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나는평신도다

[평신도영성 나는 평신도다] (5) 평신도의 소명(하).

참 빛 사랑 2019. 1. 2. 21:02

 

복음 선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 평신도에게 복음 선포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사진은 전주교구 미룡동본당 신자들이 전교주일을 맞아 연 ‘선교 운동 선포식’에서 ‘천주교를 알려드립니다’ 문구를 새긴 어깨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교회는 평신도에게 왕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정확히 말하면 왕직을 수행하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예언자가 되라고 합니다. 겸손해야 할 평신도에게 왕이나 예언자가 되라니요. 이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왕직의 삶이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푸셨듯이, 우리도 다른 이들을 섬기고 나누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함으로써 사람들이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받들고 현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언직 수행하며 살아가야
 

또한, 평신도는 예언직을 수행하며 살아갑니다. 예언직이란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셨듯이, 우리도 이 땅에서 복음을 삶으로 증거하고 선포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적 삶을 실천하는 것에는 정의롭게 사는 것,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사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평신도는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고,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자 신비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교회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의 자격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의 자격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사셨던 것처럼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충실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평신도는 더 나아가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복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까요? 사랑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을 받은 하느님 백성들의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하느님의 백성이 전제됩니다. 하느님의 존재와 그분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한 평신도는 그분을 증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이 자비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그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체험하게 돼 그분을 전하고 싶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의 참 행복의 길과 부활의 영원한 행복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예수님께서 교회에 남기신 유언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루카 4,43)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은 선포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면 누가 전할까요?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대신 복음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들을 수 있고 들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 전하며 영적으로 성장
 

복음 선포를 위해 파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명을 교회 그리고 교회를 통해 현대를 사는 평신도들에게 부여하셨습니다. 유언의 상속자는 현대를 사는 모든 평신도입니다. 복음 선포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며, 사목자나 전문 선교사들에게만 그 직무가 수여된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맡겨진 직무입니다. 세례 성사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하는 모든 평신도에게 부여된 의무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세월 가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합니다. 세월 가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은 목적지가 이제 눈앞에 가까이 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출발선을 바라봅니다. 뒤를 돌아봅니다. ‘내가 왜 그걸 못했을까.’ ‘그때 내가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조금만 더 잘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이미 지나간 세월입니다. 게다가 지금 흘러가는 세월의 속도 또한 막을 수 없습니다. 가까이 다가온 목적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그 시간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평신도 사도직의 의미와 소명을 분명히 알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구체적으로 평신도 사도직의 소명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훌륭한 모범이 있습니다. 그 모범만 따라 하면 됩니다. 이제 그 모범을 찾아 타임머신을 타고 200년 전으로 가보겠습니다.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장)

▲ 정치우 새천년복음화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