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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은 교회가 사도 시대 때부터 외부의 박해와 내부의 갈등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하던 예루살렘에는 크게 두 부류의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 출신의 ‘히브리계 유다인’과 이 지역 외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헬라어도 할 줄 아는 ‘디아스포라 유다인’입니다. 사도행전은 이들을 ‘그리스계 유다인’이라 합니다.
유다교에서 개종해 예루살렘 교회 안에 받아들여진 이들 두 부류의 유다인들이 차츰 긴장 관계로 대립합니다. “그 무렵 제자들이 점차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이 말에 온 공동체가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테파노, 그리고 필리포스·프로코로스·니카노르·티몬·파르메나스, 또 유다교로 개종한 안티오키아 출신 니콜라오스를 뽑아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사도 6,1-6)
사도행전은 히브리계 유다인들이 그리스계 유다인 과부들을 홀대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고 전합니다. 아마도 초기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는 히브리계 유다인들이 주축이었나 봅니다. 이들의 식탁 봉사는 음식을 제공하는 단순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식탁 봉사는 성찬례와 함께 이뤄지는 식사 때에 수행되었기 때문입니다.(사도 2,42 참조) 그래서 이 봉사에는 교회 살림살이 곧 교회 재산 관리도 포함돼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죠.
사도들은 즉시 개입해 이 일을 맡아 할 새 사람들을 뽑을 것임을 밝히면서 갈등을 봉합합니다. 사도행전은 교우들이 뽑은 새 봉사자 일곱을 소개합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 모두가 그리스계 유다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의 주도권이 히브리계 유다인에서 빠르게 그리스계 유다인 부류로 넘어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들은 히브리계 유다인들보다 유다교 전통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있어 훨씬 더 개방적이었습니다. 그 대표 인물이 바로 스테파노입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직무 가운데 식탁에서 시중을 드는 봉사직을 분리, 제정함으로써 교회 내 두 부류 간 갈등을 해소했습니다. 교회는 이 봉사직에서 ‘부제직’이 유래하였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히브리계 유다인과 그리스계 유다인 간 갈등은 훨씬 심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개연성을 사도행전 8장 1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사도행전 8장은 스테파노 순교 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 상황과 복음이 사마리아로 전파된 경위를 설명합니다. 여기서 ‘모두’는 그리스계 유다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예루살렘 당국, 곧 최고 회의(산헤드린)의 박해 주 대상이 된 것입니다. 스테파노처럼 이들은 율법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야만 했고, 예루살렘 교회에는 사도들과 히브리계 유다인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예루살렘 밖으로 교회가 확장되므로 히브리계 유다인을 ‘유다계 그리스도인’, 그리스계 유다인을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으로 표현하겠습니다.
그럼 왜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과 달리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안전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규칙적으로 성전에 가서 기도하고 율법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사도 3,1 참조) 이들과 달리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은 스테파노처럼 율법과 성전을 비판하는 설교로 예루살렘 대중들을 분노케 했고, 사도들을 옹호하는 바리사이파 일부 대표들과도 부딪쳤습니다.(사도 6,13-14 참조) 이처럼 유다계 그리스도인과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의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과부들의 홀대로 드러났지만, 근본적으로는 율법과 성전에 대한 태도에서 불거졌음을 알 수 있죠.
율법 준수와 율법 비판, 성전에 가서 기도하는 것과 성전을 멀리하는 것은 사도 시대 예루살렘 교회 내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이 취하는 태도였습니다. 이들 두 부류의 갈등에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그들이 그간 믿고 실천했던 율법과 성전이 주는 구원의 의미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느냐입니다. 이 성찰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보다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스테파노처럼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예루살렘을 떠나 복음을 다른 지역에 널리 선포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리길재 선임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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