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선교 수사회 수사들과 봉사자·가족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평상복 입은 수사들, 장애인 가족 돌봐
20~40여 년 허물없이 함께 생활
정부 보조금 받지 않고 후원회도 없이
개인들의 자발적 후원·봉사로 유지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주님의 기도 기적처럼 매일 이뤄지는 곳
“저는 그저 기도하는 가난한 수녀일 뿐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제 마음에 당신 사랑을 채워 주십니다. 그리하여 저는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가난한 이에게 그 사랑을 전해 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에서 전한 성녀 마더 데레사의 메시지다. 교황은 “기도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면 헛된 것이 되고, 애덕도 기도가 없으면 바닥이 드러나고 마는 자선 행위에 불과할 위험이 있다”며 데레사 성녀를 통해 분리될 수 없는 기도와 애덕의 관계성을 드러냈다. ‘제8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17일)을 맞아 이 땅에서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사랑의 선교 수사회’를 찾았다.
가족 공동체
서울 삼선동에 위치한 사랑의 선교 수사회. 수도원 입구 양쪽에 걸린 마더 데레사와 공동 창립자 앤드류 수사의 현판만으로도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정체성이 물씬 풍겼다. 식사 시간이 되자 평상복을 입은 수사들과 몸이 불편한 가족들이 한데 모였다. 언뜻 봐선 누가 수사인지 모를 정도로 허물없이 어울려 있었다. 20~30년, 많게는 40년 넘게 머문 이가 있을 정도로 오랜 시간 함께하며 가족 공동체를 형성해왔다.
휠체어를 탄 베드로씨는 붓글씨 쓰기에 한창이다. 실력이 날로 발전해 입선까지 하고, 서예협회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단다.
또다른 식구 이씨는 뼈마디가 굳는 병에 걸려 누워서 생활을 하고 있다. 식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씨를 어떻게 비행기에 태울 것인가가 이날 주요한 이야기 주제였다.
프란치스코씨도 똑같이 마디가 굳는 병에 걸렸지만, 스스로 목발을 짚고 이동할 정도는 된다. 손을 움직일 수 있는 그의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는 묵주 만들기다. 방문하는 이들에게 묵주를 나눠준다. 봉사자들이 묵주가 고장 나거나 끊어지면 곧장 찾는 이가 프란치스코씨다. 하트 모양의 수세미도 직접 뜰 만큼 뛰어난 손재주를 가졌다.
요한 비안네씨는 뇌병변 장애를 지녔다. 지적 수준은 낮지만,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능력은 어떤 사람보다 뛰어나다. 와식 생활을 하는 이씨의 소변통을 매번 비워주고, 양칫물을 가져다준다. 춥다고 하면 이불을 덮어주고, 더우면 걷어준다. 그렇게 41년째 함께 살고 있다.
아우구스티노씨는 가족조차 돌보기 힘든 상황이 되면서 14년 전 이곳에 와 수사들의 가족이 됐다. 형제들과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가면서 현재는 굉장히 호전됐다. 저마다 불편한 몸을 지녔지만, 서로를 향한 배려와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끈끈한 대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사랑의 선교 수사회 공간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인도 콜카타에서 활동하는 아일랜드의 로레토 수녀회 소속이었던 성녀 마더 데레사는 1946년 기차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목마름을 채워주기 위한 헌신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또다른 수도회 성소를 받았다고 해서 이를 ‘부르심 안에 부르심’이라 한다. 1948년 콜카타의 가장 가난한 빈민촌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 1950년 사랑의 선교 수녀회가 설립됐다. 이후 수녀회가 성장함에 따라 1963년 사랑의 선교 수사회가 설립됐다. ‘앤드류’라는 수도명으로 수사회 입회 후 초대 총장을 역임한 예수회 출신 이안 신부(1928~2000)를 공동 창립자로 여기고 있다.
