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받아들이시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는 것에 대해 불평합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은 벌하시는 엄하고 무서운 분이시기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잃어버린 이들과 죄인들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비유로 가르쳐주십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는 ‘탕자의 비유’ ‘되찾은 아들의 비유’ ‘인자하신 아버지의 비유’ 등으로 불립니다. 등장 인물들의 특징을 잘 표현한 제목들입니다. 여기에 큰아들을 포함하면 ‘이해심 없는 큰아들의 비유’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의 비유에는 풍부한 묵상 소재가 담겨 있습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묵상하면 말씀의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복음의 비유에는 인간의 부족한 모습과 하느님의 사랑 많으신 모습이 잘 담겨있습니다.
복음에서 작은아들은 자신 몫의 돈과 재물을 챙겨 아버지와 고향을 떠나 방종한 생활을 합니다. 결국 모든 것을 탕진하고 남의 집에서 종살이하며 굶주림에 죽을 지경이 되고 나서 후회합니다. 그제야 작은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 그저 품팔이꾼으로라도 지내겠다고 결심합니다.
쉬는 교우들이 지인에 이끌려 성당을 다시 찾는 경우 저는 그 당당함에 종종 놀랍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내가 다시 왔으니 고맙게 생각하고 그동안 지은 죄는 모르겠으니 알아서 용서해주고 나는 내키지 않지만 주위에서 하도 성화를 해서 마지못해 와주었으니 앞으로 잘 반겨라”하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열심한 신앙인이라 자처하는 교우 중에도 자신의 죄에 관해서는 진심으로 통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비하면 복음의 작은아들은 겸손하고 용기 있게 자신의 죄를 뉘우쳤습니다. 진심 어린 참회와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작은아들을 껴안고 즐거운 잔치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는 작은아들을 통해 성찰할 점이 많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를 버리지도 않았고 충실하게 아들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는 자식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다 지켰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아버지의 자비로우신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작은아들을 용서하며 받아들이시는 아버지 뜻에 대들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 기득권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무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죄 지은 사람들의 과거를 들춰내면서 미래를 가로막고 영원한 죄인으로 낙인찍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오늘날 우리 교회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타락에서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불가능하다고 단죄하며 용서하지 않고 자신은 열심하다고 자처하며 정의롭고 고상한 듯 지내는 우리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안에는 큰아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는 큰아들을 통해서도 성찰할 점이 많습니다.
오늘 복음의 작은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가 회개하게 된 이유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신뢰 때문입니다. 죄를 떨쳐버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도, 시련에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죽음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도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에서 옵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아무리 죄가 크다 해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돌아온다면 하느님께서는 따뜻한 사랑으로 반겨주십니다.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다가오는 부활을 준비하며 올바른 참회의 성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지금이 바로 회개의 때이고, 구원의 시기입니다.

이계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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