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여론사람들

특별기고 - (15) 성전건립 유감(有感)

참 빛 사랑 2025. 3. 29. 12:31
 

-뚝심과 효심으로 이룬 성전-

 

<인테리어>

 

   성당 이름과 주요 시설명을 나타내는 글씨는 눈에 띄면서도 예술적이어야 하고 시인성과 전문성이 드러나야 했다. 일본에 성당 견학을 갔을 때 소박한 성당 상단에 ‘천주당(天主堂)’이라 새겨진 글씨가 참 맘에 들었다. 중국에서도 이 이름과 글자를 많이 사용했는데 한자 문화권에서 즐겨 사용하던 이름이었다. 성당(聖堂)이라는 이름도 좋지만 ‘천주당’이라는 이름이 역사성도 있고 옛스러운 맛도 나니 이 이름을 쓰기로 했다. 문제는 어디다 써야 할까 궁리하다가 나무에 새기면 눈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설치해야 하고 고딕 성당에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최종적으로 돌로 새기기로 했다. 성당 건물 외벽이 빨간 벽돌이라서 흰 대리석으로 하되 바탕은 진붉은 색상으로 입체감 있게 올록볼록 질감을 주고 글씨는 흰색으로 새겨 넣었다. 글씨는 서예 경력이 오랜 전문가에게 의뢰하고, 돌을 찾다 보니 우연히도 우리나라 최고의 석공예 전문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天主堂’ 글씨(서예)를 가져갔는데 사이즈를 돌에 맞춘다고 임의로 확대시키는 바람에 균형이 맞지 않아 되돌려 보냈고 또 한번 맞지 않아서 또다시 되돌려 보냈다. 필시 그분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내 눈에 차지 않고 또 어딘가 불편하면 안 되었다. 결국 세 번 만에 맞추어서 벽돌을 ‘넣어 쌓기’로 어렵게 작업해서 올려놓으니 역시 잘 어울렸다. 내가 퇴짜를 놓았던 2개도 측면 출입문 위에 설치했다.

 
 

   그리고 머릿돌과 성당 정문 기둥의 주보 성인 이름과 성당 이름도 돌로 새길까 생각하다가 너무 비석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신주’로 하기로 결정하고 글귀와 모양, 색상까지 수많은 수정 끝에 최종 확정하여 드디어 벽에 설치하고 보니... 과연...! 감탄이 흘러나왔다.

 

   참으로 길고 피곤한 과정이었지만 해놓고 보면 그렇게 맘에 들 수가 없었다. 심지어 공사 관계자나 수고한 교우들에게 수여할 공로패, 감사패도 일일이 직접 문장을 작성하고 글씨체까지 가장 잘 어울리는 글씨체로 신중히 결정해서 맞췄다. 평소 임명장이나 상장 하나도 나는 내가 내 글씨로 직접 써서 주었고, 세례받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상본에 붓 펜으로 글씨를 써서 코팅해서 주었고, 성경책(구신약합본) 내피에도 글씨를 직접 써서 선물로 주었다. 글씨가 되니까..??!! ㅎ~~ 그러니 늘 예민하고 피곤하지만 결과를 보면 너무 만족스러우니 어쩌랴..?? 까다로운 성질도 요긴하게 써먹을 데가 있었다. 진즉 발견을 했더라면.…

 
 

   봉헌식을 준비할 때에도 초청장을 작가가 찍은 사진을 활용하고 본당 마크도 내가 만들었던 마크를 넣고 문맥을 작성해서 인쇄소에 꼬치꼬치 잔소리해서 만들어 놓고 보니 매우 맘에 들었다.

 

   그뿐인가. 중요한 전례 주년이나 축일이 되면 은인들에게 축하 문자를 보내고 감사 문자와 공문을 보낸 것이 한 두통이었던가.. 생각해보면 그런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정성들이 큰 힘을 발휘한 것 같다... 오래전 신설 성당에서 성전을 건립할 기금만 마련해놓고 떠났던 일이 못내 아쉽고 속상해 이번 성전만큼은 완벽하게 끝까지 제대로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으로 뼈를 갈아 넣었다.

