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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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평신도다

[평신도영성 나는 평신도다] (21)이 시대에 요구되는 평신도 영성 2 - 정화(하).

참 빛 사랑 2019. 5. 5. 20:04


고통의 벼랑 끝에서 만나는 주님의 은총


▲ 고통의 끝에서 만나고 느낄 수 있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다. 이를 통해 타인의 아픔도 알게 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 【CNS 자료 사진




▲ 정치우 교장




정화의 단계에서는 종종 고통이 수반됩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도, 프란치스코 성인도 정화의 단계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고통이 다가오면 우리는 대부분 불평을 합니다. “하느님 왜 저를 아프게 하십니까?” “하느님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하지만 이런 고통은 역설적으로 더욱 깊은 정화의 길로 이끕니다. 죽음을 앞둔 암환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지 않겠습니까. 정화되어 하느님 대전으로 나갑니다.



고통 그 자체로 큰 은총

물론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신앙의 견지에서 볼 때 고통은 그 자체로 큰 은총입니다. 지금 상태로 살면 지옥의 비참함을 체험할 것 같으니까 하느님께서 고통까지 허락하시며 당신 품으로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고통입니다. 그런데 이 고통은 높은 차원의 고통입니다. 어린 나이의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가 무슨 잘못이 많길래 그렇게 큰 고통을 받았겠습니까. 이냐시오 성인이 무슨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길래 고통을 받았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자신의 고통 앞에서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통을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마찬가지로 벼랑 끝에서 우리는 더 높은 차원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은총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를 비롯한 수많은 성인 성녀들은 그 고통의 신비를 마음으로 받아들였기에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 수 있었고, 참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고통은 이웃에 대한 연민을 가능케 합니다. 고통을 승화시킨 사람만이 어떤 사람이 목발을 짚고 걸어갈 때 그 사람을 위해 연민의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죄에서 오는 고통을 이겨낸 사람만이 연옥 영혼을 위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고통에도 동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통받으실 때 인류를 위해서 당신을 모두 봉헌하셨습니다.

고통은 나 자신만의 고통이 아닙니다. 내 고통만 해결해 달라고 울부짖을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연옥 영혼들을 위해 봉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통이 다가왔을 때도, 피하려고 한다거나, 나만 어떻게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는 낮은 차원의 영성입니다. 정화의 단계를 통해 겸손하고 부드럽고 하느님의 뜻에 복종하는 자세로 고통을 받아들인다면 큰 은총이 찾아옵니다.



정화 통해 나 중심에서 벗어나게 돼

이렇게 정화의 단계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외면하고 살았던 과거를 반성하게 됩니다. 나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느님 은총을 느낀다는 것은 하느님의 영적인 사랑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태어난 것이 은총이고, 좋은 이웃을 만난 것이 은총이고, 하느님을 알 수 있게 된 것이 은총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톨릭평화신문을 읽고 있는 것도 은총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면 영적인 차원에서 조명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리고 나의 외적인 잣대, 세속적 잣대가 모두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에 나를 창조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정화의 단계를 지나면 조명의 단계가 찾아옵니다. 조명의 단계를 거치면 새롭게 눈이 열립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다 오라. 한번 싸워보자.” “생로병사가 은총이라는 것을 나는 증언하겠다.” “지금 고통스럽게 병을 앓고 있지만, 지금보다 더 아파도 나는 하느님을 증거할 수 있다.” “세상의 어떤 어려운 사건이 다가온다더라도 나는 자신 있게 하느님을 증언할 것이다. 하느님께 모든 영광을 돌릴 것이다.”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