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희년을 맞아 이탈리아 성지순례를 떠나며, 필자는 희년의 주제인 ‘희망의 순례자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주제에는 교회가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간직해야 할 두 단어가 담겨 있다.
먼저 ‘희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과 같이 희년의 취지를 밝혔다. “다가오는 희년은, 우리가 너무도 간절히 바라는 쇄신과 새로 태어남을 미리 맛보게 하는 희망과 신뢰의 분위기를 되살리는 데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희년의 표어를 ‘희망의 순례자들’로 선정한 이유입니다.”
교황은 2014년 시복식을 기해 한국 교회를 방문했을 때도 한국 주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였다. “기억의 지킴이, 희망의 지킴이가 되어 주십시오.”
교황이 희망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이유는 이 시대가 어느 때보다 희망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폭력이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기아와 감염병·자연재해 등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생겨나고 있다. 경제와 정치의 위기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혼란을 겪고 있다. 암울하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많은 젊은이가 절망에 빠져 있다.
한국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이유는 인간 삶에 나타나는 폭력성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와 상처, 인간 삶의 연약함을 세밀하게 그려내어 공감을 촉구하였으며, 그것을 넘어서는 인간의 인간다움을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그의 글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 준 것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희망이 위협받고 있는 이 시대가 위기에 처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는 교회로서는 더없이 큰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교회는 인류가 염원하는 것보다 더 큰 희망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교회는 희망으로 구원받은 존재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로마 8,24) 또한 교회는 언제나 희망을 찾았고, 자기가 찾은 희망을 증언하는 존재였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 바로 그 희망을 오늘날 다시금 증언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희망을 찾지 않는 교회, 함께 꿈을 꾸지 못하는 교회, 희망을 증언할 수 없는 교회는 세상에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교회다. 다행히도 성령의 활동과 신앙인들의 노력으로 교회는 계속해서 희망의 증인이 되어 세상 곳곳에서 희망의 여명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순례’여야 한다. 희망은 찾는 사람, 궁리하고 모색하는 사람에게만 밝아오는 여명이다. 동방의 박사들이 잃었던 별을 찾아 다시 길을 재촉했을 때 별이 다시 떠오른 것처럼(마태 2,1-12 참조) 그리스도인은 희망을 찾아 길을 재촉하는 순례자들이다.
희망이라는 단어에는 인간 삶에서 부정할 수 없는 어떤 어두운 그림자가 반영되어 있다. 우리가 겪어야만 하는 삶의 위기와 시련 그리고 인간 스스로는 찾을 수 없는 해결책⋯. 그러나 바로 거기서 희망은 빛을 발한다. 희망은 우리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우리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향하도록 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시련을 딛고 희망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며, 교회 모든 구성원도 그들의 뒤를 따라 희망을 찾아 떠났던 순례자들이었다. 그렇기에 ‘희망의 순례자’는 바로 우리 각자의 이름이다. 그리고 희망을 찾아 순례를 떠나는 우리가 바로 세상에는 희망인 것이다. 2025년 희년을 희망차게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한민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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