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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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출판

“그냥 조금 다를 뿐인데… 장애인 바라보는 시선이 마음 닫게 해”

참 빛 사랑 2025. 4. 25. 13:54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엄마(이명희)와 딸(백지윤).




매일 기도·묵상하는 딸 지윤씨

“발음이 안 돼 슬퍼서 많이 울어

잘 안 될 때는 기도했어요

나는 약하지만 기도는 강하고

부족한 건 예수님이 채워주시니까”





믿음으로 살아가는 어머니 명희씨

“연극 하면서 딸 관계성 좋아져

일상서 겪는 가장 큰 불편은 ‘시선’

발달장애인 위한 미사나

또래 만날 수 있는 활동 더 있었으면”





“많이 울었어요, 슬퍼서.”(지윤)

“내용이 슬퍼서요?”(기자)

“발음이 안 돼서.”(지윤)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구강 구조 때문에 발음이 잘 안 되거든요.”(지윤씨 어머니)

다운증후군이 있는 주인공 켈리의 사랑과 출산을 소재로 펼쳐지는 연극 ‘젤리피쉬’가 지난 13일 막을 내렸다.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도 입체적이지만, 켈리 역을 실제 다운증후군 배우가 맡아 편집 없이 라이브로 진행되는 무대를 능숙하게 소화해 화제였다. 그래서 공연 막바지 백지윤(마리아, 33) 배우와 작품 밖 그녀의 실제 어머니 이명희(레아)씨를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직접 만났다.

지윤씨가 무대나 연기에 도전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문화예술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2018 평창패럴림픽 개막공연에 참여했고, 드라마 ‘고고송’(2019) 등에도 출연했다. 그런데 발음이 안 돼서 힘들었다니 의외다. 발음은 물론이고 연기 자체에 별다른 막힘이 없어서 그녀의 기능 장애가 상당히 약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암기는 힘들지 않았는데, 대사가 많고, 빠르게 얘기해야 되고, 바로 치고 나와야 하는 동선이 많아서 되게 어려웠어요. 그런데 기적으로 성장했어요.”(지윤)

“지윤이가 기능이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 인지적인 면에서 낮은 편에 속했어요. 그런데 이 연극을 하면서 좋아졌어요. 작년에 쇼케이스할 때는 입 안에서 말이 굴러다니는 것 같았는데, 발성 연습도 하고 무한 반복을 하면서 50~60% 정도 향상됐어요.”(어머니)

두 사람과 직접 대화를 나눠보니 무대 위 지윤씨, 곧 켈리는 엄청난 연습과 훈련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켈리가 비장애인 남성과 연애하는, 딱 그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작품의 내용에 대해 모녀는 어떻게 생각할까.

“연애는 해보고 싶은데, 결혼이나 아기는 연극이고 실제로는 아니에요. 힘들잖아요.”(지윤)

“극중 엄마인 아그네스와 비슷한 생각이에요. 항상 ‘지윤이가 좋은 사람하고 예쁘게 만나면 좋겠다’고 말해왔는데, 상대를 비장애인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반대할 것 같아요. 상처받을 테니까. 그런데 켈리가 아그네스에게 묻잖아요. ‘나는 장애인 남자만 만나야 하느냐’고. 지윤이의 이성 관계에 대해 개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어떤 기준이 있었던 거죠.”(어머니)

이제 생각이 달라졌을까.

“계속 숙제인 것 같아요. 그런데 켈리의 남자친구를 연기하는 (김)바다씨가 정말 순박한 청년이거든요. 바다씨를 보면서 ‘정말 비장애인 중에 저렇게 순수한 마음을 가진 청년이 있다면, 우리 애가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극 안과 밖 두 어머니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작품에 표현된 사회의 편견, 인물들이 겪는 갈등은 매우 함축적이다. 실제 삶에서는 얼마나 다양하고 빈번한 어려움이 있을까. 지윤씨에게 일상에서 겪는 가장 큰 불편함을 물었더니 바로 ‘시선’이라고 답했다.