1977년 고 김수환 추기경의 초청으로 한국에 진출한 수사회는 재래시장과 역전·달동네와 시립무료병동 등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 섬기는 활동을 했다. 그들 중 오갈 데 없는 이들과 함께 가족으로 살고 있다. 현재 총 14명의 한국 수사들은 서울과 부산·필리핀·일본·페루·동티모르에서 이같은 소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사들은 매일 오전 5시 20분 공동기도 후 본당 미사 봉헌을 시작으로 가족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병원 등에 동반하며 일과를 보낸다. 또 노숙인들이 있는 지하철역과 홀로 지내는 노인 등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방문해 물품을 전달하고 말동무도 돼준다. 기본적으로 수도원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쌀과 라면 등 먹거리도 나누고 있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노숙인을 위한 목욕탕도 개방한다. 코로나 전에는 20여 명이 방문했지만, 현재는 5명 정도가 찾고 있다. 인원은 줄었지만, 그만큼 대화가 늘어나면서 더 끈끈한 관계를 맺게 돼 작년부터 봄·가을 소풍도 함께 다니고 있다. 사랑의 선교 수사회의 모든 경당에는 이같은 활동의 영적 나침반인 ‘목마르다’란 문구가 십자가 옆에 새겨져 있다.
모든 사랑의 선교 수사회 경당 십자가 옆에는 ‘목마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가난한 이가 되어
수사회 수사들은 수도복을 입지 않는다. 가슴에 단 십자가 배지만으로 신원을 드러낼 뿐이다. 수도원을 방문한 신자들이 누가 수사인지 헷갈려 하는 모습은 일상이다. 가끔 외부 강의를 나가도 알아보지 못하니 특별한 대접을 받을 일도 없다. 대부분 몸이 불편한 이들을 돌보는 활동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도복을 입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가난한 이들과 동질감을 갖고 함께하기 위해서다. 가난한 이들이 조금이라도 거리감을 느끼게 하지 않기 위함이다.
또 지금은 몸이 불편한 형제들을 위해 세탁기를 구비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손빨래를 한다. 가난한 이들이 세탁기를 사용할 수 없던 시절, 같은 상황에서 살아가고자 했던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사회는 의복과 생활에서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철저히 가난을 유지한다. 사회복지시설로 등록돼 있지만,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고 후원회도 따로 없다. 개인들의 자발적 후원과 봉사로만 유지하고 있다. 수도회 창립 때부터 유지해온 기조다.
수사회 서울 수도원 원장 조성제 수사는 “가족들을 돌보고, 음식을 나누는 활동들만 단순 계산해봐도 이렇게 지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며 “그만큼 곳곳에서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많다는 증거”라고 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주님의 기도가 기적처럼 매일 이뤄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와 함께
조 수사는 수사회 삶의 형태를 “기본적인 교회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덤덤히 말했다. 기도하면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자 하면, 가난한 사람 안에서 고통받는 예수님을 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수사회의 중요한 영성인 ‘목마르다’는 신학적으론 인간 구원에 대한 목마름을 말하는 동시에 실질적인 인간의 갈증을 내포한다고 설명했다.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 채 외로운 이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그들을 목마른 예수님으로 보고 손을 내민다면, 아프리카에서 선교하시는 분들 못지않은 선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 가족 요한 비안네 형제님은 동네 산책하면서 자판기 커피 마시는 게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걸 함께하는 거죠.”
아울러 복장부터 생활 형태까지 가족들과 같은 시선에서 살아가는 수사들은 일방적인 내어줌에서 그치지 않는다.
“제대 후 오토바이 사고로 목을 다쳐 전신마비가 돼 30년 넘게 이곳에서 함께 살다 지난해 떠난 형제가 생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의사도 포기한 나를 돌봐줘서 고맙다’고요. ‘덕분에 이렇게 오래 살 수 있었다’고요. 저희가 도움을 주긴 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삶을 향한 강한 의지를 보면서 더 큰 힘과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서로 의지하면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의 기도를 우리의 것으로 삼아 가난한 이들과 함께 기도하여야 합니다.”(2024년 ‘제8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프란치스코 교황 담화 중)
박민규 기자 mk@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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