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신자 재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깨닫고 거룩한 독서를 마치면서 평일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복음 공부도 시작했다. 마르코 복음서와 요한 복음서를 2년에 걸쳐서 공부했다. 10여 명이 시작했다가 마칠 때는 5명... 그렇게 교육을 통해 교우들이 조금씩 성경에 맛을 들이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내 첫 가을에는 전 신자 성지순례를 통해 마음을 모으고 결속을 다졌다. 큰 호응 속에 성대하고 즐겁게 성지순례를 마쳤다. 배론 성지 (사진) 최양업 신부님의 얼과 신앙, 교우들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더불어 그 뜨거운 사목 열정, 복음 선포에 대한 간절한 열망도 느꼈지만 본당에서만 보던 신자들의 모습과 달리 그렇게 밝고 활기찰 수가 없었다...
그러는 중에도 나에게는 노후화된 성당과 회의실이 늘 마음에 걸렸다. 어떻게든 해야 할 것 같았다. 수리를 하든, 새로 짓던... 솔직히 내키지는 않지만 발령받은 순간부터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기에 늘 알맞은 시기를 고민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성당과 사제관 건물 자체가 무허가인 데다가 50년 세월에 노후화되다 보니 여러 군데가 갈라지고 새고... 걸음 소리로 인한 소음, 보일러실에서 발생하는 시끄러운 소리 등등... 고요하고 거룩하게 미사를 봉헌할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50주년을 시해 리모델링이든 신축이든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평생을 나와 함께 사시던 어머니가 하느님 품에 안기셨다. 낙성을 몇 번 하시더니 결국 선종하셨다...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가슴이 미어지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잘해드린 건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못 해 드린 것만 생각나 송구하기 그지없었다. 상죄인이 된 것만 같았다. 그래도 사제관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신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교우들의 기도와 위로 속에 무사히 장례를 치르고 나니 죄책감과 허무함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가누기 어려웠다. 세례받기 전에는 천사 같으셨고, 세례 후에는 성녀같이 사셨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불길한 생각에 휩싸였다. 내가 어머니를 다시 뵐 수 있을까... 하느님 대전에서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수많은 날을 갈피를 못 잡고 가슴이 먹먹한 상태에서 방황 아닌 방황을 하다가 생각했다. 내가 제단에서 입만 열면 사랑을 말하고 부활을 얘기했는데... 그게 도대체 뭔가? 생각하고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삶 자체가 부활의 삶이었고, 영원한 생명을 사셨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금 마음을 추스르고 다짐했다. 그래... 언젠가 주님께서 부르시면 나도 세상을 떠나겠지... 주님 대전에서 어머니를 반드시 다시 뵙고야 말리라. 그럴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되어도 내 삶은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 한편 어머님의 떠나심이 단순한 우연만이 아니라, 아들 신부가 이루려는 큰 뜻에 당신이 걸림돌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조금 서둘러서 자리를 비켜주신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 우리 어머니는 충분히 그러시고도 남을 분이지... 아들 발목을 더 이상 잡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하늘 아버지께로 그렇게 떠나가셨다.
그러고 나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성전 건립을 시작해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대전교구 정필국 베드로 신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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