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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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200년 전 조선 선교에 나선 브뤼기에르 주교를 기억하며

참 빛 사랑 2024. 11. 20. 19:26
 
한국 교회가 신앙적으로 성장을 거듭하며 오늘날에 이른 것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기에 ‘하느님의 종’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시성은 박해받았던 우리 교회에 선교사를 파견해 온 파리외방전교회에도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이다.

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은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위원장 구요비 주교)·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신부)와 평화상조 협찬으로 10월 15~24일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인 프랑스 카르카손-나르본교구와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등을 방문했다.

프랑스 파리=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정원에서 바라 본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전경.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성당 내부.
 
프랑스에서 사목 중인 대구대교구 심탁 신부(왼쪽)와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 신부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파견식 후 선교지로 떠날 항구로 가기 위해 마차를 타러 가던 길을 걷고 있다.


프랑스 파리 뤼드 박 128

프랑스 파리 중심가인 뤼드 박(Rue de Bac) 128거리. 명품 백화점과 상점들이 즐비한 이곳에 파리외방전교회 본부가 자리하고 있다. 마침내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자, 1658년 설립돼 366년의 역사를 가진 파리외방전교회 본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파리외방전교회는 브뤼기에르 주교가 사랑했던 한국에서 온 방문단을 브뤼기에르 주교와 같은 마음으로 품어줬다.

먼저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1691년 지어진 이 성당은 수많은 선교사가 선교를 떠나기 전 파견 미사를 봉헌했던 곳이다. 성당 입구 왼쪽 벽면에는 1864년 7월 15일 교황 파견 선교사들의 파견식 모습을 담은 샤를르 쿠베르탱의 작품 ‘출발’이 걸려있다. 떠나는 선교사들과 포옹하고 그들의 발에 입 맞추는 가족과 지인의 마지막 작별 인사가 담긴 그림이다. 1826년 2월 5일 아시아로 선교를 떠나던 브뤼기에르 주교도 가족, 지인들과 눈물의 작별 인사를 나눴으리라.

성당 아래에는 2003년 문을 연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물건과 기념품을 비롯해 순교한 선교사들의 유해와 유물이 모셔져 있다. 선교사들이 선교지 현지에서 입었던 옷과 신었던 신발, 성물, 순교 직전까지 목에 차고 있던 칼과 순교 당시 모습을 담은 그림까지. 목숨을 내놓으면서도 선교하고자 했던 선교사들의 헌신과 희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으로, 오늘날까지 그들의 의연함과 선교를 향한 열정이 거룩함을 자아내고 있다.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건물을 지나 정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푸른 잔디밭이 펼쳐진, 곳곳에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본부 정원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복잡한 세상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자아낸다. 벤치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새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한없이 평화로워졌다. 하지만 이곳은 과거에 다함께 파견가를 부르며 선교지로 떠나는 선교사들을 배웅했던 곳. 방문단은 브뤼기에르 주교를 비롯해 당시 선교사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던 본부 정원 곳곳을 말없이 걸으며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다시금 기렸다.

   
파리외방전교회 아시아연구소(IRFA)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 자코모 필리포 프란소니 추기경이 브뤼기에르 주교에게 보낸 서한 원본.

제한 없는 선교 지지 약속

“성성은 주교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바를, 주교님의 지혜에 맡겨드립니다. 주교님께서 청하신바, 주교님의 교황 대리감목 선발 이후에도 조선 선교의 관할권이 북경 주교에 속하는지 여부에 대해 성성의 답변은 그렇지 않다, 입니다.”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서 머물던 방문단에게 10월 16일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목록에서만 확인했던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 자코모 필리포 프란소니 추기경이 200여 년 전 브뤼기에르 주교에게 보낸 서한 원본을 파리외방전교회 아시아연구소(IRFA) 고문서고에서 최초로 확인한 것이다. 그동안 서한을 판독하거나 번역한 것이 없었기에 국내 교회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서한의 존재만 알려졌을 뿐 서한 원본은 확인하지 못했다. 방문단이 처음으로 서한 원본을 직접 확인한 것이다.

프란소니 추기경이 1836년 3월 31일 작성한 이 서한은 조선과 류큐(일본 오키나와) 왕국의 독립적인 선교 관할권을 재확인하며 선교 지지를 약속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성좌로부터 주교님께 부여된 은전(恩典)이 제한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주교님께서는 또한 조선에서 멀지 않은 섬들, 곧 그 왕국의 주민들이 세운 류큐 왕국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중국인들과는 다른 언어와 종교를 가지고 있으나, 외국인들에게 친절하고, 우호적인 풍습을 가진 사람들임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 왕국의 주민들은 주교님의 영적인 재치권에 따를 것으로 성성은 낙관하고 있습니다.”

앵베르 신부를 조선의 부주교로 임명할 수 있도록 교황 승인 대기 중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성성은 로랑 마리위스 조셉 앵베르 신부님을 주교님의 부주교로 뽑아주시기를 성하께 청원하였습니다. 성하께서 성성의 의견을 승인하시고 실행 명령을 내리시면, 주교님께서는 주교님이 겪으시는 노고의 동료와 위로를 얻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서한 원본을 처음 접한 사제들도 한껏 고무됐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 신부는 “교황청 포교성성이 브뤼기에르 주교로 하여금 조선대목구 관할 하에 일본을 선교하도록 배려했고, 브뤼기에르 주교의 선교에 대한 열정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 브뤼기에르 주교의 신앙 행적을 보여주는 다수의 원본 문서들도 최초로 확인됐다. 서울대교구와 한국교회사연구소는 귀국 후 곧장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시성의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될 고문서 판독 작업에 들어갔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숨결이 다시 살아난 순간이다.



 
파리외방전교회 총장 뱅상 세네샬 신부

파리외방전교회 총장 뱅상 세네샬 신부 인터뷰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시성은 파리외방전교회에도 큰 기쁨이자 아름다운 징표가 될 것입니다. 보편 교회가 더욱 선교하는 교회가 되는 데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시복시성이 이뤄지길 간절히 함께 기도합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총장 뱅상 세네샬 신부는 10월 16일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내 총장 집무실에서 이뤄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한국 교회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세네샬 신부는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시성을 위해 파리외방전교회 아시아연구소(IRFA)를 통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교회와 협력하기 위해 우리는 항상 준비돼 있습니다. 아시아연구소가 중심이 돼 서로 대화하며 자료를 교환하는 일에도 적극 협력하겠습니다.”

세네샬 신부는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을 통해 프랑스 교회와 한국 교회의 관계는 더욱 친밀해지고 돈독해질 것”이라며 “브뤼기에르 주교 시성을 두 나라 교회가 함께 준비하며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라며 “두 나라 교회가 기도 안에서 서로 협력해 나가자”고 덧붙였다.

세네샬 신부는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파리외방전교회 차원에서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세네샬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파견된 아시아 14개 나라에서 선교사들이 청년들과 함께 서울로 집결할 것”이라며 “파리외방전교회 차원에서 봉사자들도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보편 교회의 미래는 아시아에 있다”면서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통해 한국 교회, 아시아 교회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자리매김하고 보편 교회에도 큰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3년 뒤 브뤼기에르 주교를 중심으로 프랑스와 아시아 교회, 한국 교회 젊은이들이 신앙 축제인 세계청년대회에서 함께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