“특히 지하철 타면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조금 거리를 둔다거나 피하거든요. 그러니까 지윤이도 지하철 타는 걸 꺼리고. 저는 가슴에 담아두거나 깊이 보지 않아요. 느끼면 저도 힘들어지니까. 30년이면 굳은살 박여요.”(웃음)

하지만 그 굳은살이 생기기 전까지는 피도 나고 쓰라리고 곪기도 했다. 캐나다 이민을 시도하기도 했고, 실제로 3년 정도는 필리핀에서 생활했다.

“남다른 시선에서 아이가 좀 자유롭기를 바랐어요. 특히 사춘기 때요. 나가 보니 특별한 곳이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복지는 나을 수 있지만 또 다른 편견이 있기도 하고요. 심리적으로 편안한 곳, 덜 위축되는 곳을 찾았던 것 같아요.”

신기한 것은 이민을 생각하면서 갖게 된 신앙이 우리나라에 돌아온 뒤에도 더욱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지윤씨에게 말이다.

 
연극 ‘젤리피쉬’로 무대 연기 선보인 백지윤 배우.


“기도의 힘이라고 아세요? 나는 약하지만 기도는 강하고, 예수님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런 기회는 예수님·성모님이 주시는 선물이니까 잘 안 될 때는 기도했어요. 묵주기도도 하고 성경 쓰기도 하고. 내가 부족한 것을 예수님이 채워주시니까.”(지윤)

“자기가 할 수 있도록 계속 힘을 주신대요. 지윤이는 우리(가족)보다 더 상처받겠죠. 그런데 얘의 신심은 어느 수도자 못지않을 거예요. 주일 미사, 시간 될 때는 평일 미사도 가고, 하루 두세 시간은 묵상과 기도를 해요. 수도자가 되겠다고 해서 성소모임도 갔고요. 장애가 있어서 안 된다는 곳도 있더라고요.”(어머니)

어머니의 신심은 어떨까 궁금했다. 해맑은 지윤씨와 달리 ‘왜’라는 원망과 ‘어떻게’라는 물음을 과거에도 앞으로도 되뇌며 살아가지 않을까.

“믿음은요. 음, 호흡하듯이 그냥 일상인 것 같아요. 미사에 잘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신앙에 대한 흔들림은 없어요. 믿음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성당에서도 힘든 점은 있어요. 20년 넘게 성당에 가면서 얘를 사람들한테서 떨어뜨리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지윤이는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너무 반갑고 신자들이 좋아서 다가가지만, 상대방은 그런 걸 이해 못 하면 불편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같은 부모들은 이 아이들을 데리고 성당에 갈 수가 없어요. 그리고 가톨릭교회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미사나 활동이 좀더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마리아에게도 미사의 그 어려운 말이 하나도 안 들어오거든요. 마지막까지 청년부 레지오 마리애도 지켰는데, 청년부가 없어지니까 얘는 또래를 만날 수 있는 미사가 없는 거예요.”

20일은 주님 부활 대축일이면서 장애인의 날이다. 그 의미를 되새기고,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일상에서도 자리 잡길 바라는 취지에서 특별히 기념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두 날이 더 뜻깊게 다가올 두 사람에게 바람이나 계획을 물어봤다.

“장애 때문에 불편한 게 아니에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 시선이 마음을 닫게 하거든요. 그냥 조금 다를 뿐이니까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면 장애를 가진 사람뿐 아니라 그 가족들도 위축감을 덜 갖고 살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 연극이 참 감사해요. 지윤이도 발음만 좋아진 게 아니라 켈리를 통해서 자신을 관찰하고, 배우나 제작진과 함께하면서 타인과의 관계, 남의 감정을 이해하고 맞추려 노력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더라고요.”(어머니)

“계획을 왜 세워, 그냥 그때그때 잘 살아요. 예수님이 다 해주실 거예요!”(지윤)

기자의 우매한 질문에 현명한 답을 던지고 공연 준비를 위해 지윤씨가 먼저 자리를 뜨자 조심스레 어머니에게 물어봤다. 켈리처럼 지윤씨가 아기를 낳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지윤이가 태어났을 때 나한테 올 아이니까 왔다고 생각했어요. 지윤이가 아이를 낳겠다고 하면 아그네스처럼 도와야죠. 다운 아이는 내가 키워봤으니까. 그런데 극의 대사처럼 제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장애라면 또다시 겪어낼 자신은 없어요.”(웃음)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