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성매매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사는 한 여성을 어렵사리 만났다. 그녀는 여전히 누군가에 의해 사고파는 대상으로 어두운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세상에 빛과 희망이 있음을 알려주고자 인터뷰에 응했다. 12년간 성매매에 몸 담았던 박모씨의 인터뷰를 1인칭으로 재구성했다.
정리=이지혜 기자
정리=이지혜 기자

새 삶 새 직장에서 4년째
“12년간 성매매업에 종사했습니다. 이 인터뷰에 나선 이유는 어린 친구들이 이 길에서 빨리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37살에 처음 미아리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천호동으로 옮겨 11년 일했는데, 천호동에 불이 나면서 수원으로 옮겼습니다. 수원에서 짧게 일하고 탈업(성매매 업소에서 일을 그만두고 나오는 일) 했습니다.
이제 회사에 다닌 지는 4년 됐어요. 월급쟁이로는 첫 직장이에요. 성매매 업소에서 나온 직후에는 자유롭게 못 다녔습니다. (성 구매자가) 알아볼까 두려워서요⋯. 자유로운 내 생활이 있고, 내가 당당하게 쓸 돈이 있다는 게 좋더라고요. 친구들 만나는 것도 즐겁고요. 예전에는 친구들이 ‘무슨 일 해? 어디 살아?’라고 물으면 대답 못 하고 조용히 밥값만 계산했어요. 업소에서 일할 땐 돈은 많이 벌었지만 가족에게 그 돈을 쓰는 게 너무 부끄러웠어요. 가족 중에 제가 이런 일을 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 성매매 업소에서의 생활은 너무 바빠요. 인간의 존엄성이요? 그런 거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아침 일찍 일 마치면 들어가서 자기 바쁩니다. 저녁 6시에 기상해 머리를 감고 내려가면 미용사 아줌마가 머리와 화장을 해줍니다. 이걸로 매달 60만 원을 써요.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조명이 켜지고 일을 시작하죠.
처음엔 많이 울었습니다. 성매매 일을 시작한 건 의처증 있는 남편을 피해 숙식이 제공되고, 몸을 숨겨줄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벼룩시장에 ‘숙식제공+알파’라 적힌 곳에 전화했고,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면접을 봤습니다. 휘황찬란한 곳에서 면접을 보는데 업주가 노란 고무줄로 둘둘 만 500만 원을 던져주더라고요. 돈이 없을 테니 그걸로 먼저 쓰고 일하면서 갚으라는 거예요. 저는 선지급제는 싫어 하루하루 벌어서 필요한 거 쓰겠다고 하고 안 받았어요. 돈을 받는 순간, 20%씩 이자가 붙더라고요. 그러면 노예가 되는 건 시간 문제였어요.
미아리에서 1년 일하고 현금 3000만 원 들고 탈출했습니다. 15년간 일하던 여성 4명을 같이 데리고 나왔어요. 저는 업주한테 받은 돈이 없어서 빚이 없었고 그래서 제게는 강제로 일을 시킬 수 없었죠. 그 안에서 노예처럼 끌려다니는 여성들을 보면서 ‘내가 먼저 나갈 테니 같이 나가자’고 설득했죠. 저는 동생들에게 대체 왜 이 일을 계속하는지 물었어요. 그랬더니 ‘밖에 나가면 무섭다’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천호동으로 갔어요. 제가 가출한 유책 배우자여서 이혼소송을 걸 수 없었고, 상대가 걸기를 숨어서 기다려야 했어요. 숙식은 여전히 간절했고, 몸을 피해야 했습니다. 천호동에서 일하며 소냐의 집 수녀님을 만나게 됐는데, 매주 수요일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물품을 나눠주면서 상담해주셨어요.
