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쩌나] (하이라이트 3 ) 병적인 죄책감, 어찌할까요?
문 : 신앙생활 10년째입니다. 그동안 고해성사를 자주 봤는데, 때론 ‘이런 것도 고백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자주 고해소를 들락거리는 것 같아 주임 신부님 뵙기가 부끄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해성사를 안 보면 찜찜한 마음이 들고요. 큰 죄를 짓지 않는데도 생기는 이런 죄책감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 살다 보면 마음에 찜찜한 것들이 생깁니다. 고해성사를 볼 정도는 아닌데 그냥 넘어가기에는 꺼림칙한 것들, 목구멍에 생선 가시가 걸린 듯한 느낌을 주는 것들, 이런 것들을 ‘작은 죄책감’이라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어가라고 합니다만, 그건 사람 나름이고 현실에서는 심리적 괴로움을 겪는 분이 많습니다. 또 죄책감이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무책임하게 다뤄서는 안 됩니다. 마치 손바닥에 박힌 가시처럼 내버려두면 불편할 뿐 아니라 나중에는 곪아서 큰 상처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죄책감을 다루는
첫 번째 방법은 ‘친구에게 털어놓는 것’입니다. 털어놓기는 심리치료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큰 죄책감이건 작은 것이건 가슴에 끌어안고 쌓아두면 결국 몸과 마음이 병듭니다. 따라서 일정 기간이 되면 쓰레기를 거둬 가듯 털어놓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 입이 무거운 친구여야 합니다. 그런 친구가 없다면 상담가를 찾는 것이 좋습니다.
두 번째는 자렌(Zarren and Eimer)의 ‘자동칠판기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과거 기억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부적절한 기억을 삭제함으로써 현재 삶에 부담이 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눈을 감고 칠판을 상상하고 거기에 자신이 가진 모든 죄책감을 적어 보는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도요. 마지막에 적은 것부터 차례로 지웁니다. 이 작업은 심리적 노폐물들을 처리함으로써 마음의 짐을 덜고 심리적 안정감과 균형을 찾게 해줍니다.
세 번째는 과거 어두운 기억을 몰아내고자 현재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만족감과 행복감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그것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작은 죄책감이 주는 불편함이 해소될 수 있습니다. 손바닥에 가시가 박힌 아이가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며 자연스레 가시가 빠져나가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네 번째는 ‘보상 행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 가슴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춥고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 마음 아픈 기억을 가지고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부모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때 잘해 드릴 걸 그랬어’ 하는 후회와 자책감 속에 사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습니다. 이런 때는 그분들 이름으로 자선을 베푸는 것이 좋습니다. 자선 행위는 사람들에게 만족감과 행복감을 줄 뿐만 아니라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분들에게 보상을 해 드린다는 보상감도 있어서 작은 죄책감을 덜기에 최상의 방법입니다.
다섯 번째는 기도해 드리는 것입니다. 특히 미사가 좋습니다. 살아 계신 분이나 돌아가신 분들이나 미사를 해 드리면 마음 안의 불편한 죄책감이 덜어지고 하느님께서 그분들을 돌봐 주실 것이라는 심리적 편안함이 생깁니다.
잘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기 위해 작은 죄책감을 갖는 것은 건강한 것입니다. 죄책감이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따라다닐 때는 어느 정도 정리를 해야 합니다. 앞서 알려 드린 방법을 사용해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분들은 인간관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나치게 완전한 인간이 되려 노력하는 분 중에 이런 현상이 자주 나타납니다.
이분들은 완전함과 온전함의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자신이 신이 아니라 사람이며, 불완전한 존재임을, 그리고 사람은 실패와 실수를 통해 성숙해가는 존재이지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는 자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 할 때도 약한 자의 기도,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는 기도를 해야 죄책감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아! 어쩌나] (하이라이트 1 ) 병적인 죄책감, 어찌할까요?
(상)
문 : 남편이 너무 자주 화를 냅니다. 집안일이건 회사 일이건 심지어 성당에서 단체활동을 하면서도 집에만 오면 화를 냅니다. 화를 내는 이유를 들어 보면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되는데, 지나치게 자주 화를 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싶습니다.
답 : ‘성격 안 좋다’ 혹은 ‘성질 더럽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일에 자주 화를 내고 예민하게 반응할 때 이런 소리를 듣습니다. 분노는 그런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힘겨운 숙제입니다. 한 번에 풀 수도 없고 풀리지도 않는 어려운 숙제이지요.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하는 불청객 같은 감정입니다. 어떤 종교에선 ‘분노는 마음의 독’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분노를 없애려 하거나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항상 좋지 않은 것인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선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없애 주고 긴장을 감소시킵니다. 분노는 대개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데서 오는 좌절감과 연관돼 있습니다. 그럴 때 분노를 표출하면 이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긴장을 푸는 일시적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또 분노 표출은 자기 안의 심리적 고통과 불안감, 병적 죄의식 같은 힘겨운 감정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 줍니다. 화를 내는 동안만큼은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분노 표현은 자기방어적 기능도 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도 화를 내지 않는다면, 견딜만한가 보다 하면서 무관심해지거나 ‘건드려도 가만히 있네?’ 하면서 또다시 해코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분노 표출은 유용한 것인데 왜 좋지 않다고 하는가? 모든 분노 표출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분노 표출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레드포드와 버지니아 윌리엄스는 저서 「화가 부르는 것」에서 “적대적 신드롬 상태에 놓인 사람들은 강도 높은 예민함, 자기방어라는 인식하에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행동하려는 충동을 자주 느끼고, 언어ㆍ실제적 태도에서 저돌적으로 행동하고, 그러한 행동이 적대감을 강화하며, 충동에 대한 자제력을 잃게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한다. 결국, 대처 능력을 상실해 다른 사람들과 불화를 일으켜 스스로 소외당한다”고 밝혔습니다.