 

<봉헌식>

 

   10월 말에 봉헌식을 하고 싶었으나 준비도 덜 되고 미리 주교님과의 협의가 되지 않아 날짜가 밀려서 11월 11일에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유구성당 10년간에 걸친 사목과 건립의 결산이기도 하고 유구본당 공동체로서는 참으로 감개무량한 성전 봉헌식이기에 여간 걱정이 되는 게 아니었다. 미사 전례부터 음식, 손님 접대, 선물, 안내, 교통정리까지... 나름대로 행사를 치르는 데는 경험상 노하우가 있었지만 교우들이 잘 모르기에 몇 본당 견학을 하고 진두지휘하면서 촉박하게 준비했다. 잔치도 손맛 좋은 우리 교우들(성모회)이 직접 하면 좋으련만... 그 많은 손님을 감당하기에는 큰 무리고 거의 불가능하여 뷔페를 하기로 결정했다. 전례 및 행사 예행 연습에, 역사 영상 자료까지... 55년 동안 준비된 것이 거의 전무하다 보니 내가 부임한 이후의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대로 추리고 편집해서 음악까지 삽입하여 사진 자료와 동영상을 완성했다.

 
 

   너무 미진한 준비였지만 마침내 운명의 그날은 오고야 말았다. 사제들과 은인들이 많이 오기를 기대했지만, 추운 날씨에 멀리서 그리 많이 오기는 불가능했다. 그런대로 크지 않은 성당에 발 디딜 틈 없이 성황을 이루어 성대하고 거룩한 봉헌식이 열렸다.

 

   사제들이 많이 오기를 은근히 기대했는데 적게 참석해서 못내 아쉬웠다. 성가대도 도저히 우리 성가대(멜로디만 부르는 소수의 중년 자매들.. 그러나 열심히는 하는...)만으로는 역부족이어서 공주 중동 성가대와 연합해서 나름 훌륭히 치를 수 있었다. 너무 긴장해서 정신도 못 차리고 어찌 치렀는지 모르겠다.

 
 

   봉헌식에서 최고의 히트는 단연 사목회장의 답사였다. 안 그래도 몸이 좋지 않은 데다 몰골이 바짝 마른 사람인데 목까지 쉬어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소감을 말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통곡의 연속이었다. 하도 울어 재끼는 바람에 처음에는 참석자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함께 울면서 숙연해졌다. 내용이야 당연히 본당신부가 너무 고생해서 이렇게도 아름답고 튼튼한 성전을 이룩했다는 것 그리고 열악한 형편이라서 부채도 없이 오히려 몇억을 남겨놓았다는... 모두들 감동하는 듯 했다. 하도 울어 싸서 어지간히 울으라고 한마디 했다. 마침대 내 차례가 되어 여러 가지 말을 하고 싶었으나 다 못하고 느낀 점을 간곡하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감격에 겨워 나도 울고 말았다. 변변찮은 나를 통해 이런 역사를 이루어 내신 하느님께, 그리고 고생한 교우들과 이를 가능하도록 성심을 다해 후원해주신 은인들께 감사할 수밖에... 이 거룩하고 보람찬 위업을 이루는데 나를 도구로 써주시고 내가 이런 은혜로운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그리 감사하고 감격스럽다.

 
 

   언젠가 이곳이 성지로 개발되어 수많은 순례자의 발길이 이어지고, 이곳 순교자들의 이름이 빛나고 이 아름다운 성당에서 혼인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기쁨과 위로와 은혜를 느낀다면 그 얼마나 행복할까…

 

   사실, 지금까지 이런 엄청난 일을 이렇게도 오래 지속하고 이루어낼 수 있었던 힘은 주님께서 주신 것이고, 아울러 그 비밀은 내 어머니의 전구와 아낌없는 응원이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아들 신부가 이런 큰일을 해내라고 조금은 일찍 자리를 비켜주신 것이라 확신한다.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도 천사 같던 어머니... 우리 형편도 어려운데 지나가는 걸인을 불러 씻기고 밥을 해 먹이실 만큼 자애로우셨던 어머니는 하느님을 만나고부터는 그야말로 성녀같이 사셨다. 신부인 아들보다 더 극진하게 기도하셨고, 어디서 그런 지혜를 받으셨는지 내가 찾아가서 기도해 주어야 할 사람을 알려주셨다. 분명 성령의 이끄심이었다.

 
 

   기금마련 하러 가기 전 늘 어머니 산소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고 나면 안 될 것 같던 일도 성사되고, 큰 후원이 이루어지고 은인을 보내주셨다. 이는 나의 효심이 아니라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고 격려였다... 그 힘으로 불가능한 이 성전 건립의 위업을 이룰 수 있었다. 하늘에서도 기뻐하실 거라 확신한다.

 

- 대전교구 정필국 베드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