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바람이 부는 대한민국의 한 밤거리. 밤 9시를 향한 시간. 칸칸이 나뉜 유리집 좁은 공간에 은은한 조명들이 들어오고, 유리문 안으로 짙게 화장한 여성들이 높은 힐을 신고 높은 의자에 앉아있거나 서 있다.
“너무 추운 날씨예요. 춥지 않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여기 10명 있어요. 10개 주세요. 고맙습니다. 두유로 주세요.”
수도자 두 명을 포함한 너덧 명의 봉사자들이 카트에 빵과 음료를 가득 담아 유리집 앞을 지난다. 카트가 지날 때마다 몇몇 여성들이 큰 봉지를 벌려 우유와 음료를 담아간다.
말없이 간식만 나눠줘
남성 고객이 아닌 봉사자들을 향해 문을 연 여성들. 이들을 위한 일일 봉사자로 함께한 기자가 간식을 건네자 차가운 두 손으로 받아간다. 봉사자들은 여성들의 출신 지역은 물론, 나이와 이름조차 모른다. 그저 매주 정해진 요일에 정기적으로 10년 넘게 여성들에게 간식을 건네는 봉사를 해왔다. 처음엔 업주가 이 거리에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고 막아섰다. 시간이 쌓이며 이들의 선행에 조용히 거리의 문이 열렸다. 타 종교인들도 이곳에서 선교(?)를 시도했지만 막혔다. 이들은 말을 걸지 않고, 조용히 먹을 거리만 건네고 거리를 떠났다. 지난 성탄에는 산타 모자를 쓰고 선물을 나눴다.
이날도 봉사자들이 카트를 끌고 들어가니, 업주가 알아보고 봉사자들 곁에 와 밝게 인사했다. 업주는 봉사자를 따라다니며 “저기도 문을 열었다, 저 아가씨들에게도 간식을 주라”고 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업주’였다.
한 봉사자가 “거리가 한산하네요” 하자, 업주는 “경기가 영 안 좋다”고 했다. 여성들이 있는 유리집 건너 거리에는 건장한 남성들도 몇 명 서 있었는데, 이들도 빵을 받으러 다가오며 크림빵인지를 물었다. 이들은 성매매 여성들이 남성에게 신체적 폭력을 당할 경우 보호해준다. 이들도 돈 받고 일한다.
붉은 집결지 사이에 허름한 집 한 채가 있다. 이곳에는 수도자들이 숨어 산다. 40년 가까운 세월, 세상의 가장 가난하고 작은 이들 곁에서 삶의 온기를 나눠왔다.
“날이 추워요. 감기 조심하세요.”
“네~ 고맙습니다. 저는 이 일 그만두면 성당에 나갈 거예요. 봉사도 하고 싶어요.”
오랫동안 봉사해온 한 중년 여성은 이 여성들이 자신들이 갖고 있던 간식을 주거나 상품권을 선물로 건넨 일도 있다고 했다. 실제 이날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한 여성이 봉사자들에게 고맙다며 약과 한 줌을 건넸다.
판단과 평가보다는
성매매 여성을 다룬 기획을 준비하며 가장 열악하고 어려운 환경에 놓인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했다. 세상의 눈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말과 행동이 보였다면 이들은 문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힘들고 열악한 상황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삶을 이해해주고, 이들의 눈높이로 일상의 안위를 살폈기에 이 봉사자들이 오랜 세월 이 여성들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맨살이 다 드러난 채로 무릎 담요와 작은 핫팩으로 추위를 견디는 여성들과 그들의 무릎 위에 조용히 간식을 올려준 봉사자들이 그곳에 함께 있었다.
이 봉사자들이 속한 단체의 담당 사제는 “이들이 하는 일은 사회와 법적 규정 안에서 배격당해야 마땅하지만,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과거와 환경·상황도 함께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봉사자들의 겸손된 나눔이 이들에게 위로가 될 때 이들은 사랑과 나눔 안에서 하느님을 알게 된다”며 “그 자체가 예수님을 전하는 일”이라고 했다.
붉은 빛 화려한 그들의 거리에 오늘도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사제와 수도자· 봉사자들이 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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