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 프란치스코 교황의 경제론 다시 살펴보기
▲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9 제3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맞아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노숙자와 실직자 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CNS 자료 사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는 각 사회의 취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특히 침묵하고 방관했던 복지와 경제 사각지대의 민낯들이 불거져 나왔다. 그동안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공 의료 시설은 문을 닫았고, 사회 복지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기업들의 비상 경영 돌입에 가장 먼저 해고되는 건 비정규직이었다. 재난 상황에서 이주민과 난민은 투명 인간으로 취급되며 치료는커녕 마스크 구매조차 할 수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생산과 소비의 방식을 다시 생각하고, 가난한 이들을 진심으로 돌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여전히 굶주림에 허덕이는데 한쪽에선 아직도 무기를 만드는 모순을 끝내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한결같이 외쳐왔던 교황의 경제론과 구체적 실천을 살펴본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배척의 경제와 돈의 우상화 경계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는 안된다. 그러한 경제는 사람을 죽일 뿐이다”고 비난했다. “나이 든 노숙자가 길에서 얼어 죽은 것은 기사화되지 않으면서, 주가지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기사화되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배척입니다. 한쪽에서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음식이 버려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입니다.”(53항)
사람보다 돈이 먼저인 세상에선 노숙인이 얼어 죽는 건 그럴 수 있다며 무덤덤하게 지나간다. 대신 주식이 폭락하고 부동산 가격이 휘청거리면 사람들은 ‘곡소리 난다’며 호들갑이다. 교황은 “알게 모르게 우리는 다른 이들의 고통스러운 절규 앞에서 함께 아파할 줄 모르고 눈물 흘리지 않으며 그들을 도울 필요마저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고 아프게 지적했다. “잘 먹고 잘살자는 문화가 우리를 마비시키고 시장에 새 상품이 나오면 사고 싶어서 안달합니다. 반면에 기회의 박탈로 좌절된 모든 이의 삶은 우리의 마음에 전혀 와 닿지 못하고 단순한 구경거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54항)
교황은 이와 같은 현상의 원인을 사람들이 돈을 우상화하고, 돈의 지배를 받고 있는 데서 찾아냈다.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노동을 착취하는 이들, 눈앞의 이익과 폭리를 취할 궁리만 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두고 교황은 “돈이 사람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개탄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걸음은 항상 가난한 이들을 향해 있다. 그는 2013년 교황으로 선출된 후 첫 공식 방문지로 이탈리아 남쪽 끝에 있는 람페두사 섬을 찾았다. 람페두사 섬은 밀선을 타고 오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유럽 관문지다. 인근 해역은 불법 난민선의 전복과 추돌 사고가 잦아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 곳으로 악명이 높다. 해마다 수천 명이 바다에 빠져 죽지만, 국제 사회는 난민 지원금과 구조비 분담을 서로 미루며 눈을 감아왔다. 교황의 람페두사 섬 방문은 교회가 가난한 이웃을 위해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은 복음에 바탕을 둔 가톨릭 사회교리의 핵심 가르침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하느님의 마음속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자리가 있다”면서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당신의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고 했다. 그렇기에 하느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모범을 따라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바란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실천하는 교황의 행보는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노숙인을 자신의 숙소로 초청해 음식을 대접했고, 바티칸 광장엔 노숙인을 위한 샤워시설을 만들었다. 사재를 털어 이재민을 돕는가 하면, 발 씻김 예식 장소를 교도소로 정하기도 했다. 특히 교황은 이러한 실천을 혼자서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이가 참여하기를 독려했다. 자비의 희년 선포와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제정도 그와 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인간 존엄성·공동선, 경제 정책에 반영돼야
교황은 가난한 이들이 품위 있게 살고, 아무도 배척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를 요청했다. 시장과 금융 투기의 절대적 자율성을 거부하고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이 세상의 문제들, 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도 얻지 못할 것”이라며 “불평등은 사회 병폐의 뿌리”라고 했다.
교황은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은 모든 경제 정책에 반영돼야 하는 관심사”라고 강조했다. 기업가와 정치 지도자들이 윤리와 정의 문제, 연대 의식, 재화 분배, 노동 보호, 존엄성 수호 등과 같은 주제를 말하는 것을 거북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재화를 증대시키면서 이를 모든 이가 더 잘 이용할 수 있게 노력하는 일이야말로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일임을 일깨웠다.
그러기 위해선 이기주의 문화를 버리고 연대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기주의 문화는 이웃을 경쟁자나 숫자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러나 연대의 문화에선 이웃을 형제로 받아들이게 한다. 교황은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라면서 “형제의 불평등에 함께 저항하고, 형제의 고통에 함께 울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를 위한 경제’(EoC)란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고, 더 많은 소비를 부추기는 물질만능주의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단면이다. 자본주의의 폐해와 한계를 돌파할 새로운 경제 모델로 ‘모두를 위한 경제’(Economy of Communion, 이하 EoC)가 주목받고 있다.
EoC는 국내에선 공유경제로도 소개됐는데, 이는 최근 많이 거론되는 공유경제(Sharing Economy, 생산된 제품을 여럿이 공유해 사용하는 소비경제)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EoC는 가톨릭 영성운동인 포콜라레 운동 창설자 끼아라 루빅 여사가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해 기업인들에게 제안한 새로운 경제 모델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경제활동을 지향하는 EoC는 무한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윤 일부는 반드시 가난한 이웃에게 돌려주고 나머지는 기업에 재투자하고 직원과 나눈다. EoC의 기본 정신은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며 살아간 초대 교회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EoC를 소개한 책 「공유경제」(끼아라 루빅 지음/벽난로)에는 EoC 기업들이 추구하는 바가 상세하게 나와 있다. “△고객과 납품업체 공공기관과는 물론 경쟁 업체와도 정직한 관계, 상대를 존중하는 관계를 맺는다 △직원들이 운영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도록 하면서 직원들의 가치와 역할을 최대한 높인다 △준법정신의 문화에 근거한 기업 운영 노선을 견지한다 △근로 환경과 자연 보호에 주의를 기울이며 필요할 경우 높은 비용의 투자도 감수한다 △지역 업체와 사회단체, 국제 공동체와 협력하고 연대한다.”
끼아라 루빅 여사는 EoC를 이루는 핵심이 ‘주는 문화’와 ‘새사람’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새로운 경제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이윤의 많은 부분을 가난한 이들에게 내어 준다”고 강조했다. 2015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EoC 이념을 실천하는 기업체는 811개다. 유럽에 절반이 넘는 463개가 있고 아시아에는 18개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전 빵집으로 유명한 성심당이 EoC를 실천하고 있다.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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