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프랑스 주재 기간에 여러 차례 이탈리아 북부의 항구도시 제노바에 갈 기회가 있었다. 제노바 도심은 오랜 역사에 걸쳐 서로 얽히고설켰을 사람과 사건들처럼 좁디좁은 골목과 골목이 미로처럼 엮여 있었다. 골목 안에 빽빽이 들어찬 오랜 돌집들을 따라 정처 없이 떠돌다 보면, 골목들이 만나는 곳에 광장이라기엔 민망하지만 비교적 넓은 공간이 나오는데, 그곳에 대개 성당이 있었다. 제노바의 성당들은 좁은 골목의 낡은 건물치고는 내부가 너무나 화려했다. 그것은 아마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무역과 은행업을 번성시키며 거대한 부를 쌓았던 제노바 공국의 유산일 터였다.
제노바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까닭에, 빨래방을 찾아 혹은 맛있는 포카치아를 찾아 골목을 누비다 성당이나 예배당을 만나면, 그 안에 들어가 앉아 호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번에 또 와도 된다는 생각에 관광객처럼 서둘 필요는 없지만, 또 내가 그 동네 사람은 아닌지라 낯선 장소에 대한 긴장과 설렘도 있는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만난 장소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이 성 마리아 막달레나성당이다.
하루는 사람들 통행이 잦은 골목 사이에 별로 눈에 뜨이지 않던 더 좁은 길이 있어 무심코 걸어 들어갔는데, 곳곳에 짧은 옷차림의 여성들이 누군가를 기다리듯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쿠,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과 함께 두려운 마음에 재빨리 골목을 벗어나자 길 끄트머리에 크지 않은 성당이 보였다. 피난처라도 찾은 듯 서둘러 들어가니 천장 가득 프레스코화가 시선을 덮쳤다. ‘아!’ 천장에 두 눈을 고정한 채로 자리에 앉자 조금 전에 느꼈던 당혹과 두려움이 금세 사라졌다. ‘이렇게 외진 곳에 이토록 아름다운 성당이라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일까, 지도 앱을 켜고 위치를 보니 막달레나 거리, 막달레나 광장이란다.
막달레나는 창녀였다가 예수님을 만나 속죄한 여인으로 오랫동안 알려져 왔다. 추후에 가톨릭교회는 막달레나가 창녀였다는 오해를 바로잡고,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알린 누구보다 신실하고 용감한 인물로 인정했다고는 하나, 이 성당이 세워질 당시 막달레나는 속죄와 용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막달레나 거리에는 오래 전부터 선원들을 상대로 한 유곽이 있었는데, 12세기에 처음 여기에 성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다 16세기 말에 성당을 완전히 개조하며 금장식이며 천장화로 가득 채웠는데, 그때 많은 돈을 기부한 것이 유곽의 여성들과 그곳을 찾는 손님들이었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막달레나 거리에 사는 사람도, 그곳을 찾는 사람도 모두 속죄를 간절하게 원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가장 속된 곳에 가장 성스러운 곳을 둠으로써 속죄와 용서라는 희망의 끈을 이어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막달레나 거리를 빠져나와 5~6분이나 걸었을까, 온갖 사치품 부티크가 즐비한 로마 거리(via Roma)에 들어섰다. 천장화 대신 번쩍거리는 쇼윈도에 시선을 강탈당하는 나 자신을 보니, ‘나에게는 여기가 가장 속된 곳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영은 카타리나 /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여론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성호 신부의 철학 일기] 나의 형제 드들강 (0) | 2024.07.20 |
---|---|
[시사진단] 저출생 정책의 ‘토양’을 생각하다(김인숙 모니카,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0) | 2024.07.20 |
강원종교평화협 신임 대표회장에 이수형 목사 (0) | 2024.07.19 |
의정부 이주사목위, 7기 난민활동가 30명 배출 (0) | 2024.07.19 |
감염병 백신 개발 위해 손잡아 (0) | 2024.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