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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교황청 외교관으로 40년 봉직… “통일되면 이북에서 사목하고파”

참 빛 사랑 2025. 3. 26. 17:38
 
교황청 외교관으로 40년간 봉직하다 퇴임한 장인남 대주교가 20일 퇴임 감사미사를 앞두고 강화 예수의 꽃동네 교황 프란치스코 센터에서 인터뷰 후 기도하고 있다.

한국 교회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교황대사를 역임하며 교황을 대리해 전 세계에서 외교관직을 수행해온 장인남 대주교가 지난 2월 13일 주네덜란드 교황대사직을 끝으로 공식 은퇴했다. 1949년생으로 만 75세를 넘기면서다. 교황대사에 임명된 지 23년, 교황청 외교관으로는 40년간 세계 각국에서 보편 교회를 위한 외교관으로 지냈다.

그런 만큼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살아온 기간이 더 길다. 구사하는 언어도 5개 국어에 이른다. 전 세계를 오가며 많은 사랑을 받아서일까.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소년 같은 미소와 몸에 밴 겸손이 그를 더 환하게 했다. 20일 청주교구 주교좌 내덕동성당에서 열린 퇴임 미사를 앞두고 장 대주교를 만났다.
 
캄보디아 교황 대사 시절 아이들과 함께. 장인남 대주교 제공

교황 대사로 이끄신 하느님

“사제품을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내년이면 벌써 50주년이네요. 교황청 외교관으로는 꼬박 40년이고요.”

장 대주교는 사제로 살아온 반세기 동안 대부분을 교황청 외교관으로 지냈다. 그러나 장 대주교는 “신학교 입학 때 그렸던 사제상은 본당에서 사목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를 더 넓은 곳으로 이끌었다.

1976년 12월 사제품을 받고 청주교구 교현동본당(옛 야현본당) 보좌 신부로 1년 2개월 본당에서 사목한 장 대주교는 1978년 2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차장을 1년여 역임하고 로마 유학길에 올랐다. 1985년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에서 교의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시에 교황청 외교관학교에서 교회법 석사학위도 받았다. 그리고 그해 6월 교황청 외교관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엘살바도르·에티오피아·시리아·프랑스·그리스·벨기에에서 서기관 및 참사관직을 거쳐 2002년 10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교황대사에 임명돼 이듬해 1월 주교품을 받았다.

장 대주교는 “생각지 않았던 외교관으로 불림 받았을 때 두려움이 엄습했다”며 “하지만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형님 장인산 신부님과 당시 청주교구장 고 정진석 추기경님의 격려와 도움 덕에 교회 봉사자로 잘 지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기도와 후원으로 물심양면 힘을 실어준 한국 교회에 거듭 깊은 감사를 전했다.
 
장인남 대주교가 은퇴 전 1월 10일 프란치스코 교황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장인남 대주교 제공

교황대사의 삶

교황대사는 교황을 대신해 주재국 정부와 교황청과의 다리 역할을 한다. 교회 현황을 교황에게 보고하고, 현지 문화 속에서 신자들과 만나고 교회적으로 돕는 고위 외교 성직자다.

교황대사로 처음 발령받은 곳은 인구의 90%가 무슬림인 방글라데시였다. 당시 1억 3000만 명 인구 중 가톨릭 신자는 0.3%인 30만 명에 불과했다. 장 대주교는 “소수 종교였지만, 성당을 중심으로 신자촌을 이뤄 사는 이들은 모두 한 식구였고, 한국 신자들의 도움으로 성당도 짓고 신학생도 후원할 수 있었다”며 “첫 교황대사로 5년여 시간은 정말 보람 있었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이어 아프리카 우간다 교황대사로 5년을 지냈다. 당시 우간다는 전체 인구의 40%가 넘는 이들이 가톨릭 신자였다. 장 대주교는 “우간다는 아프리카에서도 이웃 나라들로부터 교회를 수호하는 방패 역할을 할 정도로 복음화가 잘된 나라”라며 “그만큼 대사회 영향력도 대단했고, 대축일이면 드넓은 광야에 신자 수만 명이 모여 함께 미사를 봉헌하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장 대주교는 이후 태국 주재 캄보디아·미얀마 동남아 3개국 교황대사와 라오스 교황사절로 10년간 사목했다. 라오스는 바티칸과 외교를 맺지 않아 대사가 아니라 사절이다. 전통 불교국가인 태국에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목 방문했다.

