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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사람이 사람에게 친절해야 하는 날 (김민주 에스더, 크리에이터·작가, 로마가족 대표)

참 빛 사랑 2024. 12. 27. 14:16
 


종일 비가 쏟아지던 2020년 3월, 최대 30만 명이 운집할 수 있는 성 베드로 광장은 텅 비었습니다. 대신 흰옷을 입은 단 한 사람만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천천히 광장을 가로질러 걸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Dio, Non lasciarci nella tempesta.”(주님이시여, 우리를 폭풍우 속에 내버려두지 마십시요.)

나이 든 교황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던 2020년을 지나 2021년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집전으로 봉헌됐습니다.

성탄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우리 가족에게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당시 8살이었던 아들 이안이 성탄 전야 미사 화동으로 교황청 초대를 받았습니다. 이안이의 역할은 각국 어린이들과 교황과 함께 성탄 구유의 아기 예수님 곁에 화환을 놓는 일이었습니다. 미사 시작 전 예행연습을 마치고 예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당시 4살이었던 동생 이도에겐 쉽지 않았습니다. 칭얼거리는 동생을 안아 올리며 이안이가 속삭였습니다.

“오빠가 이도가 원하는 건 다 해줄게. 필요한 건 다 말해.”

제가 물었습니다. “어머, 너 동생에게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

저의 질문에 이안이 황당하다는 듯 답했습니다. “엄마! 크리스마스는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날이야!”

8살 아이가 깨우쳐준 이날의 의미, 사람이 사람에게 친절해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매일 친절한 사람이 될 순 없겠지만, 이 하루만이라도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길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여 사람으로서 사람에게 잘하는 사람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화동을 했던 어린이들은 따로 교황님과 단독으로 알현했습니다. 알현을 마치고 돌아온 이안이의 손에 작은 선물이 있었습니다. 교황님이 선물해주신 바티칸 묵주였습니다. 이안이가 묵주를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신기한 듯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내가 교황 할아버지께 내일이 이도 생일이라고 말했어. 그랬더니 나랑 이도를 위해서 이렇게 선물을 두 개 주셨어.”

교황과 마주한 아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크리스마스 아침에 태어난 동생의 생일이었던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안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사실 난 어제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았어. 내가 소원을 빌었지만 들어주시지 않았거든. 나의 소원은 행운이었어. 하지만 내가 행운을 빌어도 주지 않으셨어. 그런데 난 이제 예수님을 믿어. 나에게 행운을 주셨거든. 내일이 크리스마스라는 행운이야.”

 


김민주 에스더(크리에이터이자 작가, 로마가족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