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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선종] 장례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마지막 길, 전 세계가 눈물·미소로 작별

참 빛 사랑 2025. 5. 5. 10:36
 
“주님, 백성에게 진리를 충실히 가르친 주님의 종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제 하늘나라에서 그 진리로 기뻐하게 하소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가 거행된 4월 26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은 교황의 마지막을 애도하는 25만여 명의 신자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주님 품에 든 교황을 추모하는 성가와 기도를 바치며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다. 이날 장례미사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지상에서 바치는 마지막 거룩한 전례이자, 작별의 장이었다. 또 세계 정상들이 교황이 남긴 ‘평화’의 가치를 새기고, 지구촌 새 희망을 향하도록 일깨우는 자리이기도 했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박예슬 기자 okkcc8@  이준태 기자 ouioui@

 
교황청 추기경단 수석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4월 26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미사에서 고별식을 주례하며 분향하고 있다. OSV


세상 권력자가 아닌 모두의 아버지가 된 교황

전 세계가 울었다. 장례미사 당일 로마는 도시 곳곳이 추모 분위기였다. 신자들은 도시 전역에 교황 사진과 초를 놓고 기도를 바쳤고, 여기저기에 조기를 게양했다. 바티칸은 광장부터 직선으로 펼쳐진 ‘화해의 길(Via della Concilliazine)’까지 인파로 꽉 찼다. 미사 시작 전 새벽부터 당도한 이들은 묵주기도를 바치며 마음을 다해 교황을 추모했다.

교황청은 이날 300개가 넘는 성합을 준비해 신자들이 성체를 모시도록 했다. 또 보편 교회와 전 세계 지역 교회가 함께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자 미사 전례와 기도가 다양한 언어로 봉헌됐다. 신자들은 주님 부활 대축일 당일, 사도좌로서 마지막으로 축복 메시지를 전하고 이튿날 곁을 떠난 교황이 부활의 희망을 남겨준 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담아 120분간 기도에 임했다.

교황의 목관은 작고 소박했다. 장례 예식 또한 간결함 그 자체였다. 주님 부활 대축일 당일 화려한 꽃으로 장식됐던 광장 풍경도 사라지고 노란꽃 외에는 어떠한 것도 없었다. 앞서 신자들의 조문을 받을 때에도 교황의 시신은 허리 높이의 관대 없이 중앙 제대 앞 경사에 안치됐다. 세상의 지도자가 아닌, 주님을 위해 순례한 목자이자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소박하고 경건하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싶다는 교황의 뜻에 따라 이뤄진 예식이었다.

 
26일 거행된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미사에서 한 수도자가 묵주기도를 하며 교황을 추모하고 있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4월 26일 거행된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미사에 참석한 한 신자가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OSV


존경과 애도 전하며 추모 열기 뜨겁게

이날 각국에서 온 추모객과 신자들은 자국어로 성가를 부르거나 기도를 바치며 행진하며 장례미사 현장에 당도했다. 특히 10~20대 청년·청소년들도 많았다. 본래 4월 27일은 청소년을 위한 희년 행사와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 시성식이 예정돼 있었던 터라, 전 세계 젊은이가 로마 희년 순례와 시성식 참가를 예약해뒀기 때문이다. 희망의 순례가 애도의 순례로 바뀌었지만 젊은이들은 “이 시간 또한 교황님이 주신 선물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온 10대 소녀 안나양은 “희년이 애도의 시간으로 바뀌었지만 우리는 이 시간을 교황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는 시간이라 여겼다”며 “모든 사람의 마음을 미소로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셨던 교황님을 생각하며 우리도 어두운 모습보다 밝은 모습으로 교황님의 마지막 길에 함께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신자들은 미사 전후 “Santo Subito!(지금 당장 성인으로!)” 구호를 외치며 12년간 지구촌 모두를 끌어안고 복음을 실천한 교황에게 존경과 애도를 전했다. 앞서 조문 기간에도 조문객 25만 명이 찾는 등 교황의 추모 열기는 뜨겁게 이어졌다.



지상 마지막 날까지 자기 봉헌의 길 따른 사제

장례미사를 주례한 교황청 추기경단 수석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은 “교황님은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복음의 빛으로 비춰 지혜를 전하고자 노력하셨던 분”이라고 추모했다. 레 추기경은 “지난 12년 동안 수많은 성찬례를 거행하신 이 장엄한 성 베드로 광장에 우리는 그분의 시신 곁에 슬픈 마음으로 모였다”면서도 “신앙은 우리에게 인간의 삶이 무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에서 끝을 모르는 행복한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약속했음을 기억하자”고 말했다.

이어 레 추기경은 “교황님은 고통의 막바지에도, 지상의 삶 마지막 날까지도 자기 봉헌의 길을 따르고자 했다”고 애도했다. 그러면서 “‘자비’와 ‘복음의 기쁨’은 교황님의 두 핵심어이며, 언제나 자비의 복음을 중심에 놓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는 데 절대 지치지 않으심을 거듭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레 추기경은 “교황님은 ‘장벽이 아니라 다리를 세우십시오’라고 여러 차례 권고하셨듯 교황님이 하신 신앙의 봉사는 모든 차원에서 인류에 대한 봉사와 언제나 연결돼 있다”며 “교황님, 이제는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길 청하며, 천상에서 로마와 온 세계에 강복해주시길 기도드린다”고 전했다.

 
4월 26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미사 후 관이 운구되는 모습을 각국 정상들이 애도하며 지켜보고 있다.

