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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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사람들

[신앙단상] 주님과 함께 달리는 길

참 빛 사랑 2025. 6. 28. 14:04
 


물끄러미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면 인생은 마치 마라톤과도 같다. 단거리 경주가 아닌 42.195㎞라는 긴 여정, 단숨에 끝낼 수 없는 인내의 길이다. 누군가는 마라톤을 영광의 결승선을 향해 나아가는 도전으로 비유하고, 또 누군가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극복해내는 수련의 길로 여긴다. 그 길 위에 선 나 역시, 이제 반환점을 지나 마지막 구간을 향해 달려가는 순례자임이 느껴진다. 얼마나 남았는지는 나조차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다만 나의 여정을 지켜보시며 함께 걸어오신 하느님께서는 그 시간을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

처음 출발할 때 빈손이었다. 세례를 받고 신앙 안에 뿌리를 내리기 전까지는 세상 이치를 좇아 빠르게 달리는 법만 배웠다. 그러나 인생의 마라톤에는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달은 건 몇 번의 언덕을 넘고 나서였다. 누군가와의 경쟁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유혹은 수없이 많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말을 듣지 않을 때면 “여기까지만 하자”는 유혹이 귀를 간질였다. 그러나 그런 순간마다 십자가를 향한 눈길을 멈추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내 곁에서 함께 달려주신다는 믿음은 지친 내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때로는 오르막길처럼 고통이 이어지는 시간이 있었다. 가족의 병환, 직장의 불안정, 인간관계의 상처, 내가 감당하기엔 벅차 보였던 삶의 짐들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나 그 순간마다 마치 마라톤 코스에 준비된 급수대처럼 하느님께서는 내게 물 한 모금의 위로를 주셨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미사 중 듣게 된 복음 한 구절, 무릎 꿇고 바친 기도 속 응답의 기적. 이 모든 것이 영혼의 갈증을 적셔주며 다시금 발걸음을 떼게 하는 은총의 순간들이었다.

달리다 보면 고요한 평지도 있고, 바람이 등을 떠미는 내리막도 있다. 순조로운 시간은 언제나 감사의 계절이었다. 그럴 때일수록 자만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감사하며 걸었다. 내 삶을 지탱해 준 가족·친구·공동체, 그리고 수많은 이웃 덕분에 더는 혼자의 경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순례자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삶의 앞날이 얼마나 남았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 남은 거리를 어떻게 달릴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더딜지라도 멈추지 않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며, 하느님께 맡기며 걸어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마라톤의 영성이라 믿는다. 이제부터의 달리기는 더 이상 기록이나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다. 경쟁의 레이스가 아니라, 성찰과 감사의 순례가 되어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축복의 숨결로 채우며, 나의 흔적이 누군가의 위로가 되기를, 지친 이에게 쉼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마라톤의 마지막은 화려한 불꽃이 터지는 순간이 아니라, 조용히 숨을 고르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이다. 하느님께서 내게 “잘 달려왔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라고 말씀해주시는 그날까지 속도는 느릴지언정 방향만은 잊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언젠가 도착점에 이르렀을 때 온몸이 땀에 젖고 숨이 차오르더라도 긴 여정을 성실히 달려온 발걸음으로 봉헌하기 위해 손에는 주님께 드릴 작은 기도의 꽃다발 하나 들려 있기를 소망한다.

 

조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