불이 모든 것을 태우듯 지속적인 분노는 인생을 파괴합니다. 따라서 지나친 분노는 잘 다스릴 필요가 있습니다. 분노를 다스리는 평소 훈련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즉, ‘자애심’을 키우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이기적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이 다 내 뜻대로 되기를 원하고, 나를 중심으로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 그런 마음이 가장 강합니다. 부모에게서 일방적인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더 심합니다. 그러다 사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그런 마음으로 살기 어렵다는 현실을 깨닫고 조금씩 자기를 포기해 가는 과정을 밟으며 어른이 됩니다.
하지만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어른 행위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기만적 행위여서 마음 안의 적대감이 해소되지 못해 작은 일에도 화를 내면서 살기에 ‘좁쌀영감’이란 빈정거림을 듣게 됩니다.
따라서 자신도 편하고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주님 가르침처럼 이웃 사랑을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실천 방법으로는 고통받고 가난한 이웃,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는 것입니다. 특히 나를 힘겹게 만든 원수 같은 이들을 위해 당장은 마음이 가지 않더라도 주님께 그들을 봉헌하고 잘 이끌어 주십사 기도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봉사 활동도 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마음 안의 적개심이 줄어들고 부드러운 성격이 될 것입니다.
[아! 어쩌나] (하이라이트 2 ) 병적인 죄책감, 어찌할까요?
(하)
문 : 남편이 너무 자주 화를 냅니다. 집안일이건 회사 일이건 심지어 성당에서 단체활동을 하면서도 집에만 오면 화를 냅니다. 화를 내는 이유를 들어 보면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되는데, 지나치게 자주 화를 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싶습니다.
답 : 화를 다스리는 두 번째 방법은 세상사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하느님 뜻대로 돼 간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잘못되면 짜증을 내고 화를 냅니다. 심지어 하느님께 삿대질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할 때마다 주님 뜻이 이뤄지게 해 달라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기도를 바치니 세상사가 다 내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청개구리 심보이지요. 그러니 조금이라도 기도가 이뤄지지 않으면 하느님께 화를 내거나 냉담하는 것입니다.
뉴스에 가끔 행복지수가 낮은 나라와 높은 나라를 비교하는 기사가 납니다. 그런데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행복지수가 높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알고 마음을 내려놓은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는 데 반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안달복달 짜증을 내기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일이 잘 안 풀리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일수록 하느님 뜻이 무엇인가를 찾고 의탁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적개심을 줄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유치하고 이기적인 자기 마음을 달래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자기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약해집니다. 선물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원수 같은 사람일지라도 나에게 잘해 준다면 쌓였던 앙금이 순식간에 풀리는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죽도록 미울 때는 그 사람이 나에게 잘해 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혹은 앞으로 받을지도 모르는 것에 대해 미리 생각해 봐도 좋습니다. 어떤 본당 신부가 신자들이 속을 썩여도 늘 싱글벙글해서 비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화가 날 때마다 영명축일에 받은 선물을 생각하고 그래도 화가 나면 내년에 받을 선물까지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고 하더랍니다. 한 번 따라 해 보시길 바랍니다.
네 번째는 미국의 뇌과학자 질 볼티 테일러 박사의 방법입니다. 테일러 박사의 실험에 의하면,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 몸 안에서 맴돌다 밖으로 빠져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90초라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화가 나면 온종일 가는데 무슨 소리냐”고 따질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는 한 번 화가 나면 몇 분이 아니라 몇 시간 동안, 때로는 며칠 동안 화가 안 풀어져 힘들어하곤 합니다. 그러나 90초 이상 지속하는 화는 첫 번째 주제가 아니라 연이어 떠오른 다른 생각들 때문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화가 났을 때는 딱 90초만 시간을 보내면 웬만한 화는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방법은 화가 났을 때 훌륭한 음악, 그림 혹은 사진을 감상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울 때 엄마는 아이 눈앞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무엇인가를 보여 주면 아이들은 울음을 그칩니다. 마찬가지로 어른들 역시 마음은 어린아이이기에 화가 난 자기 마음 앞에 보기 좋고 듣기 좋은 무엇인가를 놓아주면 순식간에 마음이 돌아서서 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어르신은 화가 나면 금고를 열어 본다고 합니다. 금고 안의 돈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아주 편해진다는 것이지요. 돈 좋아하시는 분들은 따라 해 볼 만하지요.
마지막은 평소 즐겁게 노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대개 적개심이 많은 분은 잘 놀지 못합니다. 적개심이 의심을 만들고 사람을 멀리하게 하기 때문인데, 그럴수록 놀이판에 자주 끼어야 합니다. 물론 심한 돈놀이 판은 전혀 도움이 안 되고 낄낄거리고 놀 수 있는 놀이판이어야 합니다. 마음은 길들이기 나름이라 재미있는 놀이를 계속하면 ‘재미의 길’이 만들어져서 화통한 마음을 만들 수 있습니다.
채근담에는 “거센 바람 성난 비에는 새들도 근심하고 갠 날씨 따뜻한 바람에는 초목도 기뻐한다. 가히 알지로다. 천지엔 하루도 온화한 기운이 없어서는 안 되고 사람의 마음에는 하루도 기쁜 정신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내가 화를 내면 새도 개도 사람도 다 떠나 외로운 처지가 되고, 내 마음이 화창하면 모두 나에게로 오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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