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쥬라기 공원’ 한 장면. OSV
프란치스코 교황은 해마다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정하면서 주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에 대한 존중과 보호를 요구하였다. 9월 1일부터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인 10월 4일까지를 ‘창조 시기’로 지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우리가 주장하는 ‘지구 지키기’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사람이 있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원작자로 유명한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튼이다. 우리는 ‘쥬라기 공원’을 공룡이 나오는 SF 영화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원작은 인간과 지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크라이튼에 따르면, 우리가 ‘지구를 지킨다’고 하는 구호 자체가 오만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50억 년에 가까운 나이를 먹은 지구에서 인류가 번성한 것은 찰나에 지나지 않으며, 만일 지구에서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폭탄이 모두 터진다고 해도, 지진이 나고 해일이 일어 전 지구를 뒤덮는다고 해도, 인류와 생물들은 멸망하겠지만 지구는 아무런 문제 없이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지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우리를 아주 짧은 기간 품어준 것이며, 지금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는 지구’를 유지하는 데 불과한 것이고, 감히 지구를 살린다는 거창한 목표는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당시도 ‘지구를 구하자’라는 슬로건이 세계를 휩쓸고 있을 때라서 그의 주장은 신선함을 넘어 획기적이었다. 오히려 영화로 제작되면서 그의 앞선 혜안들이 많이 묻혀진 것이 아쉽기도 하다.
존 윌리엄스가 직접 지휘한 비엔나 필하모니의 ‘쥬라기 공원’
//youtu.be/-NqaupGcCpw?si=CyZ9iNrNglDbKVfH
광활한 우주 속에서 소행성인 지구에 수많은 생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신기하고 놀랍지만, 이 기적 같은 확률 안에서 존재하는 생물체 중 하나가 모두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은 더더욱 놀랍다. 주님께서 창조하시고 만들어놓은 피조물 중 주님을 가장 닮은 우리가 그분이 만드신 세계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창세기를 보면 주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며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라고 하셨다. 감히 우리가 주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바꾸고 망가뜨릴 자격이 있을까.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세계에 감사하며 이를 보전하자는 의미가 담긴 날이다. 우리는 본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힘든 존재이며, 옆을 보는 것도, 뒤를 살피는 것도 어렵고 힘들고 고생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세계를 지키고 존중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고 내가 잘살기 위한 행위다. 각자에게 좋은 일이니, 최소한 그거라도 제대로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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