생한 아동학대에 대해 직접 사죄하기 위해 이뤄졌다. 교황은 “교회와 수도회의 많은 구성원이 무관심한 태도로 협력한 방식에 대해 용서를 청한다”면서 당시 상황을 조목조목 나열하며 잘못을 깊이 인정했다.

교황이 과거든 현재든 사안에 대해 직접 나서 사과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함께 걸어가는 길, 이웃의 아픔에 깊이 공감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직접 찾아가 고개를 숙였고, 먼저 손을 내밀고 안아줬다.



“제 삶의 마지막에 맞이하는 고통을 온 누리의 평화와 만민의 형제애를 위하여 주님께 봉헌합니다.”

교황이 남긴 영적 유언의 가장 마지막 문장이다. 교황의 생애는 하느님 자비 안에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한 삶이었다. 세상의 중심에서 가장 낮은 이들을 찾아 주님 사랑을 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언에서도 “단순하고 특별한 장식 없이 ‘Franciscus’라는 이름만 새겨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교회의 으뜸이었지만 먼저 안아주고 미소를 건네며 극한의 고통 중에도 마지막 날까지 신자들에게 손을 흔들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고통을 그렇게 우리의 평화를 위해 봉헌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