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문화출판

구순 앞두고 전성기 맞은 1세대 여성조각가

참 빛 사랑 2024. 8. 1. 15:27
 
성북동의 한 갤러리에서 만난 조각가 김윤신. 감각적인 패션에 수줍은 미소가 인상적이다.


뭐든 ‘하고 싶다’ 생각하면 해왔으니까 매 순간이 전성기

힘들게 작업하다보면 기도 절로 나와…작업 자체가 기도



“한국에 왔는데 오히려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갑자기 내 나이를 의식하게 됐어요!”

고국이 낯설게 느껴지는 그녀는 요즘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 가운데 한 명인 1세대 여성조각가 김윤신(쟌느, 89)씨다.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뒤 주로 남미에서 활동했으니, 네 번이나 바뀐 우리나라의 산천과 그 사이에 자리한 모든 것이 새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예나 지금이나 이어지는 윗사람을 공경하는 문화는 내내 잊고 살던 나이를 새삼 실감하게 만든다.

“지금껏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한국에는 어른을 대접하는 문화가 있잖아요. 남미에서는 ‘너는 너, 나는 나’인데, 여기서는 ‘어르신이 톱질을 한다’고 놀라고.(웃음) 그래서 기분이 이상해요.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는 건지 ‘늙은이가 이런 걸 해도 되나’ 싶고.”

기사의 제목이나 내용을 생각하니 미리 송구하다. 그런데 그만큼 대단한 일인 것이다. 아흔 살을 앞두고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은 게 아닌가. 지난해 영구 귀국해 잇달아 전시회를 개최한 그녀는 제37회 김세중조각상을 받더니, 지난봄에는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받았다.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니 국내 활동은 더욱 활발해질 수밖에 없을 터. 지난 3월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6월 대전 이응노미술관에서 시작된 ‘김윤신-아르헨티나에서 온 편지’전도 한창이다. 지난 19일 서울 아르코미술관에서 개막한 ‘집(ZIP)’전에도 참여했다. 20대 신진 작가부터 16명의 한국 여성 조각가가 참여하는 이 전시에서도 그녀는 선봉에 있다.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 아티스트들이 세계를 주름잡는 요즘 손주뻘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셈이다.

“매 순간이 전성기죠. 뭐든지 ‘하고 싶다, 하겠다’ 생각하면 해왔으니까. 우주에는 철저한 질서가 있고, 내 삶 역시 그 질서를 만든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잖아요. 주님이 항상 함께 계시니까 어디나 집이라고 생각했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어요. 혼자서 작업할 때 큰 나무를 잘라서 세우는 것조차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저절로 기도가 나와요. 보는 사람 아무도 없지만, 내가 이렇게 애쓰고 힘든 거 하느님은 아시잖아요. 그래서 나에게는 작업 자체가 기도예요.”

그녀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었다. 강원도 원산에서 태어나 10리를 걸어 학교에 다녔고, 목숨을 걸고 서울로 넘어와 1955년 홍익대 조소과에 입학했다. 1960년대에는 프랑스에서 유학했으며, 상명여대 교수로 재직하다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했으니, 내내 시대를 앞서가며 주목받는 삶을 살아오긴 했다.

재료를 찾아 남미까지 갔던 그녀는 서울의 빌딩 숲에서는 전기톱으로 작업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입주작가로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작품 1300점을 가져오느라, 잇단 전시를 준비하느라 작업할 시간이 부족해 지금 이 순간에도 그저 작품 생각뿐이다.

“‘회화 조각’을 시도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나무는 벌레가 많이 먹더라고요. 그래서 브론즈(청동)로 뜬 다음에 거기에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다른 건 별로 관심 없어요. 후배들이 어른 대접 하니까 ‘이런 작가가 있는데 본받아서 열심히 하고 싶다’ 생각할 수 있도록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