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자비 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다. 거창한 자비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가상 가족 박 프란치스코씨네를 통해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박 프란치스코씨는 12일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교중 미사를 봉헌했다. 가족이 모두 같이 미사를 봉헌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른다. 이날 주임 신부님은 파우스티나 성녀 이야기와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 생긴 유래에 관해 강론하며 거창한 무엇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작은 자비를 실천하는 한 주를 보내기를 당부했다. 프란치스코씨 가족은 집으로 돌아가며 신부님 말씀대로 자비로운 한 주를 보내기로 각자 결심하는데….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그림=문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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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박 프란치스코(50대 가장, 기업 팀장)
“혀에는 삶도 있지만 죽음도 있다. 우리는 참으로 혀로 다른 사람을 죽인다”(파우스티나 성녀 일기 중에서).
월요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탄 박 프란치스코씨 머릿속엔 계속 ‘자비’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그러면서 지난주 금요일 보고서 작성을 제때 하지 못한 김 과장을 심하게 질책한 일이 떠올랐다. 평소 못마땅했던 감정이 함께 폭발해 “회사엔 놀러 왔느냐.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느냐. 그럴 바엔 아예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윽박지를 만한 일은 아니었는데….’ 그러고 보니 회사에선 늘 인상 쓰고 화를 내기만 했다. 직원들 인사도 제대로 받아준 적 없이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따뜻하고 친절하기보다는 칼 같은 잣대를 휘두르며 질책만 하는 팀장이었구나.’
회사에 도착한 박 팀장은 우선 사원들과 눈을 맞추며 “좋은 하루!”라며 인사를 나눴다. 뒤늦게 보고서를 가져온 김 과장에겐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기획안을 만드느라 괴로워하는 이 차장에겐 “고생이 많다”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찾아 일러줬다. 직원들이 따라와 주지 않는다고 불만과 짜증으로 시작하던 하루가 조금은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최 엘리사벳(50대 전업주부, 00본당 반장)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반장인 최씨는 교중미사 때 만난 반원 데레사씨를 본체만체했다. 그는 데레사씨와 앙숙이다. 최씨가 보기엔 데레사씨는 평소 성당 청소나 큰 행사 때는 쏙 빠지고 성지순례를 가거나 신부님 만나는 자리에만 나타나곤 했다. 데레사씨가 자신의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데레사씨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으면, 차라리 성당에 안 나타났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는 미사 때 “이웃들에게 먼저 작은 자비를 실천해 보라”고 한 신부님 말씀을 듣자마자 데레사씨를 떠올렸다. 미움은 잠시 접어두고 데레사씨에게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하느님께 자비의 용기를 청했다. 파우스티나 성녀가 바쳤다는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데레사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찬미 예수님, 데레사씨. 바쁘더라도 반모임에도 나오고, 반가운 얼굴도 좀 보여줘요. 오늘도 주님 은총 안에서 행복한 하루 보내길 기도할게요.♡” 조금 뒤 데레사씨에게서 문자가 왔다. “엘리사벳 형님, 문자 고마워요. 안 그래도 마음이 우울했는데 메시지 보고 기운이 나네요. 다음 반모임 땐 빠지지 않을게요~.” 최씨는 묵은 체증이 내려가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게 어떤 것인지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딸-박 로사(20대 대학생)
“너는 언제 어디서나 이웃에게 자비를 보여야만 한다. 너는 이것을 회피하거나 변명하려 하거나 면하려 해서는 안 된다”(주님께서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하신 말씀, 파우스티나 성녀 일기 중에서).
올해 대학생이 된 로사씨는 학교를 오가는 동안 노숙인을 자주 마주친다. 학교 근처에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급식소가 있어서다. 냄새 나는 노숙인들과 마주치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밤에 늦게 집에 갈 땐 왠지 노숙인이 해코지하지 않을까 무섭기까지 했다.
교내 게시판엔 봉사동아리에서 급식소 봉사할 배식 봉사자를 모집하는 공고가 종종 붙곤 했다. 볼 때마다 그냥 지나쳤는데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지내서인지 유난히 봉사자 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그날 저녁 배식 봉사가 있었다. 자비를 실천하라는 예수님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식 봉사에 함께한 로사씨는 노숙인들이 허겁지겁 밥을 챙겨 먹는 모습을 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저분들이 노숙인이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닐텐데…. 저분들도 가족이 있을텐데….’ 노숙인을 불쾌하게 여겼던 자신이 왠지 초라해졌다.
아들-박 요한(10대 중학생)
“온갖 형태의 악(惡)으로부터 자비가 선(善)을 이끌어 내고 선을 촉진하고 회복시켜 줄 때에 자비는 그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자비로우신 하느님」 6항).
OO중학교 점심시간 학교 급식실. 요한이네 반 왕따인 기형이가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1학년 때부터 왕따였던 기형이는 학년과 반이 바뀌어도 여전히 왕따 신세였다. 요한이는 투명인간처럼 지내는 기형이가 늘 마음에 걸렸다. 말수가 적고 왜소한 체구의 기형이는 딱히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반 아이들에게 자주 놀림을 당하곤 했다. 요한이 그런 기형이가 안돼 보였지만, 친구들 시선이 신경 쓰여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날, 예수님께선 소외 받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셨다는데, 그런 예수님 모습을 따라 기형이를 챙겨주는 것이 자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과학 시간. 조를 나눠 실험하는데 아무도 기형이와 함께하려 하지 않았다. “야, 우리 기형이도 끼워 주자.” 요한이가 친구들에게 기형이를 끼워주자고 제안했다. 친구들은 미쳤느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요한이는 기어코 친구들을 설득시켰다. “기형아, 같이하자.” 요한이 덕분에 기형이는 새 학기 들어 친구들과 처음으로 대화할 수 있었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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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우스티나 성녀와 자비의 예수님. |
부활 제2주일인 하느님의 자비 주일은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 불리는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1905~1938, 자비의 성모 수녀회)에게서 유래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0년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면서 성녀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 자비를 기리고 실천할 것을 당부했고, 가톨릭 교회는 2001년부터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다.
자비는 실천하는 사랑이다. 파우스티나 성녀는 “언제 어디서나 이웃에게 자비를 보여야 한다”면서 “말과 행동, 기도로 자비를 베풀고, 아무리 돈독한 신앙을 가져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하느님 자비를 입고 체험한다고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은 남에게 ‘자비를 행하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고도 가르치셨다”고 했다.
예수님께선 특히 비유를 통해 하느님 자비를 드러내셨는데, 되찾은 양의 비유(루카 15, 3-7),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 매정한 종의 비유(마태 18,23-35) 등이 대표적이다. ‘형제가 죄를 지으면 몇 번이고 용서하라’(루카 17,4)는 말씀이나 ‘원수를 사랑하라’(마태 5, 43-48)고 하신 말씀 등에선 자비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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