우리 이야기 들어준 수녀님
우리 업주는 수녀님에게 반감이 없었어요. 당시 제 치아가 빠졌는데 수녀님 도움으로 치료를 받았고요. 그때는 소냐의 집이 가정집에 있었는데, 거기서 수녀님이 매주 우리 밥도 해주고, 이야기도 들어줬습니다. 생일상도 차려줬어요. 아가씨들이 같이 모여 업주 욕도 하고 수다도 떨었어요. 그 모임이 좋아 매주 수요일은 일을 안 하고 쉬었습니다. 수녀님이 지나가면 커튼을 쳐서 아가씨들이 그 수녀님들을 못 만나게 하는 업주들도 있었습니다. 수녀님은 탈업을 이야기하진 않았습니다. 밥을 차려주며 해보고 싶은 다른 일은 없는지, 배우고 싶은 건 없는지 물으셨죠. 대놓고 탈업을 권했으면 수녀님들이 그 거리에 못 들어오셨을 거예요.
힘든 건 업주와의 관계였어요. 업주가 아가씨들을 이간질해 서로 싸우게 하고요. 진상 손님도 물론 많습니다. 맞아보기도 했고, 어이없게 환불을 요구하는 남자도 있었습니다. 제 딸이 이 일을 한다면요? 죽여서라도 말려야죠.
파주시 용주골을 강제철거하고 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아는 동생도 거기 있어요. 지원금이 다른 지자체에 비해 2배 이상이라더라고요. 반의 반이라도 나와서 사회생활을 하길 바랍니다. 그 안에는 적금을 들거나 실비보험을 든 친구들이 거의 없습니다. 청약통장이요? 청약통장을 든 친구를 못 봤어요. 그곳에서는 노후를 준비할 수 없고, 버는 족족 업주 주머니로 들어갑니다. 많이 버니까 많이 모으겠다고 생각하지만, 돈은 오로지 ‘먹고 입는 것’에만 씁니다. 벌어서 모을 수 있는 구조가 아녜요. 가족에게 당당히 쓸 수나 있나요? 10대부터 그 일을 시작했다면 경제관념은 없을 수밖에요.
탈성매매를 원하는 한 동생이 마사지를 배우고 싶어 해 학원을 같이 가줬어요. 그런데 벌벌 떨면서 한마디도 못하는 거예요. 성매매하면서 쓰던 용어들이 튀어나올까 봐요. 대학생활이나 사회경험이 있으면 모르는데, 오랫동안 성매매를 한 여성들은 사회 시선이 두렵습니다. 바깥 세상을 볼 기회가 없는 겁니다.
강제철거, 빚 청산·탈성매매의 기회
성매매 집결지를 강제철거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강제철거를 하지 않으면 여성들은 그만두기가 어렵거든요. 빚이 있는 여성일수록 강제철거가 필요합니다. 만약 이때 그만두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서 성매매 일을 계속한다면 업주는 어떻게든 찾아낼 겁니다. 쌓인 빚을 받아내야 하니까요. 지자체에서 지원금을 받게 되면 업주들이 그 돈을 달라고 할 순 없어요. 지원금은 빚 갚는 데 쓸 수 없거든요. 이렇게 집결지를 정비할 때가 빚을 청산할 기회인 거죠. 4대 보험도 안 되죠, 병원 갈 때 의료보험을 못 받는 애들도 많아요. 자신의 빚이 얼마나 쌓였고, 얼마가 묶여있는지도 모르죠.
10대 가출 청소년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야말로 자기 의지로 들어온 거죠. 소개소 직원들이 전국을 돌며 가출한 여성 청소년에게 100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넨다고 해요. “오늘 이 돈으로 재미있게 놀고, 내일 몇 시까지 터미널로 와~”하면 그 다음날 진짜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청소년을 업장에 소개비 400만 원을 받고 넘깁니다. 100만 원을 뜯기거나, 400만 원을 버는 거죠. 그러면 업주는 그 소개비를 청소년의 빚으로 올리고, 성매매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돌아보면 제게 ‘소냐의 집’은 햇빛 같은 존재였어요. 저는 소냐의 집에 계셨던 수녀님이 있는 사회복지시설에 매달 큰 금액은 아니지만 후원하고 있습니다. 감사해서요. 여성 청소년 2명에게 생리대 지원도 해주고요. ‘돈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를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성매매 일을 하는 누구라도 이 글을 읽는다면 ‘하루빨리 밖으로 나가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제가 이 인터뷰에 응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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