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사회복지학을 가르치는 신자 교수님께서 가톨릭의 탈시설 정책 반대에 대해 우려하는 말씀을 듣게 되었다. 또 정부의 ‘장애인의 지역 사회 자립 및 주거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에 대한 가톨릭의 우려와 입장을 비판하는 말들도 요즘 많이 듣고 있다. 지난 4월 6일에는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가 명동성당을 기습 점검하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이렇게 성당을 마음대로 점거하고 행패를 부려도 되는 것인가? 장애인 단체가 운영하는 한 언론기관은 이 기습시위 내용을 자극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내용의 기사로 내보내기까지 했다. 심지어 천주교회가 장애인거주시설을 많이 운영하기 때문에 탈시설이나 지역 사회 자립 및 주거전환을 반대한다는 억지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다.
참으로 억울하고 답답하다.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탈시설’이 이슈가 된 이후 필자는 기고문을 통해서나 여러 토론회에서 한결같이 강조한 내용이 있다. 바로 장애 유형에 따른 고려없이 어느 것이 좋아 보인다고 하여 획일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국가정책기관이나 탈시설지지연대들은 ‘자립’과 ‘탈시설’에 대한 폭넓은 이해도 없이 그 단어가 주는 매력에 빠져 마치 시설을 ‘없애야 할 사회악’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시설의 필요성을 말하는 사람들을 시대에 뒤떨어진 집단이나 자신들의 이익 지키기에 매몰된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
2021년 8월 보건복지부는 ‘탈시설 장애인 지역 사회 자립 지원 로드맵’(이하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 로드맵의 핵심 내용은 장애인 거주 시설을 10년 안에 폐쇄하고, 장애 정도가 심해 도저히 홀로 지낼 수 없는 2000여 명의 장애인을 빼고는 시설에 생활하고 있는 모든 장애인에게 공공 임대주택을 제공해 자립 생활 형태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시설에 남을 수 있는 2000명의 기준은 무엇이며, ‘10년’이란 목표 기간은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인가? 그럼에도 정부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탈시설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당사자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채 서둘러 지역 사회로 주거 전환을 한 중증장애인 가운데 일부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거나, 영양과 위생상태 등이 현저히 나빠진 사례들이 속출했다.
서울시의 탈시설 전수 조사 내용을 보면, 전체 약 1200명의 탈시설 장애인 가운데 주거 확인이 가능한 이들은 겨우 700명 정도였다. 조사에 참여한 487명 중 탈시설을 한 뒤 다시 재가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281명이고, 타인에 의해 퇴소당한 이들이 136명이었으며, 무려 24명이 탈시설 후 4년 안에 목숨을 잃었다.
교회는 ‘사회복지’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교회 공동체의 이름으로 조직적인 사랑의 실천을 본질적인 사명으로 여겨왔다. 또 교회가 장애인을 비롯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이들을 온전한 인간으로 존중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교회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탈시설 정책’과 ‘장애인의 지역 사회 자립 및 주거 지원 사업’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자립지원 자체를 반대한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양한 주거 형태 지원을 반대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가톨릭교회가 반대하고 있는 것은 편협하고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장애인들이 희생되고 나아가 그들의 소중한 생명이 위협받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보다 더 성숙하고 심도 있는 장애인 정책 수립에 진정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시기다.
'여론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장 돋보기] ‘하느님 종들의 종’ 프란치스코 교황 (0) | 2025.05.02 |
---|---|
[사도직 현장에서] 열린 마음이란 (0) | 2025.05.02 |
[신앙단상] 주님의 탄생, 죽음·부활은 무슨 의미일까 (손일훈 마르첼리노, 작곡가) (0) | 2025.05.01 |
청년 미디어 사도 ‘cpbcU’ 발대식 (0) | 2025.05.01 |
광장 중심에 섰던 여성들 평화를 말하다 (0) | 2025.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