4월 26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에 참석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젤렌스키(오른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OSV


평화·일치의 장이 된 장례, 함께한 약자와 이웃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에는 전 세계 60여 개국 정상과 왕족, 130여 개국 대표 조문단이 참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부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등이다. 전쟁 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롯해 러시아도 대표단을 보냈다. 교황이 그렇게 평화의 만남을 요청했던 이들이 교황의 장례미사 때 만나 인사를 나누며 평화의 의미를 새겼다.

‘평화의 사도’로 지구촌을 순례했던 교황의 장례미사는 다시금 평화의 불씨를 되살리는 장이 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사 전 따로 15분간 긴급회동을 하고 평화를 모색했다. 두 정상의 만남은 지난 2월 ‘백악관 충돌 사태’로 파국에 가까운 결과를 낸 후 2개월 만이다. 백악관 관계자는 “두 정상은 이 시간에 매우 생산적인 논의를 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SNS에 “일대일로 많은 것을 논의했고 논의된 모든 것에 대한 결과를 기대한다”며 “우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휴전이 이뤄지길 바란다”며 종전과 평화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교황의 장례미사 중에는 동·서방 교회의 화해와 일치의 상징으로 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리아·예루살렘·중동에 있는 150만 멜키트 그리스도인을 대표해 유세프 압시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총대주교가 그리스어로 기도를 바치며 교황을 애도했다.

한국 교회 대표로 염수정 추기경과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장인남 대주교도 미사에 참여했고, 유인촌(토마스 아퀴나스) 문화체육부 장관과 오현주(그라시아) 주교황청 한국대사, 안재홍(베다) 한국천주교평신도단체협회장이 대표로 조문했다.

바티칸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교황의 시신이 안장되기 전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서는 장애인과 노숙인·이주민·재소자·성 소수자, 가난한 이 등을 대표하는 40여 명이 교황에게 감사와 작별 인사를 했다. 교황청은 “가난한 이들을 잊지 않았던 교황 뜻을 이어받아 사회적 약자들을 초청해 감사를 전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을 실은 전용차가 4월 26일 바티칸에서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전으로 이동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이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도착해 성전 안으로 운구되고 있다.

추기경단이 4월 27일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마련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덤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OSV
 
신자들이 4월 2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묻힌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서 기도하고 있다. OSV


“Grazie Francesco!”

교황의 관은 장례미사 후 광장을 빠져나와 세계 곳곳에서 신자들에게 인사를 전할 때 탔던 전용차량에 실려 성모 마리아 대성전으로 운구됐다. 교황의 관은 통유리를 통해 대중에 그대로 보여졌다. 이탈리아 당국은 바티칸에서 성모 마리아 대성전으로 이어지는 길을 통제해 많은 이가 교황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도록 했다. 운구 행렬은 6㎞ 거리를 30여 분간 천천히 이동했다. 로마 시내 안경점과 레코드점을 깜짝 방문하기도 하는 등 사람들 속에 함께했던 교황의 마지막을 향해 15만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박수와 함성을 보내며‘Grazie Francesco!(프란치스코 교황님 고맙습니다)’라고 경의를 표했다.

교황의 시신은 장례미사 직후 유언에 따라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안치됐다. 교황의 관 안에는 장례 전날 추기경단 예식을 통해 생전 업적이 1000자로 나열된 문서(rogito)와 팔리움·메달 등이 함께 봉인됐다. 교황의 관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을 떠나 로마 시내를 지나 운구된 것은 1903년 선종한 레오 13세 교황 이후 122년 만이다. 또 선종한 교황이 성모 대성전에 안치된 것은 1669년 선종한 클레멘스 9세 교황 이후 360여 년 만이다.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전

교황의 안식처 ''성모 마리아 대성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묻힌 안식처는 로마 4대 대성전 중 하나인 ‘성모 마리아 대성전(Basilica Papale di Santa Maria Maggiore)’이다.

성모 마리아 대성전은 한국 교회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레고리오 16세(재위 1831~1846) 교황이 1831년 9월 9일 북경교구에 속해있던 조선을 대목구로 설정하는 칙서를 반포한 역사적 장소다. 조선대목구 설정과 초대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임명 소칙서였다. 조선대목구 설정은 당시 성직자를 보내달라는 조선 신자들의 지속적인 청원과 브뤼기에르 주교가 헌신적인 태도로 조선 선교를 자원해 이뤄진 일이었다. 2021년 11월 5일에는 이곳에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 주례로 조선대목구 설정 190주년 기념미사가 봉헌되기도 했다.


 
1831년 9월 9일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서 반포된 조선대목구 설정 칙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이 대성전에 있는 이콘 ‘로마 백성의 구원자’ 성모성화에 깊은 존경과 애정을 품었다. 중세 시대 로마에 흑사병이 창궐한 당시 전염병 확산을 막아 기적을 일으킨 성화이기도 하다.

성모 마리아 대성전엔 7명의 교황이 잠들어있다. 제238대 교황 클레멘스 9세(재위 1667~1669)가 마지막으로 안장됐다. 성 베드로 광장을 설계한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거장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유해가 안치돼 있으며 예수님이 태어날 때 쓰인 구유 나무조각도 보존돼있다.

대성전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첫 번째 성당으로, 마리아에게 봉헌된 전 세계 성당 및 순례지와 영적 유대를 맺고 있다. 한국은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과 대구대교구 성모당 등 34곳이 영적 유대를 맺고 있다. 대성전은 로마 중심부 에스퀼리노 언덕,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500m 내에 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