장 대주교는 “태국 불교 최고 지도자인 ‘승왕’이 교황을 형제처럼 받아들이고 손도 잡고 다니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며 “그때는 저 또한 불교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종교 간 대화에 힘썼던 시기였다”고 했다.

장 대주교는 2022년 7월 교황대사로서 마지막 행선지인 네덜란드로 향했다. 그간 비교적 가난한 나라들에 주재하다 경제 강국 네덜란드로 가게 됐지만, 장 대주교는 이곳에서 현지 교회의 어려움을 가장 크게 목도했다고 회고했다.

네덜란드는 4~5세기 일찌감치 복음이 전파된 전통적 그리스도교 국가이지만, 현재는 세속화와 물질주의로 신자의 반 이상이 무신론자인 상황. 그나마 가톨릭 교세가 가장 크지만, 20% 남짓이다.

“200개 본당이 있던 교구에 사제가 50명이 채 안 되니까 한 사제가 4~5개 본당을 맡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사제들이 연로해지면서 성당 문도 닫기 시작했죠. 폐쇄되는 본당 신자들이 교황님께 보내는 편지가 대사관으로 와요. 오래전부터 대를 이어 다니던 본당이 없어지는 상황에 대한 하소연이죠.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나라가 신앙적으론 가장 후퇴한 모습이라 걱정입니다. 한국도 지금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지만, 부유한 나라에 속하고,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몇 안 되는 나라입니다. 한국 교회도 잘 대처하면 좋겠어요.”
 
네덜란드 교황 대사관에서 주교들과 환송 자리. 장인남 대주교 제공

세 교황과 함께

장 대주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교황·프란치스코 교황까지 외교관으로서 세 교황을 보좌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아주 카리스마가 강하셨어요. 2004년부터는 기력이 없으셨고, 제가 마지막으로 교황님께 주교품을 받았죠. 정말 강한 카리스마로 교회를 이끄셨고, 마지막에는 고통받는 연로한 인간의 모습으로도 깊은 신앙을 보여주셨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보편 교회 모든 신앙인의 큰 스승이시죠. 하느님께 가야 할 길을 명확히 제시해주셨습니다. 또 당신이 말씀하신 것은 겸손한 모습으로 실천하셨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모두가 알다시피 세상과 함께하시는 분입니다.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교회 문을 활짝 열고 계시죠.”

프란치스코 교황과 지근거리에서 함께한 일화도 전했다. “태국에 사목 방문하시기 전, 국왕이 교황님을 위해 만찬을 준비하겠다고 연락 왔어요. 교황님께 전달하니 정중히 사양하셨습니다. 만찬보다 신자들을 만나는 걸 우선으로 하셨기 때문이죠. 병원의 환자들을 일일이 만나고, 차 안에선 잠시 눈을 붙이시다가도 창밖 신자들이 인사하면 일어나 손을 흔들어 주셨어요. 바쁜 일정 중에도 작은 침실 옆 경당에서 늘 기도하셨습니다. 옆에서 본 그 모습은 제게도 은총의 순간들이었습니다. 현재 병상에 계신 신앙의 아버지 교황님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합니다.”
벨기에 교황 대사관에서 관계자들과 함께. 맨 왼쪽이 황인제 몬시뇰. 장인남 대주교 제공

북한 교회를 향한 애정

장 대주교의 부모는 모두 북녘 출신이다. 아버지는 6·25전쟁 때 전사했고, 평양교구 출신의 신심 깊은 홀어머니 밑에서 두 형제가 자라 사제가 됐다. 북한 교회와 북향민을 향한 애정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은퇴 전 교황님께 마지막으로 인사드리는 자리에서 ‘제 꿈은 통일이 되면 이북에서 사목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교황님은 ‘꿈을 이루길 바란다’고 격려하시면서 강복해주셨어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북한 교회와 북향민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동참할 생각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남북이 공존하며 살아갈 길을 열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은총의 삶

장 대주교는 “20년 넘게 교황대사직을 수행하는 동안 부족한 저를 무탈하게 은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주님과 기도로 함께해주신 한국 교회에 거듭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교황청 외교관으로 활약 중인 황인제·정다운 몬시뇰에게도 선배로서 격려와 당부를 건넸다.

“교황청 외교관직은 ‘특별 사목’에 해당합니다. 그럼에도 본당 신부와 형태는 다르지만, 똑같이 교회를 섬기는 일이지요. 외교관으로서 어려움이 있어도 교회의 웃어른들이 배려하시는 대로 잘 따라간다면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특별 직무를 통해 내려주시는 은총의 삶임에 분명합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