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기획특집

주님이 주신 작가의 소명, 오늘도 정성껏 타이핑

참 빛 사랑 2022. 10. 31. 18:11

[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41) 소설가 홍지화 미카엘라

▲ 홍지화씨
 
 

홍지화(미카엘라)씨는 등단한 지 올해로 28년째인 소설가이다. 그는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등단했다. 그동안 기업체 사외보를 중심으로 칼럼과 에세이도 많이 쓰고, 최근작 「한국의 역사인물 가상 인터뷰집」 등 여섯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그의 책을 받아본 나는 한 자씩 정성껏 타이핑했을 것을 생각해 한 대목도 소홀히 읽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널리 알려진 제 대표작은 아직 없다”라고 겸손해 하며 더 열심히 읽고 쓰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수줍게 웃는다.    

 
 

Q. 성당에 오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A. 1999년 10월에 세례를 받았어요. 거의 20대 후반에 들어서야 제 발로 찾아가 성당 문을 두드렸어요. 물론 어릴 적부터 천주교에 대한 막연한 로망은 있었어요. TV나 영화 등에서 본 성당과 사제, 수녀님들의 정갈한 모습을 보면 경외심이 들었어요. 내가 만약 종교를 갖는다면 가톨릭을 믿어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어요. 그런데 서울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1999년 상경했어요. 숙식 해결할 곳이 마땅찮았는데, 지인이 소개해 준 곳이 명동 전진상 교육관이었어요. 당시에는 여학생 기숙사로도 활용됐어요. 제 룸메이트는 모태신앙이었는데, 한참 어린 친구였지만 저를 많이 배려해주고,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어요. 특히 이웃한 명동대성당에서 아침마다 들려오는 종소리에 너무 행복했어요. 영세 교리도 받기 전 성당에 나갔는데 신부님이 앞에서 주는 것을 제가 덥석 받아 호주머니에 넣어 왔어요. 친구가 성체를 왜 받아왔느냐며 아연실색하더군요.(웃음) 얼마 후 저는 세례를 받았고 제 인생에서 가장 기쁨으로 충만하고 뿌듯했던 날이 되었어요. 하느님 사랑이 제 사랑이 된 것 같아 든든했으니까요.

 
 

Q. 학창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A. 맨 앞에서 그냥 열심히 듣는 학생이었어요.(웃음) 수학, 한문, 영어 시간에는 열심히 졸았고요. 솔직히 공부보다 음악 듣기와 소설책 읽기를 더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성적이 좋지는 못했고, 국어와 사회, 역사밖에 잘하는 게 없었어요. 그러나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포기’가 가장 어려웠고, 대학입시가 제 인생 최대의 위기였지요. 주님의 보살핌으로 잘 넘겨 오늘날의 제가 있는 것 같아요. 부모님, 특히 제게 헌신하셨던 엄마 덕분이지요.

 

 
 

▲ 황지화씨가 쓴 작품들
 

 

Q.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조금 자세하게 설명해 주세요.
 

A. 저의 직업은 글을 쓰는 작가예요. 제가 쓴 글이 사람들의 마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얼마만큼의 따뜻함과 감동을 내 창작물이 내어줄 수 있는지, 제 품성이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기에 가장 자신 없는 부분이기도 해요. 그래도 많이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 감사할 따름이죠.

 
 

Q.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탈렌트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A. ‘글을 보기 좋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해요. 근데 가끔 이런 생각도 해봐요. 제가 건강했다면 부모님도 제가 방구석에서 글이나 쓰고 있기를 바라시진 않을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도 하느님은 제 날개 하나를 부러뜨린 후, 제게 보상으로 ‘글을 다루는 힘’을 주신 것 같아요. 일이 뜻대로 잘 안 풀릴 때는 좌절하고, 하느님이 원망스럽기도 한데, 글쟁이가 제 운명이자, 십자가이자,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제 글을 원하고,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죠.

 
 

Q.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매사 한결같음이 어찌 보면 지루하고 멋없어 보이지만 성실함과 꾸준함은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인 것 같아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2만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말도 있는데 저는 정작 2만 시간을 훨씬 넘게 투자했어도 제 목표에는 아직이예요. 결핍되고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채워 나가는 과정이 우리의 삶인 것 같아요.

 
 

 

Q. 삶에서 가장 큰 시련을 겪었을 때는 언제였나요?
 

A. 크게 세 번 정도인 것 같아요. 대학입시에서 전 4수를 했어요, 진짜 힘들었어요. 패배감, 부모님께 미안함, 제 환경에 대한 원망 등등 하루하루가 괴롭고 슬펐죠. 그래도 입시를 준비하면서 탈출구로서 밤마다 장편소설을 써서 등단했고 문예 특기자로 대학에 입학했어요.

두 번째는 갑작스러운 동생의 죽음이었어요. 가족의 죽음을 그때 처음 겪었어요. ‘혹시 나 때문인가’ 자책감도 많이 들었는데 그때 신앙이 없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해요.

세 번째 시련은 현재인 것 같아요, 지난 3월 초에 제 버팀목이었던 엄마를 떠나보냈어요. 평생을 저를 위해 사셨고 최고의 엄마였지만, 저는 마지막 임종도 못 지켰어요. 고맙다는 말조차 못 했고요. 작년 여름부터 많이 아프셨는데, 병원 수발을 들면서 제가 너무 지치고 힘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빈자리에 죄송함과 허망함, 그리움만 가득하죠. 엄마 인생의 보람이 되고 싶었는데, 이제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어요. 그냥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시련도 잘 넘기기를 밤마다 기도해요.   

 

 
 

Q. 삶의 한 부분이 된 청년성서모임 연수는?
 

A.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고, 저는 상처로 얼룩진 마음을 제 나름대로 치유하고자 간 것이 창세기 청년연수였어요.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똑똑히 기억해요. 연수 도중 허 신부님께서 “네 잘못이 아니란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순간 제 마음속에서 뭉쳐있던 응어리들이 한순간에 녹여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누가 저한테 그 한마디를 해주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가끔 생각해요. ‘내 모든 삶이 하느님이 축복이고, 기적이다.’ 일이 더 나쁘게 되어갈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았잖아요.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묘비에 그런 글귀가 쓰여 있다죠. “부르든, 부르지 않든 신은 거기에 존재할 것이다.”      

 

 
 

그는 누군가 책을 감명 깊게 잘 읽었다고 하면 가장 행복하고 보람차다고 한다. 자신보다 더 큰 장애를 가진 사람도 많으니 그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홍 작가의 말은 우리가 왜 함께 살아가는지, 공동체가 왜 중요한지 깨닫게 한다. 난 보좌 신부 때 한 유명한 뇌성마비 시인의 집에 봉성체를 가서 우연히 그가 공책에 쓴 시를 본 적이 있다. “나는 일어나 걷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뛰고 싶다. 그러나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어떤 이에게는 너무 일상적인 일도 어떤 이에게는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에 참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모든 것 부족함이라도 하느님의 뜻으로, 봉사할 수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홍지화씨의 고백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허영엽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