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음식으로 먹는 사람이 기쁘면 그것만큼 좋은 게 어딨어요. 음식에 사랑이 들어가야 피가 되고 살이 되지, 사랑이 안 들어간 음식은 뱃속에 들어가도 영양가가 없어요. 그저 한 끼 때우는 거지. 요새는 밀키트란 걸 팔더라고요. 아이고, 그게 무슨 음식이야⋯.”
가족에게 음식을 해먹이는 기쁨 그 자체에 흠뻑 빠져 평생을 요리에 투신해온 장선용(체칠리아, 84, 미국 산호세 한인본당) 요리연구가. 팔순이 넘은 나이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서 한식을 전파하고 있는 그가 5년 만에 귀국했다.
요리하는 맛
그에게 요리는 기쁨이자 삶의 낙. 옛말에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큼 보기 좋은 게 없다더니 그가 딱 그렇다. 가족이 모여 이야기 나누며 밥 한 그릇 뚝딱 비워내는 모습은 가장 흐뭇한 광경이다. 그 흐뭇함은 그를 다시 요리하게 하고, 소중한 이들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은 다시 그를 흐뭇하게 한다. 그가 요리연구가로서의 삶을 이어가는 원동력이다.
“사람들이 이 나이에 힘들지 않으냐고 묻는데, 내가 만든 음식으로 먹는 사람이 기쁘면 그게 행복이에요. 밖에서 사 먹자고 하면 남편은 ‘앞으로 마누라가 해주는 음식을 얼마나 먹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한 끼도 낭비하기 싫다’고 해요.”(웃음)
그는 30여 년전 사진 없는 요리책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1993)으로 화제가 됐다. 이어 2002년에는 「음식 끝에 情(정) 나지요」를 출간하고 EBS ‘최고의 요리비결’에도 출연했다. 미국에 정착하면서부터는 교포들을 대상으로 요리 교실을 열고, 미주 중앙일보에 8년간 요리 칼럼도 연재했다. 그는 강인희(1919~2001) 선생에게 10년 동안 요리를 배웠다. 강인희 선생은 한국의 맛 연구소를 세워 반가 음식을 보존한 인물이다.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은 며느리한테 손으로 써준 레시피가 모여서 만들어진 거예요. 책 낼 생각이 아니었어요. 한국에서 파 한 단도 안 다듬어 보던 며느리가 공부하고 직장생활 하다가 결혼하고 미국에 갔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내 아들 밥보다도⋯.”
요리책 인세는 모두 기부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은 30만 부가 팔렸고, 인세 전액을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썼다. 사회복지시설 선덕원에 기부하고, 이화여대 장학기금으로 내놨다. 소외된 아이들을 도우려 빈대떡 1000장도 부쳤다. “얼마를 기부했는지는 기억도 안 나고, 계산도 안 해요. 나한테서 나가면, 더는 내 것이 아니에요. 내가 요리로 번 돈은 과외로 번 돈이니까 하느님이 쓰셔야지. 하느님 거예요.”
미국 고추장 축제에서 실력 발휘
장씨는 남편(이영일 요셉)과 미국에서 텃밭을 가꾸며 친구들의 며느리들에게 한식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에서 고추장 축제가 열려 며느리들과 함께 나서서 고추장 만드는 시범도 보였다. 요즘은 미국에 사는 손주들에게 맛있는 음식 해주는 재미로 산다. 그는 “애들도 정성 들여 잘 먹여야 제대로 큰다”며 “맵고 짠 음식을 해먹이면 사나워진다”고 했다.
그는 2001년 당시 춘천교구장이었던 장익 주교와 신학생 40명에게 요리를 가르친 일도 있다. “주교님이 나중에는 식복사 없이 사제들이 스스로 밥을 해결해야 한다고 마련한 자리였어요. 혼자서 해 잡술 수 있는 밥·국·찜 위주로 알려드렸는데, 지금 얼마나 해 잡숫고 있을지⋯. 장가갔을 수도 있겠죠.”(웃음)
“한국 음식에는 나눔의 미학이 있어요. 옛날에는 떡을 하면 동네 사람들과 다 나눠 먹었잖아요. 요새는 아파트에 많이 사니까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죠. 같이 밥을 먹어야 정이 생기지⋯.”
그는 “요리는 나만의 기도였다”면서 “항상 이 음식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더 정성스럽게 요리하게 된다”고 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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